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흑역사 앞의 인간을 통해 ‘용기’와 ‘용서’를 생각하다 [씨네리뷰]
입력 2018. 07.03. 18:02:44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왕의 남자’(2005) ‘소원’(2013) ‘사도’(2015) 등을 연출해온 이준익 감독이 열세 번째 영화 ‘변산’으로 돌아왔다. ‘동주’(2016) ‘박열’(2017)의 다음 작품이 랩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하는 동시에 ‘의아함’을 품게 한다. 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웃었지만 ‘변산’ 안에는 ‘용기’ ‘용서’라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 생각해 볼만한 키워드가 존재한다.

‘변산’은 랩이라는 소재를 다룬, 청춘이 주인공인 휴먼 드라마다. 랩에 대한 주인공의 열정, 청춘의 고달픔 등을 다룰 것 같지만 그 같은 짐작을 뒤집는다. 극 중 선미(김고은)의 “넌 정면을 안 봐”라는 한 마디는 학수(박정민) 뿐만 아니라 일부 관객의 가슴에도 날아와 꽂힐 만 하다.

‘변산’(제작 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은 주인공이 ‘흑역사’를 정면 돌파하는 내용을 다룬다. 학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6년이란 시간 동안 랩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선미의 전화를 받게 되고 이후 우연한 계기로 잊고 싶은 고향 변산으로 향한다. 고향에서 그는 옛 친구들을 만나 발목이 잡히고 징글징글한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그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들을 피해왔지만 과거는 그를 놔주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겪게 된다.

학수는 잊고 싶은 것들을 외면하고 떠났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외면한 현실은 여전히 존재했고 이를 외면하는 그에게 선미는 돌직구를 날린다. 첫사랑 학수에게 애정을 바탕으로 날리는 선미의 돌직구에는 듣는 이를 ‘뜨끔’하게 하는 날카로움이 있다.

영화가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지는 않으나 청춘의 고달픔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학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좁은 고시원 방에서 살아간다. 꿈을 향한 열정에 비해 현실의 벽은 높다. 그가 느끼는 좌절과 고달픔은 랩을 통해 전달된다. 영화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랩은 짧은 가사에 함축된 깊이 있는 내용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배우가 랩을 한다는 것이 위험 요소였지만 박정민은 약 1년에 걸친 연습을 통해 극의 몰입을 헤치지 않을 정도로 랩을 무난히 소화했다. 실제 매거진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책을 펴낼 정도로 글 솜씨가 있는 그는 래퍼 얀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사에도 참여했다. 두 사람이 약 1년 동안 만든 랩은 영화에서 대사를 대신해 효율적이고 감성적이게 주인공의 생각을 전달한다.

학수는 고향에서 묵혀둔 앙금을 풀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 학수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타고 넘어 더 큰 장애물을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수를 자극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치게 되는데 아버지에게 주먹을 날린다는 점은 논란을 낳을 소지가 있다. 아버지와의 앙금은 그 깊이가 깊어 용서가 가능한가의 여부에서도 관객의 판단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학수를 고향으로 ‘강제 소환’한 선미에게는 학수가 첫사랑이다. 학창시절 학수를 짝사랑한 그녀는 변한 학수의 모습에 돌직구를 날리며 그가 지우고 싶은 과거를 마주보게 만든다. 과거 학수에게 괴롭힘을 당한 용대(고준)는 고향에 온 학수에게 앙갚음을 하기 시작하고 학창시절 학수의 마음을 빼앗은 미경(신현빈)은 선미와 신경전을 벌인다. 여기에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생이자 학수의 인생을 꼬이게 한 원준(김준한)까지 등장해 지우고 싶은 과거를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상영되는 내내 관객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게 한다. 잠시 '짠함'을 느끼려는 찰나,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힘은 시나리오와 연출에 더해진 박정민을 비롯해 주조연 배우들의 재치 있는 열연에서 나온다. 무명 래퍼 학수를 연기한 박정민을 필두로 김고은 고준 신현빈 김준한 뿐만 아니라 명불허전의 장항선 정규수 등 탄탄한 배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변산'은 영화의 남미풍 레게와 발라드가 섞인 개성 있는 음악으로 채워져 유쾌함을 더한다. 변산의 노을은 CG(컴퓨터그래픽) 없이 담아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감성을 짙어지게 한다. 여기에 대규모 힙합 무대와 실제 래퍼인 카메오들의 등장도 영화를 보며 얻는 재미 가운데 하나다.

'변산'의 백미는 배우의 연기와 주옥같은 랩 가사, 극 중 인물이 지은(실제로는 시나리오 작가가 쓴) '폐허'라는 두줄에 불과한 시다. 랩 가사와 시에는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해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노을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가 공존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는 흑역사를 피하던 학수의 성장과 극복을 통해 ‘마주하고 싶지 않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선미에게 용서받기 위해 순간이나마 아버지를 용서하는 학수를 통해 ‘용서받기 위해선 용서하는 것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선 학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용서가 될 수 있을지, 아버지 앞에서의 학수의 행동은 옳은 지, '용기와 용서'에 관한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그 모든 것에 관한 결론을 내건 그렇지 않건, 학수나 그의 아버지의 행동에 관한 결론을 내는 건 관객의 몫이다. 4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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