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쾌거와 대중가요사 바로 쓰기
입력 2018. 06.04. 09:53:50

방탄소년단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방탄소년단이 역사를 만들고 있다.”-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쾌거를 소개한 워싱턴포스트(WP)의 지난달 29일 기사 제목이다. 앨범 발표 첫 주에 빌보드 메인 차트 ‘앨범부문 1위, 싱글부문 10위권 진입’이란 결과는 세계적 팝스타들에게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방탄소년단처럼 역사를 만들거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를 바로 쓰는 일이 더 시급하다. ‘역사’는 시간적 개념이고, ‘기록’을 전제로 한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도 있을 수 없다. 지극히 평범한 시간 규정이다. 결국 내일을 보려면 어제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역사가 된다. 방탄소년단의 ‘역사적 사건’을 마주 하면서 과연 우리 대중문화사의 역사 기록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궁금하다.

역사라는 것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는 역사학도가 어느 한 편에 치우쳐서 역사를 생각하는 순간 역사의 가치는 상실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조 아이돌그룹’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원조’같은 ‘원조’ 논쟁이 그렇다. 그것이 비단 기록으로서의 역사든, 이론적인 역사에서든 넓은 시야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통합의 역사는 그 시대 각 분야의 역사가 모여 완성된다. 대중문화는 정치, 경제, 이념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또 대중문화가 갖는 파급력을 고려하면, 대중문화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전제로 할 때, 대중문화의 기둥이랄 수 있는 연예계의 역사는 이 시대 대중의 삶의 기록으로 수많은 연예계 종사자의 증언과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써져야 한다.

하지만 연예계의 역사는 아직도 체계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치 옛날 이야기하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 시절 언론에서 흔적을 찾을 뿐이다. 가까운 예로 걸그룹을 이야기할 때 에스이에스(SES)나 핑클을 ‘걸그룹의 원조’, ‘걸그룹의 조상’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대중은 이처럼 걸그룹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오해도 크다.

SES는 1997년에 등장했고, 핑클은 1998년에 데뷔했다. 그렇다면 1997년 이전에는 걸그룹이 가요계에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SES나 핑클의 멤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대중에게 춤과 노래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걸그룹이 우리 연예계에 존재했다. 할머님 세대의 일이다. 걸그룹은 현대의 산물일 거라는 오해로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기에는 국내 걸그룹들의 개체수와 역사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왜 SES와 핑클에게 ‘원조’란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일까. 제대로 된 가요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최규성 대표가 이 오해를 바로 잡았다. 한국일보에서 대중문화 전문기자로 필명을 날렸던 최규성 대표는 최근 480쪽에 이르는 ‘걸그룹의 조상들’(안나푸르나 펴냄)이란 가요역사서를 서점에 내놓았다. 그가 40년 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집필에만 꼬박 6년이 걸렸다.

이 책에서 필자는 “한국 걸그룹 역사의 원년은 ‘저고리시스터’가 등장한 1935년으로 봐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83년 전의 일이다. 저고리시스터는 한국 걸그룹의 역사에서 최초로 공식 이름을 지닌 팀이다. 일제강점기 오케레코드에서 운영한 조선악극단 소속 여가수들로 구성되었다. 주로 5~6인조 규모로 공연활동을 벌인 프로젝트 걸그룹의 성격이 강했다.

멤버의 면모는 쟁쟁하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였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그리고 이화자, 유정희, 홍청자 등 당대를 대표한 여성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1940년대 걸그룹에 ‘선향악단시스터즈’가 있다. 일본 군부가 후원한 선향악단 소속이었다. 5인조 그룹이었는데,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인들이 거주했던 만주와 중국 등지에서 위문 활동 위주로 공연했다. 음반이나 멤버들의 이름, 그 이상의 활동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5명이 나란히 서서 촬영한 흑백사진 한 장이 남아 이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해방공간에서는 ‘저고리시스터’ 2기 격인 ‘저고리시스터즈’가 등장한다. 1기 멤버인 이난영, 장세정에 새로운 멤버 신카나리아, 옥잠화, 나성녀가 합류했다. 해방과 함께 미군이 주둔하면서 본격적으로 걸그룹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미8군 무대를 통해서이다. ‘김시스터즈’, ‘정시스터즈’, ‘영시스터즈’, ‘아리랑시스터즈’, ‘은방울시스터즈’ 같은 걸그룹들이 등장했다.

1951년에 출범한 ‘김시스터즈’는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화려하고 음악적으로도 뛰어났던, 최초의 공식 걸그룹으로 연예사가들은 꼽는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걸그룹 최초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국제적 스타로 성장했다. 1959년 미국에 진출했으니 2009년 미국에 진출한 원더걸스보다 무려 50년을 앞선 시점이다.

김시스터즈는 미국 최고의 인기 TV 프로그램의 단골 초청자가 되었고,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데이트 초대를 거절해 화제를 오를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리고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다. 1962년 ‘김시스터즈’는 미국 그룹 ‘코스터스’의 동명 곡을 커버한 ‘찰리 브라운’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상위권에 오른다. 이후 56년이 지난 지금 방탄소년단의 쾌거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이후에도 걸그룹은 국내의 대중음악계를 견인하며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SES, 핑클 이전의 시대에 음반을 발표하고 걸그룹으로 활동한 팀만도 100여 팀이 넘는다. 나이트클럽 등 야간업소에서 밴드로 활동한 그룹까지 포함하면 300여 팀에 가깝다. 이런 기록을 대하고 ‘걸그룹의 원조’, ‘걸그룹의 조상’이란 지금의 호칭은 불편하다.

방탄소년단의 쾌거를 다시 한 번 축하하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대중문화사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고, 올바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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