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신성일 추모 특집] ‘시대의 아이콘’ 방황하는 청춘에서 쓸쓸한 중년을 거쳐 욕망하는 노년까지 영화 일대기
- 입력 2018. 11.04. 12:04:15
- [더셀럽 한숙인 기자] 지금의 드라마만큼이나 대중의 가장 친근한 미디어로 군림하던 시기 한국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배우 故신성일이 4일 새벽,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영화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야관문 : 욕망의 꽃'
어떤 시나리오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신성일은 ‘은막의 스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였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2013년 ‘야관문 : 욕망의 꽃’(이하 ‘야관문’)까지 53년간 포털 사이트 네이버 영화에 목록에 올라있는 영화만 519편으로, 주연급 다작 배우로도 영화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신성일은 무성영화 시대 배우들에게 요구된 비주얼과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렬한 감정 표현, 이 두 가지로 당시 ‘충무로’로 대변되던 영화계를 사로잡았다.
또렷하고 이국적인 이목구비로 당시 배우들과 다른 외양이 그를 데뷔와 동시에 주연급으로 올렸다.
그의 출연작 중 수작으로 꼽히는 ‘맨발의 청춘’(1964년)은 그의 이국적인 외모에서 나오는 반항적 이미지가 서두수의 비주얼 효과를 극대화 해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10년 후인 ‘별들의 고향’(1974년)에서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쓸쓸한 중년의 화가 문수는 그에게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줬다.
20대에는 역동기에서 소외된 반항기 가득한 청춘, 30대에는 격변기를 받아들이지 못한 도태된 중년의 아이콘으로 같은 시대를 산 남성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여성들에게는 잘 생긴 남자에게 드리운 외로움의 그림자를 보듬어 안아줘야 할 듯한 애정을 불러일으켰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행보는 마지막 작품 ‘야관문’으로 이어졌다. 부인과 아들을 잃은 후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젊은 간병인을 욕망하는 종섭은 늘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남자들의 깊은 내면 욕망을 대변해온 그가 영화에서 맡은 마지막 캐릭터가 됐다.
신성일은 남자들에게는 질시를 여자들에게는 연민과 동경을 불러일으킨 비주얼 배우였지만 그의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비주얼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신성일은 전후 잘 살자는 구호 하나에 매달려온 사회에서 20대였던 60년대에는 늘 아웃사이더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청춘의 대변 역할을 하고, 3, 40대였던 7, 80년대에는 잘 살게 된 사회에서 부적응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중년의 자화상으로 그들의 쓸쓸함을 대변했다.
노년이 된 최근까지는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노년으로, 노인에게서 모든 감정을 박탈해 버리는 사회를 향해 저항했다.
한국 영화계 비주얼 배우이자 시대의 아이콘으로 배우로서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히 해낸 故 신성일은 누군가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확신임을 절감케 하는 작품을 대중에게 남기고 떠났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