- '버닝' 이창동 감독 "국내외 반응 온도 차, 내겐 숙제" [인터뷰]
- 입력 2018. 05.25. 17:04:27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사실 영화 만들고 기자들 이렇게 만나는 게 처음이다. 항상 개봉 때도 영화 전문지 기자들만 만나고 다른 매체는 안 만났다."
25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버닝'(제작 파인하우스필름·나우필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난 이창동 감독은 "이번엔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며 "미리 약속도 했고 이제는 이런 자리를 너무 안 하겠다고 해선 안될 것 같아서"라고 영화 전문지 외의 매체들과의 인터뷰에 처음으로 응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소통은 영화로만 하지 영화감독이 하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아시다시피 내가 얼굴이 뉴스 화면에 나온 시절도 있어서 되게 불편하다. 취재도 하고 사람들과 섞이고 이야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얼굴이 알려진 게 힘들다. 가능하면 노출 빈도를 최대한 줄이려 했다. 작가 시절 부터 난 약간 구식 교육을 받아서 작품 외의 이야기는 일종의 오류라는 식으로 배웠기에 그런 것의 비약이기도 하고 특히 설명을 전달하면 안 되는 영화인데 직접 설명하는 기회가 만들어져 어색하기도 하고 그렇다."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다룬다. 제 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의 수상 여부가 관심을 끌었지만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됐다.
"(수상 불발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사실 아쉬운 정도가 아니다. 이상하게 '버닝'이란 영화가 개봉 전부터 마케팅이랄까, 영화의 흥행이 칸 수상 여부에 올인한 것 같은 식으로 되어버렸다. 전혀 원하지 않게. 또 기대가 너무 높아 오히려 실망감도 크고 해서 그런 점에서 영화 만든 감독으로서 같이한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한국영화 전체로 봐도 만약 수상했다면 한국 영화 전체에도 자극과 활력이 됐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칸 현지에서는 예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었다. 보통 꼭 예술영화라기보다 그만의 개성을 가진 영화들이 경쟁부문에 들어간다. 개성이 강하단 말은 호불호가 나뉜단 말이다. 그래서 칸 경쟁부문에 든 영화가 대부분 호불호가 나뉜다. 그래도 '버닝'은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다 좋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왜 이렇게 다 좋아하지?'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국내 반응을 보면, 호불호는 갈릴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또 반응이 그런(부정적) 것 같아서 그 온도 차이가 내겐 좀 숙제인 것 같다. 이게 뭔지."
'버닝'을 본 다수의 관객은 이번 영화가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다고 평했다. 이 같은 평에 관해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확실히 다르고 늘 변화하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 변화하려 늘 힘들게 노력했다. 이번 영화는 좀 더 크게 느껴졌을 수 있다. 질문은 더 복잡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걸 비우고 영화를 있는 그대로만 느끼면 그래도 그나마 즐길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질문이란 건 언제나 남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중적 사랑을 받은 영화도 쉽게 잊힐 수도 있고 어떤 질문은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의 문제도 누군가는 바꿔야 하고 누군가는 낯선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다음 것은 낯설다기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다가갈 수 있고 영화 산업 전체적으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버닝'에 대해 설명적이라는 평도 있다. 그 같은 반응에 대해 이 감독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 설명이라기보다 표면적인 거다. 정작 내가 영화에 코드로 심어놓은 중요한 것들은 설명 없이 그냥 느낌으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예를 들어 남산타워에서 빛이 반사된 것은 설명이라기보다 형상이다. 실제 남산타워의 그 빛은 다른 코드다. 빛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이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는 거다. 영화에서의 모든 코드는 사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버닝'을 통해 젊은 세대에 관해 다룬 이 감독은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버닝'을 보길 원한다. 영화는 청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미스터리를 다뤘지만 사실 청년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청년의 이야기로 카테고리화 되는 것 역시 이 감독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영화 공개 전 제작보고회와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영화에 대해 짧게 이야기 해야 했기에 '스릴러'라고 쉽게 알 수 있도록 이야기 했고 그렇게 읽히는 경향이 있지만 이 감독은 이 영화를 '겹쳐진 미스터리'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해미는 어디 갔을까?' '벤이란 인물은 어떤 인물일까?'를 추적하는 미스터리지만 사실 범인을 찾는 영화는 아니다. 장르로 보면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다른 성격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미스터리를 여러 겹 겹쳐놨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서사를 받아들이는데 사실 이 서사라는 건 자기 욕망의 산물이다. 관객이 자기가 원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거다. 관객이 자기만의 서사를 찾더라. 그런데 벤이 해미를 죽였을 거라는 추측은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서스펜스는 매뉴얼이 있다. 물론 매뉴얼대로 찍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따라가는 영화는 아니다. 벤이 해미를 죽였을 거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종수의 의심이다. '그러면 뭐냐?'가 될 텐데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게 난 세상의 미스터리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작은 것들이 때론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두려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뭔가 해결되지 않는, 확증을 찾을 수 없는 그 미스터리, 막막함이 더 문제라는 거다. 그게 더 근원적으로, 그런 미스터리 앞에 더 분노를 느끼는 것 아닐까."
극 중 희망을 찾기 힘든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 종수는 20대 후반 작가 지망생 청년이고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놓은 현실에 묶여있는 인물이다.
"종수는 파주에 가고 싶어 가서 살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단순히 송아지 밥 줄 사람이 없어서 간 것이다. 그 공간은 싫지만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공간이다. 아버지가 만든 공간이고 대남방송이 들리는 공간이다. 어려서부터 얼마나 그게 싫었겠느냐? 지금의 깔끔한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뉴스에서나 듣는 게 대남방송이다. 원치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 놓인 거고 떠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너무나 하찮게도 송아지 밥 주는 것이다. 그 인물이 지금의 젊은이를 아주 보편적으로 대표한다고 생각할 순 없지만 그런 인물을 택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 감독은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계급 문제든 정치적 민주화 문제든 당시엔 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현실은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만 희망은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요즘은 세상이 분명 뭔가 잘못된 건데 문제가 뭔지 알 수가 없다. 탄핵 국면과 촛불 국면 같은 경우 문제가 분명했고 해소됐다. 그런데 청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진 않는데. 누구와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다. 세상의 미스터리 같고 막막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상은 정말 세련되고 여유 있고 편리해지고 심지어 아름답고 예뻐 보이기도 하고 친절하고 관용적이기도 하다. 삼청동 길도 얼마나 깨끗하고 예뻐졌느냐? 그런데 여기 살고 있던 사람들은 어딘가로 밀려 나가고 거리는 아무런 문제 없는 듯이 점점 예뻐진다. 그런 게 벤의 모습이다."
이 감독은 자녀와 제자를 통해 현재의 젊은이가 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과 비교하자면, 훨씬 더 가진 게 없던 그때도 희망이 있었기에 그것 하나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보다 물질적으로 더 나아진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혹한 현실에 놓인 청년을 봤고 그 같은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나도 자식이 있다. 기성세대의 꼰대같은 소리일까 봐 좀 그런데 우리 땐 희망이 있었다. 현실적으론 훨씬 더 힘들었지만 희망이 있었다. '독재정권을 어떻게 하면 될 거다'라는 그런 추상적인 생각도 있었지만 물질적으로도 점점 잘살게 될 거란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없잖나. 우리 자식들을 봐도 그렇다. 본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개인은 점점 왜소해지고 개인의 삶은 초라해지고. 지금은 내가 학교를 관뒀지만 학생들을 봐도 그렇다. 다들 조금씩 우울증에 걸려있다. 우리가 알기 쉬운 서사로, 쉽게 감동할 만한 이야기로 다루고 싶진 않았다. 그게 조금의 위로나 힘은 돼줄 수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질문하고 싶었다."
소설의 모호성은 독자가 수용하고 어떤 면에선 존중할 수도 있어도 영화의 모호성은 관객이 거부하기 쉽다는 이 감독. 그는 관객이 '이거냐 저거냐'인 모호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관객은 모호한 것을 의미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하나로 받아들이며 '왜 부족하냐'고 비판하는 것 같다. 이 영화에도 각자의 서사가 있잖느냐? 종수는 계속 이야기를 찾는 사람인데 실제론 해미도 이야기를 한다. 언니가 해미의 우물 이야기를 듣고 '해미가 이야기를 잘 지어낸다'고 하는데 해미도 이야기꾼인 거다. 벤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하는데 정말 연쇄살인범인지 아프리카에 가서 사업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각각의 이야기가 있는데 관객은 자신이 본 이야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퍼즐이 다 맞춰지진 않는데 '뭔가 빈자리가 있다. 왜 이렇게 빈자리가 있느냐?'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글 쓰는 작가로서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었으면 글을 썼을 거라는 그는 시간과 능력이 없어 글을 못 쓰고 있다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소설로서가 아니라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 또는 작가든 예술가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영화를 통해 관객이 이런 식의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서사를 원하는지, 영화는 어떤 건지 질문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늘 지금까지 질문을 하기 위해 영화를 했다. 사람들이 내게 오해가 있다. 날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난 한 번도 영화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메시지나 답을 찾는 건 관객의 몫이라 생각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가장 메시지도 강하고 알기 쉽다고 생각한다. 정의가 승리하고 착한 것이 악을 이기고 그런 메시지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뭔가 답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만든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