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듣는 비주류 승리의 외침
입력 2018. 12.24. 11:31:13
[더셀럽 윤상길 칼럼] 2018년도 이제 일주일을 남겨 두고 있다. 올해도 수많은 영화가 관객과 만났다. 올해 한국 영화시장의 특징은 고예산 한국영화의 흥행 참패, 비수기에 개봉된 비주류 영화들의 유의미한 결과 도출이다. 특별히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이하 ‘보랩’)는 2018년 한국 극장가 최대 이변으로 풍성한 수확을 일궈냈다.

영국의 4인조 록밴드 ‘퀸(Queen)’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랩’은 23일 현재 누적 관객 수 85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신과 함께-인과 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이어 올해 흥행 순위 3위를 기록 중이다. 10월 31일 개봉한 지 불과 두 달도 안 된 일이다. 각급 학교의 방학기간과 연말연시 축제 분위기를 감안할 때 ‘1,000만 영화’ 등극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전 세계 흥행 수익도 한국이 제작국인 미국, 퀸의 모국인 영국과 함께 1위 자리를 놓고 3파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보랩’은 할리우드 영화로서는 저예산 영화였다는 점도 눈길을 모은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5,200만 달러(한화 약 580억 원). 올해 흥행수익에서 앞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5억 달러(추정치)의 1/10 수준에 그치는 ‘할리우드의 작은 영화’이다.

그런 영화가 어떻게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을까. 여러 전문가들이 많은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공통으로 꼽은 성공 요인은 ‘입소문’이다.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 ‘퀸치광이’, ‘퀸뽕 맞았다’ 등의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전국에 ‘퀸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입소문은 SNS를 통한 ‘보랩 따라하기’ 패러디 열풍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이 영화를 안 보면 일상 대화에서 왕따 당하는 분위기이다.

폭 넓은 관객층도 흥행에 한몫했다. 1973년에 데뷔한 퀸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1975년에 발표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음악이다. 당연히 퀸을 기억하고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연령층은 50대 이상이었고, 처음의 관객은 이들 중장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고 20~30대가 합류하면서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보랩’은 퀸을 잘 아는 기성세대들과 힙합이 주류 음악인 시대에 살고 있는 신세대들을 아울렀다. 세대 통합이란 긍정적 효과를 이뤄냈다. 요즘 SNS에 ‘나이 인증 놀이’ (출생 년도를 짐작할 수 있는 세대 경험을 올리는 것)가 한창인데, 이 또한 ‘보랩’의 영향이다. 이 놀이를 통해 젊은 세대의 과거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민일보는 이를 “복고주의 ‘레트로’(Retro)가 과거를 새로 발견하는 ‘뉴트로’(Newtro) 트렌드로 진화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보랩’이 바꿔놓은 관객 문화는 ‘싱어롱’(sing along)이다. 일부 영화관에서 시도한 방식으로 관객들이 영화 속 노래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영화 장면 중 록 콘서트가 나오는데 그 장면은 관객들이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서 보는 ‘떼창’이 극장에 등장한 것이다. 이 ‘떼창’의 매력에 빠져 ‘싱어롱’ 전용극장을 여러 차례 찾는 열성 관객(일명 N차 관객)도 적지 않다.

‘보랩’은 “한국 영화시장에서 음악영화는 무조건 흥행에 성공한다.”는 ‘음악영화불패론’을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국내 최초로 싱어롱 상영을 했던 영화 ‘맘마미아’(감독 필리다 로이드, 2008년)는 국내에서 457만 명을 동원, 북미를 제외하고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편 개봉 후 10년만에 나온 ‘맘마미아2’(감독 올 파커)는 229만명을 동원, 세계 3위 성적을 냈다.

싱어롱 상영의 본격화 시대를 연 음악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년)은 역대급 성적인 1,029만명을 동원하며, 한국인이 ‘떼창의 민족’임을 입증했다. 톰 후퍼 감독의 음악영화 ‘레미제라블’은 529만명, “나와 함께 노래할래요”란 카피로 싱어롱을 유도한 영화 ‘비긴 어게인’(감독 존 카니, 2013년)은 340만명, 로맨틱 포스터로 유명한 ‘라라랜드’(감독 데미안 셔젤, 2016년)는 360만명의 관객을 각각 동원했다.

‘갑’이 행세하는 주류 사회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도 ‘보랩’ 흥행에 작용했다. 대중은 언제나 자신을 비주류라 여기고, 어떤 분야에서건 비주류를 응원한다. ‘보랩’은 비주류의 영화다. 주인공인 프레디 머큐리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다. 그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런던 히스로 공항의 짐꾼으로 살았다. 그는 성소수자, 사회적 소외계층, 다문화 가정 등 너무나 많은 비주류라는 틀에서 고통 받으면서도 뮤지션으로 성공했다.

관객이 비주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공을 보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일.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갑으로 나타나는 주류사회에 대한 관객의 반감이 ‘보랩’열풍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보랩’은 약자였던 프레디 머큐리에게 공감한 관객들이 큰 위로를 얻은 영화가 되었다.

‘보랩’의 흥행 성공은 한국 영화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데도 한몫을 했다. 소위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스크린을 점령하는 현실에서 저예산 장르영화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기운 영화산업이 좀 더 작품성에 열중한 작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많은 극장과 관객이 시선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실 한국 고예산 기획 영화의 흥행 부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보랩’이 보여주듯 일반 관객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서 다른 영화를 선택하는 현상이 현저히 높아졌다. 한국 영화의 퀄리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한국 상업 영화계가 풀어야 할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꾸 뒤로 미루다가는 영화 산업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영화인 못지않게 관객도 느끼고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수상작은 3천만원의 제작비를 들인 작은 영화 ‘성혜의 나라’(감독 정형석)에 주어졌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오스카상) 외국어영화상 1차 후보에 선정됐다. 올해 주요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한지민의 작품 ‘미스백’(감독 이지원)도 저예산 영화였지만 7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들 작품은 모두 상업성보다는 예술로서의 영화에 접근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다. ‘보랩’의 흥행 성공도 관객의 달라진 눈높이 덕분이다. “관객의 판단은 언제든 옳다.” - ‘보랩’이 남겨준 교훈이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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