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수살인’ 주지훈 “‘영화 잘 봤다’는 평, 꿈에서도 듣고 싶었던 말” [인터뷰]
- 입력 2018. 10.11. 14:22:12
- [시크뉴스 김지영 기자] 충무로 다작왕이 된 배우 주지훈이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영화 호평에 반색을 보이며 ‘암수살인’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최근 개봉한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은 형사 김형민(김윤석)이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수감된 강태오(주지훈)가 “사실 일곱 명을 죽였다”는 자백 하나에 의지해 피해자도, 증거도 없는 미제 사건들을 파헤치려 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은 ‘영화 잘 봤다’는 취재진의 평에 미소를 지으며 “꿈에서도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진심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자신 또한 영화에 만족감을 보이며 영화의 흥행을 빌었다.
“꿈에서도 ‘영화 잘 봤단’는 말을 듣고 싶었다. 찍은 사람 입장으로서는 상업영화의 재미도 있고 장르적 쾌감도 있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표현이 잘 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친구들끼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곱씹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지훈은 극 중 사이코패스 테스트로도 감정이 되지 않는 희대의 살인마 강태오로 분했다. 보통의 살인범이라면 우발적 혹은 계획적 범죄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강태오는 자신의 범행 시각, 장소,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를 무기로 삼아 김형민의 우위에 서려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암수살인이라는 단어도 몰랐다. 막장 살인극인 줄 알고 대본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매니저 추천으로 다시 보게 됐다. 처음엔 대본을 보는데 무서웠다. 강태오의 범죄 중 여자 친구를 살해했던 관계는 있었지만 대부분 복수심보단 우발적으로 범죄를 일으킨다. 이런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이니 무기력해지더라. 가장 무서운 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강태오의 범죄는 공권력의 부재도 아니지 않나. 정말 무서웠다.”
자신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선 영화와 소설 등의 장르에서 캐릭터를 참고하며 연기에 도움을 받지만 주지훈은 오로지 대본에 몰입했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실제 사건을 참고하지도, 사건을 재조명한 SBS 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하지도 않았다.
“실제 사건을 일부러 피했던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감독님과 매일 만나면서 취재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매 장면마다 궁금했던 것은 감독님께 여쭤봤고, 설명을 잘 해주셔서 제가 굳이 미리 시간을 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암수살인’를 보다보면 강태오의 고개 각도, 말투, 걸음걸이, 앉아있는 자세 등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관객의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들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의 애드리브가 아닌 사소한 설정으로 탄생한 것이다. 주지훈은 철저한 계산으로 힘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대사 안에서도 고개 각도를 나눠서 계산이 돼 있었다. 다 같이 고민해서 디테일 하나하나 따져서 다른 느낌을 줬고 김형민과 밀고 당기는 것을 표현해야하니 죽을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경상도 사투리도 써야하고, 배우에게 온전히 맡기는 것도 아니니 정말 힘들었다. 리허설을 한 시간씩 하니까 진이 빠졌다. 접견실을 캠코더로 찍는 장면에선 리허설을 하다 눈 밑이 떨리기도 했다. 현장가기가 싫었을 정도였으니까.(웃음)”
하나부터 열까지 계산 된 현장, 절대 약하지 않은 캐릭터를 맡았기에 고통은 배가 됐다. 대본을 보면서도 강태오의 심리가 헷갈려 감독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주지훈은 살짝 웃으며 “미친놈이 맞는데, 대본을 보면서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 했다.
“김형민 형사의 말에 응해주다가 살짝 던지면 인정할 때가 있다. 신발 얘기하다가도 ‘찾아봤네’라고 말을 한다던가, 숨길 수 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넘어가버린다. 저도 보면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작은 디테일이 많은 건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나중에 수습하는 건지 장면마다 대본에 다르게 쓰여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도 많이 헷갈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수감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자백을 하는 강태오.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 난다는 것을 알고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완전한 악인 캐릭터를 맡는 것이 실제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 그는 “제가 긍정적인 것 같다”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저는 그게 구분이 잘 되는 사람이다. 실화지만 영화를 보고 분노할 수도 있고 즐거워할 수도 있는데 저는 영화가 끝나면 감정도 끝난다. 실화 모티브라고 해도 소설 읽듯이 이야기라고 봤고, 이야기로서 재밌어했다. 악역이라는 부담은 지금 되고 있다. 할 때는 몰랐지만.(웃음) 제가 생각해도 저는 너무 긍정적이고 단순한 것 같다.”
주지훈은 ‘암수살인’의 강점으로 ‘묵직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로 꼽았다. 상업영화지만 단순히 재미에 그치지 않고, 살인범과 형사라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결말이 이들이 끝내지 않기 때문.
“아주 강렬하지만 마지막은 흐리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내는 게 두 주인공이 아니지 않나. 사실 이런 것에 우려가 있었고 다같이 고민을 했었는데 영화를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울림이 있게, 묵직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아서 좋았다”
주지훈은 올해만 해도 ‘신과 함께’의 해원맥부터 ‘공작’ 정무택, ‘암수살인’ 강태오까지 매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오는 12월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1에서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지훈은 이러한 자신의 행보에 ‘행운아’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보통은 배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역할이 특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좋을 수 있지만 저는 여러 개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데 운 좋게 다른 장르의 역할들이 오고 있어서 솔직하게 무섭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행복하게 찍었었고 행운아인 것 같다.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운 좋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여러 작품을 통해 대중과 익숙해진 주지훈은 이제 어린 아이들도 자신을 알아본다고 말했다. 자신을 향해 “어, 주지훈”이라고 아는 체를 한다고. 그럼 주지훈은 아무렇지 않게 “응 안녕. 고마워”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기억되고 싶다. 저기 멀리 있는 배우가 아니라 친숙하게 그리고 영화에 나오면 반가운 배우. 배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안보는 것은 관객들의 선택인데 나오면 반갑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제가 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감사히 겸허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언제 또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하겠냐.(웃음)”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주)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