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부도의 날’ 유아인은 왜 '금융맨'을 택했나 [인터뷰①]
- 입력 2018. 11.27. 12:52:57
- [더셀럽 최정은 기자]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배우 유아인(33)은 관객이 공감할 것 같아 ‘국가부도의 날’을 택했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하려 노력했다. 그의 말처럼 ‘국가부도의 날’은 ‘공감’의 영화다. IMF(국제통화기금)라는 국민의 트라우마는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소재다. IMF를 겪지 못했더라도 지금의 현실에 영향을 미친, 멀지 않은 과거다. 적용 가능한 요소들이 보이고 시대를 불문하고 기억해야 할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유아인을 만나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제작 영화사 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영화 최초로 IMF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 부도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004년 열 일곱의 나이에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어느새 15년차 배우가 된 유아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 ‘밀회’(2014) ‘육룡이 나르샤’(2015) 영화 ‘완득이’(2011) ‘베테랑’(2015) ‘사도’(2015) 등의 대표작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로 종횡무진 활약한 그가 이번엔 위기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금융맨 윤정학으로 돌아왔다. 윤정학은 모두가 경제 성장을 낙관하는 가운데 외국 투자자들의 철수 조짐, 실물 경제의 심상치 않은 징후를 포착하고 국가부도의 위기를 직감, "위기에 투자하겠다"며 사표를 내던진 인물이다.
Q. ‘국가부도의 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세대 성별 불문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극 중의) 누군가에게든 자신을 이입해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완전 픽션이기보다 IMF라는 (실제) 위기상황을 다룬다. 이야기 자체가 슬프지만 신선한 소재다. 꼭 한 번은 해야만 이야기라 생각해 의의를 갖고 참여했다.”
Q. 인터뷰를 보니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라는 점에서도 끌렸다고 하던데.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출연을 결정하는 건 아니다. 단순히 여자가 주인공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이런 국가적 사건을 다루니까. 김혜수 선배는 평소 존경하는 선배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내공을 가진 선배가 주인공이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출자부터 제작진의 접근에 ‘신선함이 있구나. 타성에 젖은 게 아니고 이야기를 새 형태로 끌고가고 창조하려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제작진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뱅상 카셀의 캐스팅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맡은 역할도 내게 완전 최적화된 역할은 아니다. 금융맨.(웃음) 어찌 보면 전형적일 수 있는 인물 구조인데 결국 캐스팅 차별화로 새로운 지점을 만들었다. 이야기는 정통한 방식으로 가져가면서도 인물들의 힘으로, 극을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가져가는구나 (싶었다). 허준호 선배님의 캐스팅도 굉장히 신선했다. 마초적이고 강렬한 연기로 많이 어필하셨다.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선생님을 상처받는 소시민으로 캐스팅했다. 결국 그걸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캐스팅 효과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선배님의 주름 그 자체로 전달되는 소시민의 팍팍한 삶이 그대로 전달되더라.”
Q. ‘영화 '좋지 아니한가' 이후 11년 만에 '국가부도의 날'로 김혜수와 재회했다.
“워낙 이 바닥에 오래 계셨고 다양한 시대에 대중과 호흡하며 살아온 분이다. 댓글 하나, 누구 한 명의 말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분이다. 알다시피 여배우는 좀 더 곤란한 상황이 많다. 날 어릴 때부터 워낙 예뻐해 주신다. ‘아인아, 위엄한 일은 하지마.’ 그런 얘기를 하신다. 난 그런 갈등을 오래 겪어온 사람이다. 엄마도 ‘좀 편히 살라’고 하시는데 난 ‘그것보다 지금 재미있게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엄마도 좀 재밌게 지켜봐줘’라고 한다. 혜수 누나 역시 친누나 같은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선 모험에 도전하는 부분도 있고 어떤 면에선 책임 안에서 가져가는 게 크다. 살다보니 경력이 쌓이고 주변에 사람이 생기고 감당할 것도 생기다 보니 무조건 모험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Q. 작품을 함께 한 선배 여배우들이 유독 예뻐하는 것 같다.
“남보다 여배우 선배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팔짱을 끼는 등 스킨십을 잘 하다 보니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웃음) 유독 누나들과 일 할 때가 많았다. 김태희 누나 김희애 선배 등. 완전 상대역은 아니지만 혜수 선배와도 만나게 되고 거의 많은 사람들이 연상의 선배들이다. 나도 남자 형제가 없고 누나가 둘 있다. 그러다보니 (누나가) 편하다. 특히 여배우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느껴지니 배려하고 싶기도 하다.”
Q. 극 중 ‘오렌지’ 류덕환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궁금하다.
“동경하고 영감을 얻고 부러워한다. 뒤틀린 마음으론, 나도 더 잘하고 싶고 질투 나는 상대였다. 꼭 만나고 싶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본 사람들이다. ‘앤티크’에 함께 출연한 주지훈 형 등 그 그룹과 친하다. 그 그룹 안에서도 동생인데 굉장히 인정받는 친구다. 나 역시 (류덕환의) 작품을 볼 때마다 감동한다. 배우활동에 영향을 받고. 결국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 같다. 얕고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나 역시 후배건 선배건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보다 자극이 됐으면 좋겠다. 언제나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결국 연기는 리액션 이기에 그런 측면에서 나도 자극을 주는, 끊임없이 끌어내는 배우였으면 한다. 젊은 친구들 끼리 놀 때보다 드라마에 나오거나 할 때 정말 굵직하고 감히 마주하기도 힘든 선배들, 유독 그 선배님들과의 앙상블 연기를 (대중이) 좋아해준 것 같다. 그 지점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Q. 윤정학을 연기한 소감은?
“인물이 선명하지 않다. 악인도 선인도 아니다. 정의롭지도 부패해 있지만도 않다. 평범한 인간의 내적 갈등, 삶의 태도와 방식 등을 입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담아낸 인물 아닐까? 표현은 어려울 수 있어도 공감했기에 재미와 흥미, 진정성을 갖고 접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인물이 연기할 때 어려울 수 있다. (윤정학은) 열심히 살지만 내적 갈등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진정성을 갖고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Q. 극 중 윤정학의 선택에 공감하는지 궁금하다.
“윤정학의 경우 집값이 떨어지길 기다려 집을 사지만 갑수(허준호) 같은 인물은 집을 헐값에 팔아야 한다. 얻는 자는 줄고 잃어버리는 자는 는다. 이런 인물, 주변상황의 아이러니가 있는 그대로 잘 표현됐다. 정학 같은 경우 내적 갈등을 한다. 트랙 위를 달리고 (한)배에 탄 사람들을 데리고 멈추지 않지만 좌절해 무너지는 사람들을 봤을 때 인간적 반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삶은 멈출 수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선택을 이루며 갈 수 밖에 없다. 우리 안에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혼란, 갈등표현이 아주 적절한 입체적 인물이다. (윤정학은) 돌이킬 수 없는 ‘꼰대’가 됐다.(웃음) 수많은 부자의 전사를 우리가 가늠하게 하는, ‘강남부자’의 삶을 가늠케 하는. 사실 그들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잘 사는, 현명한 인생인가 하는 개념에서 그렇다. 그저 비난할 것인가 부러워할 것인가. 욕망 등에 매몰되지 않고 정신 차리고 살아갈 것인가. 그런 걸 끊임없이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 같다.”
Q. 영화가 경제를 다룬다. 실제로 경제에 관해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나.
“어린나이부터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 자체가 경제활동이다, 배우 활동이 순수하게 예술 활동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단순히 내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또 내가 표현하는 인물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에게까지도 생각이 뻗쳐있다.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나만 갖는 것도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투자 재테크에 눈이 떠있다.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내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다른 건 미뤄두고 두 시간 동안 그냥 즐겁자’ 할 수도, ‘가질 수 있건 없건 꿈꾸고 행복감에 젖자’ 할 수도 있다. 어떨 땐 영화적 재미를 전할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정신 차리자’ 할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은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친구가 되는 기분으로 메시지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Q.이번 영화에서 분노가 일거나 절망한 장면이 있다면?
“조우진 선배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하는 대사가 있다. 어두운 속내를 가차 없이 드러내는데 그 순간 그런 마음들이 폭력적인 말이 아닌데도 상처를 준다. 예를 들어 ‘내부자들’에서는 ‘대중은 개돼지’라는 말도 썼잖나.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우리 영화에서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의 단어 선택을 보면 고상하고 교양 있는 척 하는데 속내는 어둡고 무섭다. 칼날같이 매섭고 날카롭게, 드라이하게 표현하는 느낌이 되래 강렬하게 다가와 와 ‘이거 뭔가? 무섭다’ 했다. 관객이 좀 더 이걸 들었으면 하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권력자, ‘갑’이 나쁜 건 아니지만 절대적 악영향을 주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불합리하게 느끼는 것의 전사를 찾아나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누구를 원망하는 것을 벗어나 이 상황, 사회적 구상을 가져가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한 명의 배우로서 영화를 소개하며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 감사하다. 다른 작품 할 때와 좀 다른 마음이다.”
Q. 극 중 윤정학은 위험 가능성이 있지만 모험을 한다. 배우 유아인 역시 실제 모험을 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위험성 없는 모험은 관광이다. 모험의 재미를 추구하고 그런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위험성을 줄이는 방식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리스크를 감당한다, 뛰어드는 태도를 가져가는 것 같다. 나도 안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모험을 통해 새로운 안정을 가져가고자 한다. 그 ‘안정’이란 게 절대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내 삶을 좀 더 재미있게 가져가고자 한다. 이 일(연기)이 주는 축복이라면 축복이다. 일이 주는 고통과 불편, 즉 더 속박되고 구속되는 게 있지만 그럼에도 도전의 기회는 더 많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이미지’를 통해 뭔가를 드린다. 실망을 하거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그게 연예인의 방식이다. 마구잡이 도전이나 실험은 불가능하지만, 일정부분 신념이 있고 시행착오를 겪을 의지가 있다면 몸을 던지기 위해 준비하는 것 같다. 그 모험이 성취적인 건지 재미있는 건지 재미없는 건지 고립인지 소통인지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오래 지켜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좀 예쁘게 봐줬으면 한다.(웃음)”
Q. 각기 다른 작품을 마주할 때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다. 윤정학 캐릭터를 만나서는 어땠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나 역시 욕심 욕망이 있다. 조급한 마음도 들고. ‘나는 뭐지?’하는 고민에 휩싸였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 다양한 인물로 살아오고 고민하고 그 인물의 성질을 가져왔다. (과거) 그런 상태로 엉덩이에 불붙은 송아지 마냥 달려왔다면, 지금은 또 윤정학 같은 인물, ‘버닝’의 종수 같은 인물을 만나오며 ‘어떻게 이 영향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살 건가’ 생각한다. 과거 적극성이 또렷했다면 지금은 좀 더 ‘어떻게 소프트하게 가까워지고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생긴다. (‘베테랑’의) 조태오 같은 인물을 만나며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밀회’의) 선재 같은 경우 ‘그가 주는 따뜻함을 절대 잊지 않아야지’하고 생각한다. 첫 영화를 시작했을 땐 청춘의 아름다움 젊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건가’를 생각하는 그런 시작점이 있었다. 20대 전체가 내 인생에 영향력을 미친다.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 없는 것 같다. 환경 본성이 주는 영향은 있겠지만 선택이 다음 기준, 가치관을 만드는 것 같다.”
Q.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고민이나 고통이 큰가, 즐거움이 더 큰가?
“인물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해석은 인물이 되는 것이다. 내 안의 성질이 확장되는 것을 통해 연기한다. 판단하기에 앞서 감정으로 동화되고 느낌으로 가져가는 인물표현방식을 택한다. 어린나이에 시작하다보니 그쪽이 쉽더라. 공감, 해석 등에 관해 뭘 알았겠나. (캐릭터를) 만나고 다른 인물 만나고, 힘들면 힘들고 인물이 즐거우면 즐겁고. 어떤 때는 ‘난 어디 있지?’ 한다. 수많은 인물을 통해 날 만든다. ‘자연인인 내가 존재하는가?’를 생각한다. 요즘 들어선 내 삶도 좀 갖고 날 만들고자 고민한다.”
Q.끝으로 ‘국가부도의 날’이 관객 수를 떠나 영화적으로 이뤘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말해 달라.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자신의 선택을 돌이켜보게 하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