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읽기] 손나은 레깅스 ‘시크’ VS 클라라 레깅스 ‘섹시’, 시대별 아이콘이 다른 이유
입력 2018. 11.02. 10:57:11

손나은(2017년), 클라라(2014, 2013년)

[더셀럽 한숙인 기자] 트렌드는 직선이 아닌 회전 구조다. 유행은 부메랑처럼 시야에서 멀어져 안 보인다 싶은 순간 다시 되돌아온다. 한동안 거리에서 레깅스를 입지 않으면 한국여성이 아닌 듯 생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레깅스가 가장 광적인 열풍이 일었던 2013년을 전후한 시점을 주도한 이는 클라라였다. 클라라는 세련된 패션 감각을 소유한 패피가 아니었음에도 ‘레깅스 여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브랜드마다 레깅스를 매장에 진열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이후 4년이 흐른 지난 2017년 에이핑크 손나은은 레깅스 앞에 늘 붙어 다닌 클라라를 밀어내고 ‘손나은 레깅스’가 트렌드 키워드로 등극했다.

다리에 민망할 정도로 딱 달라붙어 컬러나 프린트 혹은 극히 제한적인 패턴 변형을 제외하고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레깅스가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의 특정 아이템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2013년에는 소비시장이 ‘섹시’에 열광할 때였다. 아이돌 시장이 지금은 노출보다 명확한 콘셉트와 설득력 있는 스타일이 우선시되지만 당시 걸그룹이라면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한 쇼츠나 스커트는 기본이고 이제 겨우 20세를 갓 넘은 걸그룹 멤버들에게 가슴 노출까지 불사하던 시기였다.

이처럼 섹시가 패션시장을 집어삼키고 있을 때 클라라는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쇼츠나 스커트처럼 직접적인 노출보다 입었지만 실제로는 입었다고 할 수 없는 노골적인 실루엣은 패션의 영역을 벗어난 대중문화 영역에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반면 4년 후인 2017년 이후를 점령한 트렌드 키워드 ‘손나은 레깅스’는 패션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손나은은 걸그룹 중에는 극히 드문 패피 중 하나다. 무대가 아닌 브랜드 포토월, 방송을 위한 출근길, 공항 등에서 패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피력해온 손나은은 무수히 많은 패션 브랜드들의 러브콜 우선순위에 올랐다.

몸매에 집중된 클라라와 달리 손나은은 가늘고 마른 몸을 앞세워 스타일로 타인의 시선을 끌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레깅스는 전혀 다른 역할을 했다.

손나은은 애슬러저룩이 트렌드에서 스테디셀러로 고착화 돼가는 시점에서 시의적절 하게 레깅스를 주력 아이템으로 중심에 배치했다. 클라라처럼 허리선까지만 내려오는 점퍼나 톱을 입거나 아니면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리는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거나 무엇이든 스타일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 세련된 애슬레저룩을 연출했다.

애슬레저룩으로서 레깅스는 뉴요커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에서 거리에 스포츠 레깅스가 스트리트룩의 키아이템으로 부상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트렌드세터로 자부하는 이들 역시 스포츠 레깅스를 적절하게 활용해 데일리룩을 소화한다.

영화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흩날리는 스커트 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었던 마를린 먼로의 화이트 홀터넥 원피스처럼 클라라에게 레깅스는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손나은은 패션 얼리어댑터 감성으로 레깅스를 활용해 노출이나 섹시 등의 단어와는 무관한 스타일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클라라와 같은 패션 취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없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티브이데일리 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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