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읽기] ‘붉은 달 푸른 해’ 초록색 원피스 소녀의 함의, 죽음과 생명 ‘초록의 이중성’
- 입력 2019. 01.17. 16:20:09
- [더셀럽 한숙인 기자] ‘붉은 달 푸른 해’는 시와 시체가 함께 발견되는 살인 사건보다 이에 앞서 등장한 죽음의 암시자 ‘초록색 원피스 소녀’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소녀의 정체는 종반에 접어든 시점까지도 밝혀지지 않아 수많은 가설과 추정이 이어졌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초록색 원피스 소녀가 극 중에서 누구의 어린 시절인지는 연쇄살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어 붉은 울음과 함께 미스터리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 드라마는 ‘왜 굳이 초록색 원피스여야 했을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KBS2 ‘오늘의 탐정’에서 식물인간 선우혜 역할을 맡은 이지아가 영혼이 돼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입고 나온 피빨강 원피스처럼 죽음과 관련된 영혼을 상징하는 강렬한 색으로 빨강이 먼저 떠오름에도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초록은 빨강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초록은 소위 풀색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상징하는 색으로 ‘힐링’의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나 초록이 끝을 알 수 없는 침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프랑스에서는 ‘죽음’과 ‘불운’의 상징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미셀 파스투로는 ‘우리 기억 속의 색’에서 20세기까지 이어졌던 초록색에 대한 프랑스인의 뿌리 깊은 거부감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 보수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층에서는 초록색 옷을 ‘우아하지만 불길한’ 옷차림이라고 생각해 결혼식 같은 행운을 기원해야 하는 장소에서 초록색 옷은 금기였다고 전했다.
‘붉은 달 푸른 해’에서 등장하는 초록색 원피스 역시 시선을 초록에만 집중하면 음울한 기운이 드라마를 보는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섬뜩한 기운을 받는다. 이는 초록의 불길한 기운에 대한 함의가 단지 우리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타국의 역사 속의 단편이 아님을 말해준다.
반면 아이 전체로 시선을 확장하면 심장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편안한 나른함이 느껴진다. 불운과는 상반된 생명력을 상징하는 초록의 또 다른 이미지는 죽음을 부르는 것이 아닌 죽음을 막으려는 초록색 원피스 소녀의 진심을 함의한다.
‘붉은 달 푸른 해’ 마지막 32회에는 이같은 초록의 이중성을 그대로 담아냈다. 차우경(김선아)은 새엄마 허진옥(나영희) 집 벽난로에서 동생 세경이 좋아했던 초록색 원피스를 발견했다. 벽돌 밑에서 헤지고 낡은 상태로 발견된 초록색 원피스는 세경의 유해를 보여준 것보다 더 보는 이들의 심장을 후벼 팠다.
반면 자신의 친딸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듯한 허진옥의 모습에 더욱 고통스러워하던 우경을 감싸 안는 소녀의 초록은 진정과 안정감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위로해주는 듯했다.
우경이 선택한 ‘살아있음의 기회, 가능성’은 결국 초록색 원피스 소녀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 삶이 방관자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경에게는 고통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허진옥에게는 자백 후 죄 사함으로, 초록의 이중성을 말하는 듯 해 마지막 순간을 서늘하게 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MBC ‘붉은 달 푸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