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인문학 예능 ‘토크노마드’, ‘알쓸신잡’에 완패
입력 2018. 10.15. 10:40:10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MBC ‘토크노마드-아낌없이 주도록’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인문학(人文學)이 유행이다. TV에서도 인문학은 이제 블루칩이다. 각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명사들이 연예인 틈에 끼어 강의를 하거나 패널로 참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뭉뚱그려 이를 ‘인문학 예능’이라 부른다.

인문학 예능의 유행에 대해 방송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가뜩이나 합리적 사고는 부족하고 피 말리는 경쟁과 비교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예능 프로그램이 숨 돌리고, 사유할 틈을 열어주는 일은 당연히 의미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인문학이란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여기에서 ‘예술’을 떼어 내어 ‘예능’이란 거죽을 씌워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인문학 예능 프로그램’이다.

‘인문학 예능’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문학’과 ‘예능’을 조합한 프로그램인 만큼 어느 한쪽에 더 비중을 두었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격은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JTBC)는 ‘인문학’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tvN, 이하 ‘알쓸신잡’)은 ‘예능’에 좀 더 무게를 둔다.

연예인이 진행하거나 출연한다고 해서 모두를 ‘인문학 예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방송사는 ‘차이나는 클라스’만 해도 ‘예능’이 아니라 시사 교양으로 장르 구분을 한다. ‘오늘밤 김제동’(KBS1), 김구라의 ‘썰전’(JTBC), 김상중의 ‘그것이 알고 싶다’(SBS)는 ‘시사’로, 김석훈의 ‘궁금한 이야기Y’(SBS)는 ‘교양’으로 나뉜다.

연예인 진행자보다 출연자의 비중이 크거나, 콘텐츠 자체가 예능과 거리가 멀면 ‘인문학 예능’이라고 볼 수 없다. 방송에서의 ‘인문학 예능’ 제작은 언제나 지난한 과제가 뒤따른다. 인문학에서 요구하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동시에 ‘재미’까지 안겨주는 일이 쉬운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학문적 토대 위에 ‘재미’란 포장을 씌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성공한 프로그램은 현재로선 ‘알쓸신잡’이 유일하다. 줄곧 5~6%의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시즌3까지 진행될 만큼 프로그램의 신용도도 높다.

최근에 MBC가 ‘토크노마드-아낌없이 주도록’(이하 ‘토크노마드’)이 유사한 내용으로 ‘알쓸신잡’에 도전장을 던졌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인문학 예능’ 프로그램 등장이 반갑다. 두 프로그램의 경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알쓸신잡’과는 ‘여행을 통한 인문학 탐구’라는 비슷한 콘셉트인데, 현재까지는 2%대의 시청률을 보이는 ‘토크노마드’의 완패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방송 초기이니 만큼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여지는 남는다.

방송 전부터 전문가들은 ‘토크노마드’의 완패를 예상했다. 가장 큰 이유는 ‘토크노마드’의 인문학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학(學)’이라는 게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학문을 소재로 쓰려면 먼저 규칙과 원리가 존재해야 한다. 어떤 규칙과 원리가 필요한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알쓸신잡’에 비해 ‘토크노마드’ 출연진이 전문성에서 뒤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알쓸신잡’ 시즌3의 출연진은 진행자인 대중음악인 유희열을 제외하고 유시민 작가, 김영하 전 한예종 교수, 김진애 MIT 도시계획학 박사,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등 박사 교수급의 쟁쟁한 스펙을 자랑한다. 각 분야 전문가로 손색이 없다. 인문학의 규칙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들이다.

‘토크노마드’의 출연진은 연예인인 김구라와 남창희를 비롯해 카피라이터 정철, 영화평론가 이동진으로 구성됐다. 정철 카피라이터는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등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바로 그 카피의 주인공이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조선일보 영화기자를 지낸 언론인 출신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출연진만 보면 인문학을 다루는데 있어 ‘토크노마드’는 ‘알쓸신잡’에 비해 전문성이 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예능’의 측면에서는 외견상 ‘토크노마드’가 앞선다는 평가도 있다. ‘알쓸신잡’은 ‘인문학’에, ‘토크노마드’는 ‘재미’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행자 유희열과 김구라도 비교 대상이다.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김구라가 좀 더 앞서지만 프로그램 적합도에서는 유희열이 한 수 앞 선 것으로 보인다. ‘재미’만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구라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내가 제일 잘 나가”이다.

하지만 ‘썰전’에서 보여주듯 출연자에 비해 무게가 덜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겸손’이나 ‘양보’란 덕목에서는 김구라는 유희열을 따라 잡지 못한다. 김구라에게 ‘잡학다식꾼’이란 꼬리표가 붙은 것도 약점이다. 결국 “남보다 뛰어난 무엇이 하나도 없다”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유희열은 김구라에 비해 진행자로서의 덕목인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마치 ‘꽃보다 할배’의 짐꾼 이서진이 공손함을 미덕으로 인기를 모았던 이유와 비슷하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는 항상 출연자보다 뒤편에 서야 오히려 돋보이는 법이다.

영화나 대중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유명 배우나 가수보다 더 영화를, 대중음악을 잘 아는 듯 앞에 나선다면, 그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먼저다”란 유명 카피를 보유한 ‘토크노마드’는 진행자, 출연자 모두 ‘알쓸신잡’에 밀린 형국이다.

‘토크노마드’가 ‘알쓸신잡’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비합리와 광기(?)가 지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여행을 통해 그 시대, 그 장소를 다녀갔던 수많은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려는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바로 그것이 ‘인문학 예능’이기 때문이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그 힘을 아껴 다음 여행자를 위한 더 멋지고 새로운 내용을 담아주는 것이 두 프로그램이 지녀야할 시청자에 대한 예의이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MBC ‘토크노마드-아낌없이 주도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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