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in 영화] ‘자유의 언덕’, 사랑을 찾는 남자의 여정 속 ‘지유가오카 핫초메’
입력 2018. 06.15. 10:51:57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드물게 대화 보다 서정적 분위기가 더 먼저 각인되는 ‘자유의 언덕’은 남자 주인공 모리가 끝까지 찾지 못한 권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일본 남자 모리(카세료)는 결국 찾지 못한 권(서영화)에게 편지를 보내고, 권은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순서가 뒤바뀐 편지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읽어 내려간다. 영화 역시 시간 순서가 뒤바뀐 채로 그녀가 읽는 시점에 맞춰 모리의 행적을 두서없이 따라간다.

이 영화는 기억과 기억이 형성되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일본 남자에게 흥미를 느낀 카페 주인 영선(문소리)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가 읽는 책이 무엇인지 물으며 접근한다. 모리는 책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영선의 재촉에 “우리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며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시간’에 관해 이야기 한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이 뇌에 추억 혹은 기억으로 각인 된 것들을 시간의 틀 속에 가두고 시간의 틀 안에서만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몽환적 느낌까지 풍기는 이 영화에서 모리와 영선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카페 ‘지유가오카 핫초메(JIYUGAOKA 8丁目)’다. 영선이 운영하는 카페이면서 모리의 감정이 뒤틀리기도 평온해지기도 하는 이 공간에서 모리와 영선은 ‘친구 이상’의 사이가 된다.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고 시나리오를 쓰는 것으로 알려진 홍상수 감독이 삼청동, 그것도 카페 ‘지유가오카 핫초메’에서 영화 촬영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느 날 밖에서 카페를 유심히 쳐다보던 중년 남자는 카페 주인에게 이름의 의미에 대해 물었고 이 내용은 중요한 소재가 됐다.

지유가오카 핫초메를 론칭한 조종철 대표는 “일본 유학 시절 분위기와 멋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라며 카페 이름을 지유가오카로 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카페가 홍상수 감독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지유가오카 핫초메’ 풀네임이다. 실제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될 당시 포스터에 ‘지유가오카 핫초메(自由が丘 8丁目)’로 표기되기도 해 홍상수 감독이 카페 이름에 얼마나 애착이 있었는지 짐작게 한다.

조 대표는 “지유가오카는 일본어로 ‘자유의 언덕’이죠. 핫초메는 8동이라는 뜻인데 실제 지유가오카에는 4동까지 밖에 없습니다. 제가 당시 일본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담기 위해 일본의 행운의 숫자 8을 넣어 ‘지유가오카 핫초메’로 카페명을 정했죠”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유가오카 핫초메는 일본 도쿄에 있는 실제 지명이면서 동시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영화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몽환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지유가오카 핫초메의 이중성은 이뿐 아니다. 지유가오카 핫초메는 영화가 촬영된 삼청점에서 알 수 있듯이 소박한 개인 카페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 공간은 서울 시내 10개점 중 한 곳인 프렌차이즈 카페다.

또 하나 소박한 외양의 인테리어와 달리 상당한 고가의 케이크와 빙수 등 디저트 메뉴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막상 맛을 보면 가격 때문에 철렁했던 마음이 다 녹아버릴 만큼 미각을 사로잡는다.

조종철 대표는 사실 오너셰프로 유수의 호텔 베이커리를 거친 경력과 디저트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일본에서 배운 이력까지 더해져 시각은 물론 미각까지 충족하는 디저트를 카페에 내놓는다.

영화 속에서 반삭의 짧은 머리에 깡마른 체구의 모리는 헐렁한 치노팬츠와 티셔츠의 극히 일상적인 차림으로 지유가오카 핫초메에서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이 느낌이 바로 지유가오카 핫초메다.

조 대표는 카페 위치를 정할 때 대로변이 아닌 골목 상권을 택한다. 인테리어 역시 규격화 된 공간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전략으로 공간에서 메뉴 구성까지 일본 도쿄 지유가오카 느낌을 담아낸다.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영화 특유의 일상을 이야기하되 철학적 사유를 잃지 않는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지유가오카 핫초메는 영화 속에서 홍상수의 철학적 사유를 형성하는 배경이 된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자유의 언덕’, 지유가오카 핫초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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