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방송연예계 화이트리스트 논란은 실제상황인가
입력 2018. 12.17. 10:47:14

이범수 김미화 김제동

[더셀럽 윤상길 칼럼] 블랙리스트로 한바탕 몸살을 앓던 대중예술계의 ‘리스트’ 논란이 화이트리스트로 옮겨 붙은 모양새다. 정치권력이 보수에서 진보로 이동한 탓이다. 모든 권력의 최상층에 정치권력이 자리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래서 가장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대중예술인까지도 이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사전적 의미로 블랙리스트는 “특별히 주의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는 인물의 명단”이다. 기업이나 정부, 단체 등이 부정적 의미로 작성하는 명단인데, 감시나 경계가 필요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다. 대체로 취업을 방해하거나 해고할 목적으로 쓰인다. 이와 반대로 긍정적 의미로 작성하는 명단은 화이트리스트라 한다. 대상에게 이익을 줄 목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진영 논리로 보면 보수진영의 블랙리스트는 진보진영에서는 화이트리스트가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으려면 한쪽에 치우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이란 말을 빼면 “인간은 동물이다”가 된다.

현재의 보수진영으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화이트리스트 방송인은 김제동이다. 그는 현재 KBS1 시사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이하 ‘오늘밤’)의 진행을 맡고 있다. KBS는 이 프로그램을 “과거의 엄숙하고 어려운 정통 시사프로그램의 틀을 벗고,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오늘의 이슈를 쉽고 재밌게 풀어나가는 색다른 포맷의 시사토크쇼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오늘밤’의 좌편향을 지적한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소속 의원들의 ‘오늘 밤’에 출연하거나 인터뷰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 14일의 결정이다. “공영방송 KBS의 ‘오늘밤’은 노골적으로 공영방송의 책무를 망각하고 편향성을 드러내고 심지어 북한을 찬양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방송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방송인 김미화도 도마에 올랐다.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은 13일 자신의 SNS에 “김미화 당신이 철도에 대해 뭐 안다고 남북철도추진위원장 맡았냐? 이거 문재인 정부판 화이트리스트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미화가 한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사실을 정부주도의 남북철도추진위원회로 착각해 일어난 논란이다.

이에 김미화는 “이언주의원은 제가 정부요직을 맡은 양 가짜뉴스를 퍼트려놓고도 부끄럽지 않으신지요. 민간단체 봉사활동과 정부임명직 구분도 못하십니까. 글 내리고 사과하십시요”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이언주의원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내가 가짜뉴스 퍼뜨렸다면서, 김미화가 팩트 체크한단다. 해라. 나도 팩트가 무척 궁금하다”라며 김미화의 사과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방송계에 이어 영화계에서도 화이트리스트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상영된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이 화이트리스트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영화 ‘출국’(감독 노규엽)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보수진영에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지난 11월 14일 개봉된 이 영화는 12월 16일까지의 관객동원은 8만여명. 흥행 참패에 가까운 저조한 기록이다.

이 흥행 기록을 두고 “우파 영화에게 극장이 스크린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보수진영에서는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한 평론가는 “좌파 진영에 의하여 완전하게 장악 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국 영화계에 ‘우파감독’은 거의 ‘멸종 내지 희귀 감독’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라면서 “‘출국’은 전반적으로 북한의 대남공작에 대한 비평적 관점을 잃지 않고 있는 수작이라 하겠으며 보수우파 영화 고갈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이다”라고 관람을 권유했다.

정치권에서도 ‘출국’의 관람을 독려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지지자 300여명과 함께 서울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이 자리에서 김진태 의원은 “이 영화가 화이트리스트로 많이 논란이 됐다. 과연 어떤 내용인지 많은 분과 같이 보려고 한다.”라며 관람의 이유가 진영 논리에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자유한국당 대전시당 당원들도 대전의 한 극장에서 ‘출국’을 관람한 바 있다.

‘출국’의 주연배우 이범수의 측근은 “이범수가 이 영화 출연 이후 화이트리스트 논란으로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화이트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출연자인 방송연예인이나, 그들을 출연시키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의 제작진은 고민이 깊다. 한 프로듀서는 “방송연예인의 재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만 쓰여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방송연예인의 정치세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연예인이 “우리도 시민사회의 일원이다”라며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대중에게 큰 파급력을 가져오면서 방송연예인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연예인들이 자신의 활동무대에서 표현하는 직간접적 정치 사회 비판은 화이트리스트 논란에 빌미를 제공한다.

방송연예인의 시사프로그램 출연과 과거사 소재 작품 참여가 늘어나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 정치학자는 “과거 일부 권력지향의 고위공무원 법조인 언론인 교수 출신 등 엘리트가 독점하던 정치를 대중과 친숙한 방송연예인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와 관련돼 있다”라며 “정치의 흐름이 과거처럼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방송연예인은 젊은 세대에 파급력이 크고, 소통이 가장 빈번한 직군이여서 대중 매체를 통해 자기를 능숙하게 표현한다. 따라서 김제동 김구라 같은 새로운 대중적 스타 방송인이 등장할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대중의 지속적인 지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비판 의식을 겸비한 대중의 높은 안목이 이들을 더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경제 측면에서 진보든 보수든,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은 연예인으로 통칭되는 대중예술인들이 대중 앞에 당당하게 리더로서 사는 시대이다. 미디어의 시대 그리고 문화의 시대에, 그런 사회적 영웅들이 자신의 정치적 혹은 사회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권력이 흑백의 리스트로 관리 감독하는 시대가 아니다.

스타 연예인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면서 “정치 활동을 하지 말고 연예활동이나 잘하라”는 말은 이제 구시대의 편견이다. 문화가 꽃피기 이전에 그들의 대중적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의 잔재이다. 방송이든 영화이든 작품(프로그램)은 작품 자체로 판단되어야 한다. 대중예술의 세계에까지 진영논리가 판치고 정치권력이 ‘갑’이 되는 세상은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티브이데일리 제공, KBS1 '오늘밤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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