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퍼즐] 설현과 혜리의 ‘발연기’ 논란, ‘연기돌’은 소모품이 아니다
- 입력 2018. 09.17. 11:04:10
-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연기돌’과 ‘발연기’. 두 단어는 모두 사전에 올랐을 만큼 보편적으로 쓰인다. 사전적 의미로 ‘연기돌’은 ‘아이돌 중에서 연기 활동까지 병행하는 스타를 이르는 말’이고, ‘발연기’는 ‘매우 형편없는 연기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추석 극장가에 등장한 걸그룹 AOA의 설현과 걸스데이의 혜리를 두고 이 단어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연기돌’의 ‘발연기’가 현재진행형인 이유가 궁금하다.
두 사람 모두 맡은 역할은 영화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 액션 연기여서 배우의 능력을 평가할 내면연기의 기회는 적었다. 당연히 숙성된 연기를 해내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극의 중심에 서있는 남자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연기’ 평가를 받을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들은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촬영 전에 액션 연기 훈련도 열심히 받았고, 스크린에 나타난 열정 또한 뜨거웠다.
그런데도 그들은 ‘연기돌’의 ‘발연기’란 혹평을 받았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들 영화가 소문하고는 달리 그 결과물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시성’은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별 3개(5개 만점 기준)를 받았고, ‘물괴’는 4개에 그쳤다. 상영 5일 째 ‘물괴’는 간신히 누적 관객 60만명을 넘겼고, 상영을 앞둔 ‘안시성’은 몇 번의 시사회를 통해 혹평 일색이다. 특히 전문가 평점은 4,40(10점 만점)에 그쳤다. 이들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설현과 혜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영화의 실패에 대한 책임이 출연 배우에게 덮여진다면 불합리하다. 제작자나 감독이 ‘연기돌’을 캐스팅할 때, 대개는 그들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해서 기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티켓 파워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안시성’과 ‘물괴’라고 달랐을까. 그들도 ‘연기돌’의 상업적 가치를 캐스팅의 제일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아닌지, 높은 수준의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었다면 결코 ‘연기돌’을 캐스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숱한 걸그룹 멤버들이 배우 겸업을 선언하고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성적표는 낙제 수준이다. 걸그룹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출연한 미쓰에이 출신 수지의 ‘건축학개론’(이용주 감독)을 제외하고는 걸그룹 출신은 영화배우 겸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에프엑스 출신의 설리는 몇 편의 습작 출연 끝에 김수현과 함께 출연한 ’리얼‘(이사랑 감독)에서 과도한 노출까지 감행하며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에 참패하면서 스크린 뒤로 물러앉았다. 이처럼 ’연기돌‘의 영화출연 성공 여부는 출연 시기와 영화 흥행 성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기돌’이 영화와 TV드라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부쩍 커진 것은 사실이다. 주연은 물론 조·단역에 특별출연까지 걸그룹 멤버가 출연하지 않는 작품을 찾는 일이 어려워진 정도이다. “유명 걸그룹 멤버를 캐스팅했다.”며 투자자와 접촉하는 제작자와 감독과 프로듀서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다. 그들은 ‘연기돌’을 “엄마손은 약손” 같은 만병통치약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배우로서의 ‘연기돌’이 아니라 호텔 뷔페식당의 한 가지 메뉴처럼, ‘2080치약’같은 아무나 써도 되는 배역으로 소모시킨다.
‘연기돌’에 대한 관객의 시선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케이팝 바람에 편승한 ‘연기돌’의 인기 상승으로 20대 여배우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 관계자는 “주연급 20대 여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가능성 있는 배우는 대부분 유명 기획사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들 기획사는 젊은 여자 연기자들을 키우는 데 힘을 쏟지 않고, 걸그룹 멤버로 훈련시킨 다음 배우로 활동 폭을 넓히려 한다.”라고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영화계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지는 오래다. 투자자가 갑이고, 제작자가 을이고 감독 등 영화작가(?)는 그 다음이다. 걸그룹의 한류 시너지 효과를 챙기려는 자본가의 계산에 ‘연기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자고나면 한 팀씩 탄생하는 아이돌그룹 시장에서 걸그룹의 생명력은 갈수록 짧아지고,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배우 겸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기획사는 또 “영화 흥행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다시 가수 활동으로 손쉽게 이미지 회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려 든다. 기획사의 이 같은 이해관계가 ‘연기돌’을 필요로 하는 영화인들과 맞아 떨어져 생기는 현상이다.
이제 영화인들이 조금은 진지해져야 할 때이다. 주요 배역에 ‘연기돌’을 캐스팅하기 이전에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을 지녔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마땅한 배우가 없다.”는 불평은 한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은교’(정지우 감독)의 김고은, ‘아가씨’(박찬욱 감독)의 김태리, ‘코리아’(문현성 감독)의 한예리, ‘간신’(민규동 감독)의 임지연과 이유영, ‘신과 함께’(김용화 감독)의 김향기 등을 찾아내듯이,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배우는 많다. 스타를 골라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타고난 재능도 일정부분 몫을 하겠지만 연기력은 쉼 없는 훈련을 통해 향상된다. 예술 어느 분야이든 마찬가지이다. 요즘 스크린에서 관객의 사랑을 받는 신스틸러들을 보면 대부분 10년 이상의 무명생활을 겪어낸 배우들이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받고, 대학로 등의 연극무대에서 연기공부에 매달린 사람들이다. 한 연예인이 두 마리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없다. 한 마리씩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잡아야 한다.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연습생 생활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걸그룹의 활동 경력이 연기력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유명세만 믿고 스크린에 뛰어드는 ‘연기돌’의 용기는 만용이다. 이들의 용기를 이용해 티켓파워 효과를 겨냥하는 일부 영화인들의 속물적 근성은 사라져야 한다. ‘연기돌의 발연기’란 누명을 쓰고 있는 설현과 혜리는 상업영화의 소모품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연예계의 소중한 재산이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안시성' '물괴'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