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1997년 IMF 사태를 복기하며 던지는 메시지 [씨네리뷰]
입력 2018. 11.20. 18:17:49
[더셀럽 최정은 기자]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는 대한민국 국민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다. 경제호황기를 누리던 국민은 예고 없이 닥친 경제 위기 상황을 차마 믿지 못했다. 사람들은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맛봤지만 썩어가는 뿌리를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국가부도의 위기가 닥친 97년 당시 대다수의 국민은 가려진 진실을 볼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신문, 텔레비전 뉴스 등은 정보제공 보다는 통제의 기능을 했다. 최국희 감독은 IMF 사태가 당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영화를 통해 ‘속지말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고 외치듯 강하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던진다.

최국희 감독은 볼링도박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스플릿’(2016)에 이어 국내 최초로 IMF를 소재로 한 ‘국가부도의 날’(제작 영화사 집)을 택했다. 국가부도를 일주일 앞두고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태가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김혜수는 적역을 만난 듯 보인다. 캐릭터는 ‘차이나 타운’(2015) ‘미옥’(2017) 등의 전작에서 보다 한층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고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 능력이 오랜 연기 경력을 증명한다. 김혜수가 연기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 하는, 극 중 가장 이성적이고 능력 있는 인물이다.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지를 지녔지만 기회주의적이거나 무지하거나 여성을 폄하하는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 저지당한다.

최 감독은 특히 한시현을 둘러싼 인물을 통해 노골적인 성차별과 정경유착을 강조하는데 이는 불과 10년여 만에 바뀐 사회적 인식을 세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이 같은 급격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도 실은 우리가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하는, 불변하는 무언가가 여전히 존재함을 느끼게 한다.

위기를 새 판을 짤 기회로 여기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필연적으로 한시현과 대립한다. 극 중 차관은 정경유착, 성차별의 상징 그 자체다. 조우진은 대사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처리한다. 날카롭게 각을 세워 한시현과 대립하며 관객을 극에 더 몰입하게 한다. IMF 총재 역을 맡은 뱅상 카셀은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협상을 주도하며 긴장감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유아인은 극 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또 다른 인물인 윤정학은 외국 투자자들의 철수 조짐과 실물 경제의 심상치 않은 징후를 포착, 국가부도의 위기를 짐작하고 위기에 투자했다. 절망하는 다수를 뒤로하고 득을 보는 인물이지만 어이없다는 듯 공허한 웃음 끝에 스치는 씁쓸함과 슬픔이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허준호가 연기한 갑수는 IMF의 타격을 온 몸으로 맞은 평범한 소시민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중소기업 사장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파산 직전의 회사와 가족을 살리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는 정신적 고통이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벼랑 끝에 몰린 수많은 국민이 받은 당시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대사 없이도 고뇌와 고통을 표현해 내는 허준호의 연기는 당시 온 고통을 겪던 국민의 소리 없는 절규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영화는 인물들의 빠른 대사와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을 통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보여주며 박감과 긴장감을 유지해 나간다. 아울러 건반과 타악기는 각각 절망과 긴장을 동시에 전한다.

2007년 미 금융위기 당시 은행과 반대로 베팅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긴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빅쇼트’(2016)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아인은 ‘빅쇼트’에서 투자자를 설득해 투자에 성공한 자레드 베넷이란 인물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을 떠오르게 한다.

최국희 감독은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경제용어가 난무함으로서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겪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용이 쉽지 않은 반면 빙빙 돌리기 보다는 명확하게 표현함으로서 간결한 느낌을 줘서 상쇄시킨 면도 있다. 문제점은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메시지는 분명하게 던졌다. 긴장감을 유지하되, 중간 중간 유머도 넣었다. 경제를 소재로 했지만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줬다.

오는 28일 개봉. 러닝타임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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