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괴’ 이혜리 “저로 인해 조금이나마 행복해지셨으면” [인터뷰]
- 입력 2018. 09.13. 10:36:59
- [시크뉴스 김지영 기자]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아이돌에서 드라마 배우로, 그리고 스크린까지 나아간 혜리는 ‘처음’이라는 설렘을 안고 관객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배우 이혜리의 스크린 데뷔작 ‘물괴’는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 이혜리는 극 중 수색대장인 윤겸(김명민)의 양딸 명으로 분한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배역을 맡았던 이혜리는 케이블TV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감독 신원호)에서 비로소 대중에게 ‘아이돌이 아닌 배우’로 낙인을 찍었다. 덕선으로 분했던 이혜리는 언니에게 눌리고 남동생에게 치이는 둘째의 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쾌활함을 캐릭터에 녹여내 호평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캐릭터가 실제 배우와 흡사해 ‘캐릭터에 벗어나야한다’는 것이 숙제가 돼버리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특성은 이혜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후에 맡았던 드라마 ‘딴따라’ ‘투깝스’ 모두 ‘덕선과 비슷하다’는 평으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이번 ‘물괴’에선 덕선과는 차별화를 두려고 한 이혜리의 노력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아직 원숙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덕선과 확연히 다르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관객에게 전해져 아쉬움을 대신 채운다.
“이번 작품으로 혹은 먼 훗날, 대단하게 연기 평가를 들으면 물론 좋겠죠. 하지만 지금 당장은 ‘혜리 사극도 괜찮네’ ‘액션 생각보다 잘하는데’ ‘어색하지 않은데’ 하면서 얼핏 생각했을 때 관객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드리고 싶어요. 저로 인해서 조금이나마 행복해졌으면 해요.”
그동안 이혜리가 매체 속에서 보였던 모습과 명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명 역시 쾌활하며 이혜리 본연의 모습이 녹아져 있다. ‘물괴’의 연출을 맡은 허종호 감독은 이혜리 캐스팅 이유에 “명처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제안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부터 깊게 캐릭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기획 계기와 작품의 큰 틀을 설명해주셨어요.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언제든지 작품에 대해 물어봐도 좋다고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이혜리는 명을 연기할 때의 주안점과 함께 캐릭터에 끌렸던 점으로 ‘주체성’을 꼽았다. 기존의 사극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다른 이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사건을 일으키고, 남자 캐릭터에게 보호받아야하는 존재에 그쳤다면 명은 오히려 남성들보다 앞서서 주도한다.
“윤겸이 꾸린 수색대에 조선시대의 어린 여자아이가 참여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명은 사건을 해결하려고 나서고, 씩씩하고 겁 없는 모습들이 연약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특히 명이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들이 멋있게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작품 안에서 저 혼자 여자이니 더 중요할 것 같았고요. 요즘엔 또 그런 게 이상하지 않잖아요. 배경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명이를 처음 만들 때도 이질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혜리가 ‘물괴’와 자신이 맡은 명을 대하는 태도는 답변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매 질문마다 정성을 다해 빼곡하게 채운 답변들을 내놓았으며 100점짜리 답안지나 다름이 없었다. 형식에 짜여 ‘달달’ 외운 듯 한 대답보다는 진심에 가까운 말들이 이어졌다. 이혜리는 ‘물괴’에서 명을 연기하는 동안 진짜 명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명이 왜?’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어요. 시체를 봐도 남들과 달리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에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윤겸이 친아버지가 아님에도 부르짖을 수 있도록 명이로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도 이런 지점에서 대화를 많이 했고요. ‘왜?’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에 맞는 감정이 나올 수 없어요. 명이 윤겸을 찾으면서 우는데 명의 감정에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면 눈물이 날 리가 없잖아요. 저 스스로도 충분히 만족시켜야 그런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해 ‘왜?’라는 질문을 계속했었어요.”
국내 크리쳐 무비에서 크리쳐를 상대하는 여자 주인공이 활을 잘 다룬다는 지점은 영화 ‘괴물’에서 배두나가 맡았던 남주를 떠올리게끔 한다. 양궁선수였던 남주는 활로 괴물과 맞서며 절체절명의 순간 결정타를 날리기 때문. 그러나 이혜리는 ‘괴물’보다는 ‘헝거게임’을 차용했다고 밝혔다.
“명이 ‘헝거게임’처럼 여전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고 참고를 했는데…. 참고만 했죠.(웃음) 사실 제 생각엔, 다른 작품을 보고 제 캐릭터에 가져오는 것도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 영역이에요. 기존 작품에서 똑같이 따올 수 없고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능력이라고 생각해서 부러워요. 그런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 많잖아요. 저로서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지점들을 생각하면 부럽더라고요.”
명이 윤겸의 손에 자라게 된 이유부터 수색대원으로 합류하게 되는 과정, 얕은 로맨스를 그리는 허 선전관(최우식)을 향한 감정 등은 다른 캐릭터와 달리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이 때문에 첫 사극에 도전하는 이혜리에겐 상세한 설정이 캐릭터 몰입에 도움을 받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보다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에 더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른 캐릭터보다 감정의 폭과 그런 장면들이 많긴 해요. 그래서 서사도 분명히 필요하고 감춰진 전사도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감독님과 선배님에게 도움을 받았고요. 그래서 부담과 동시에 ‘명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흘러가는 역할이 아닌 굉장한 한 축을 책임져야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내가 잘 책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와 함께 명이 “주체적이어서 좋았다”고 밝혔듯이 이혜리는 명의 당찬 면모를 살리기 위해 캐릭터 설정을 구체화하면서 명을 완성해 나갔다. 특히 시체가 쌓인 더미를 보고 거리껴 할 수 있지만, 명은 다른 수색대원들 보다 앞서 시체에 다가간다.
“시체가 엄청 리얼했잖아요. 그래서 더 명의 캐릭터가 살았던 것 같아요. 명이는 윤겸과 성한(김인권)과 산골에 살았을 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사냥만 하고 책만 읽으면서 실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책속에서만 보던 것들을 현실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을 거고요. 시체를 봤을 때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공부했던 것을 발휘할 수 있어서 발랄하게 다가가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가가는 이유가 명이로서는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죠. 명에겐 중요한 신이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여섯 편과 ‘물괴’, 그리고 영화 ‘뎀프시롤’(가제)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혜리는 자신의 최종 꿈을 명과 연결시켜 설명했다. 롤모델은 특정 한 명을 꼽기 보다는 다수의 장점을 본받고 싶다며 영리한 면모를 드러냈다.
“어떠한 한 명의 롤모델 보다는 많은 선배님들을 조금씩 흡수하고 싶어요. 어떤 선배님의 모습을 흡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배우고 싶어요. 명이 스스로 의술을 공부할 때 ‘이 친구는 나중에 혜민서 의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것처럼 저도 ‘어디에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모든 것의 발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저를 필요로 하면 도움이 된다는 거죠. 재밌고 신선한 어떠한 이야기를 혹시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제가 혼자할 수 있는 건 없고, 많은 분들이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