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퍼즐] 김구라의 선글라스가 불편한 이유
- 입력 2018. 06.18. 10:31:11
-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포털사이트 인물 검색으로 ‘김구라’를 찾아보면 직업은 MC와 코미디언(개그맨)으로 되어 있다. MC는 보통 방송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이름하고, 코미디언은 TV, 영화, 무대 등에서 웃음을 통해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말한다. 25년 전 SBS 2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방송에 진출했다고는 해도, 이 정의가 맞는다면 현재 김구라의 직업은 코미디언은 아니다. 그가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음을 나눠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은 MC다.
MBC '복면가왕' 김구라
이들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김구라의 MC로서의 재능은 뛰어나다. 개그맨 출신의 방송 MC 3인방(3대천왕)으로 꼽히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3대천왕이 여전히 개그본능을 지닌 채 프로그램을 이끄는 데 비해 김구라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학다식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독설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김구라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토크는 민감하고 난해한 주제들을 어렵지 않게 파헤친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것들을 비판한다.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을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그런 진행 과정에서 ‘막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자기주장이 정도를 지나쳐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란 지적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시청자들로부터 “예의가 없다”라는, 나이 든 어른들로부터는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란 핀잔을 듣기도 한다. 정말 그는 막말과 독설을 일삼는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연예인일까.
‘라디오스타’는 공동 MC 체재로 진행된다. 공동MC를 선택하는 이유는 다수의 게스트를 상대함에 있어 다양한 목소리를 끌어내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사인엔가 김구라 단독 MC, 나머지 MC는 보조 진행자로 조정된 느낌이다. 그의 연예계 선배인 김국진, 윤종신은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전담 MC로 위치가 굳어졌다. 김구라 원맨쇼라 해도 과한 지적은 아니다. 한 네티즌은 SNS에 “김구라가 특히 맏형인 김국진에게 왜 그렇게 예의 없고 건방지게 대하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라고 썼다.
시청자 SNS에는 그의 진행 태도에 대한 불만 의견이 끊이지를 않는다. “늘 팔짱 낀 자세와 찡그린 표정인데 고칠 수 없는가?”, “독설이 콘셉트라지만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는 말 그대로 손님인데, 김구라는 게스트를 지적하기 바쁘다. 게스트가 개인기 같은걸 선보일 때도 듣고 공감하고 웃어주는 게 아니라, '한번 보여줘봐. 내가 웃긴지 안 웃긴지 평가해줄게' 라는 표정과 자세로 일관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썰전’은 매우 조심스런 시사 프로그램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어 고정 대담자인 유시민 작가나 박형준 동아대 교수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출연한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실시간 방송이어야 하는 데도 굳이 녹화 방송을 하는 이유도 이 프로그램이 지닌 파급력을 고려해서이다. ‘썰전’은 김구라가 단독 MC로 진행한다. 사회자의 한마디가 편파성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 프로그램에서 김구라의 날카로운 독설이나 예리한 분석은 만날 수 없다. 박학다식한 김구라도 작가들이 써준 대본에 의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MC로서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대목이다.
김구라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프로그램이 ‘복면가왕’이다. 김구라는 방송 초기부터 연예인판정단의 한사람으로 출연중이다. MC라기보다는 패널 참여에 가깝다. 그는 연예인판정단의 ‘센터’에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예의 없고, 버르장머리 없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프로듀서101’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센터’에 누가 서느냐를 두고 경쟁을 벌이거나, 아이돌그룹의 출연에서 어느 멤버가 ‘센터’에 위치하는가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센터’가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스타급으로 떠오른 신예 정해인이 백상예술대상 시상 단체사진 촬영에서 얼떨결에 ‘센터’에 섰다가 논란을 빚고, 사과까지 했던 사건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복면가왕’의 연예인판정단에서 김구라가 ‘센터’를 고집하고 있는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 ‘복면가왕’은 선입견 없이 가창력 하나로만 가수의 실력을 평가하는 대단히 바람직한 음악 프로그램이다. 이를 평가함에 있어 대중성보다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음악 전문가인 김현철, 유영석, 조장혁, 카이 등이 ‘센터’에 자리해야 마땅하다.
김구라의 ‘복면가왕’에서의 선글라스 착용은 독선적 행동의 백미이다. 방송에서 장시간 선글라스를 쓰고 출연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처음부터 선글라스 출연을 고집한 가수 박상민 같은 경우와는 다르다. 신상 문제가 아니고서는 시청자 앞에 장시간 선글라스를 쓰고, 때로는 팔짱까지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예의 없는 행동이다. 오죽하면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동료 연예인이 지적까지 했을까.
김구라 본인은 “눈에 이상(백내장)이 있어 스튜디오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 제작진의 양해를 구해 착용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벌써 오래 전 변명이다. 눈에 이상이 있으면 방송을 쉬고 치료에 전념해야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출연해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구라는 유명한 사람이다. 유명한 방송 스타는 시청자의 사랑을 자양분으로 살아간다. 유명한 사람과 훌륭한 사람은 같은 사람을 말할 때도 있지만, 별개의 경우도 있다. ‘유명하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이 탁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경우이다. 그러나 ‘훌륭하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겸손한 사람이다. 교만은 이와 반대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다. 김구라는 겸손이라는 덕목을 다시 깊게 생각해보며, 자신의 한계선을 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MBC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