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퍼즐] 길 잃은 국제영화제, 정관계 인사 의전 중단해야
- 입력 2018. 07.16. 11:23:09
-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한국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발자취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모든 국제영화제가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2017년),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2018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다이빙벨’(감독 이상호 안해룡) 상영 이후 불거진 부산영화제에 대한 정부 당국의 외압과 독립성 훼손은 영화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겼다.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영화단체의 보이콧이 계속됐다. 여기에 조직위원회의 내홍과 블랙리스트 등 갖가지 진통으로 인해 영화인들의 활력은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모든 국제영화제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잘 지켜 부산영화제는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정치색을 지닌 관의 간섭이 영화제에 어떻게 악영향을 끼쳤는가를 부산영화제는 2년여 기간 동안 뼈저리게 아픈 경험을 겪었다.
새 정부 들어서 부산영화제는 해촉과 고소 고발의 당사자였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새로운 이사장으로, 전양준 전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민간 주도 영화제의 완벽한 시스템을 확립한 셈이다. 관이 주도하거나 간섭하는 영화제는 발전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사례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발전 과정을 귀감으로 삼아야할 여타의 국제영화제들에는 정관계 인사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표면상으로는 영화인이 이끄는 민간 주도 행사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정관계 파워에 기대는 형색이다.
부산영화제보다 한 살 작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에서도 그런 그림자가 보인다. 제22회 부천영화제 개막식이 진행된 지난 12일. 부천시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개막식의 주인공은 이 지역 정관계 인사들이었다.
영화제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레드카펫 행사이다. 수많은 카메라맨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곱게 차려입은 우리들의 스타들이 입장하는 모습은 모든 영화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장면이다. 소중한 자리인 만큼 아무나 레드카펫에 세울 수 없는 노릇이다. 선택된 스타들의 화려한 꽃길이다.
올해 부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는 국내 국제영화제 행사 중 가히 기네스북에 기록될만하다. 행사 시간만 1시간이 넘었고, 레드카펫을 밟은 유명 인사(?)만도 1백명이 훨씬 넘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관련 스크린에서 대중에게 익숙한 얼굴은 손꼽을 정도였고, 듣보잡 배우와 비영화인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가관인 모습은 정관계 인사들이 손을 흔들며 떼로 행진하는 광경이었다.
지역 국회의원, 시장을 비롯한 전현직 고위 공무원들, 여기에 이번에 선출된 지방의회의원들까지 개회식장 로열석에 자리했다. 이어서 개회식 사회자가 “오늘의 귀빈‘을 소개하면서 그 첫 머리에 이들의 이름이 올랐다. 참 어이없는 진행이었다. 부산영화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다. 공개적인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이 같은 ’배려‘를 보고 이 영화제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민간주도 영화제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여러 지역의 다양한 영화제를 둘러볼 기회가 많은 한 매체의 문화부 중견기자는 이 광경을 보면서 “여전히 전제군주시대의 '격식' 또는 군사독재시대의 '형식'에 얽매인 모습을 만났다. 이럴 때마다 우리가 자율과 협력과 민주와 평등을 얘기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에 짙은 의문을 지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정된 듯한 형식’의 레드카펫 행사나 개막식이 진행되는 것을 ‘변함없이’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지역의 여러 영화제는 한결같이 ‘민간주도 행사’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관주도 행사로 오인될만한 진행은 여전하다. 정관계 인사들이 행사장 앞줄을 차지한 광경은 관주도의 군국주의적 행사격식을 그대로 옮겨 진행하는 듯 해서 씁쓸함을 넘어 '자율성'과 '다양성'이 유지되는 민주주의사회의 본질을 고민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모든 정관계 인사가 의정활동을 핑계로 자신들 사이에 형성되어 고착화된 무의미한 '서열'의 파괴를 거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극소수 인사가 틀에 박힌 '의전'을 깨뜨릴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고리타분한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고, '구태'를 고수하고 있음에 답답함만 늘어만 간다.
게다가 '의전'이라는 미명하에 행사장 의자에 등급을 매긴 것인지 권력의 크기에 따라 서열화 시킨 것인지 알 수 없는 근거를 토대로 의자에 이름을 붙여 '지정석'을 만들어 놓는 모습에 실없는 미소가 지어질 뿐이다. 일부 집행위원들이 이런 '관행'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럴 용기가 있음이 아직까지도 확인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자리보전’에 연연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거나 세상의 변화를 예견하지 못하는 영화제 지도층은 영화팬은 물론 영화인들의 지지를 모아내기 어렵다. '관행'을 고집하는 영화제 관계자는 조만간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하고,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여 스스로 도태되는 슬픈 운명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부산영화제의 굴곡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때이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사진=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