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해부도] ‘SKY 캐슬’ 김서형 ‘권위와 강박의 블랙’, 상류층 향한 적개심
입력 2019. 01.31. 15:50:50

JTBC ‘SKY 캐슬’

[더셀럽 한숙인 기자] ‘SKY 캐슬’에서 그레이스 켈리 한서진, 보헤미안 시크 노승혜, 럭셔리 비비드 진진희, 데일리 시크 이수임 등 컬러와 실루엣은 물론 소소한 아이템까지 명확한 차이를 드러내는 개성 강한 네 명의 엄마가 등장한다. 그러나 김주영의 극도로 절제된 음울한 ‘미니멀 블랙’은 이 모든 걸 뛰어넘는다.

JTBC 금토 드라마 ‘SKY 캐슬’은 상류층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쥐락펴락하는 ‘현대판 빅브라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을 통해 자유라는 허울 아래 뿌리깊이 박힌 상류층의 특권의식의 민낯을 드러낸다.

김주영은 간혹 세상을 비웃는 음험한 미소를 날리지만 그것도 상대가 자신을 볼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서일 뿐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높낮이가 없는 저음과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저음과 무표정은 잔머리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뒤에서 묶은 업두헤어와 블랙 의상으로 인해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 된다. 김서형 패션을 전담하는 스타일리스트 김은주 실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색을 모두 제거하고 ‘블랙’만으로 일관함으로써 김서형을 김주영으로 재구성했다.

김은주 실장은 “배우 김서형은 강한 역할만 해왔습니다. 따라서 전작인 MBC ‘이리와 안아줘’와는 다른 결의 악역 이미지가 필요했습니다”라며 블랙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 권위와 악마 극단의 공존 ‘블랙’

블랙은 권위의 상징이다. 계급의식이 뚜렷한 과거에서 평등사회 논리가 당연시되는 현재까지도 블랙은 늘 경건함과 엄숙함으로 다중과는 다른 소수의 특권의식을 부각하는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반면 블랙은 어둠의 색이다. 죽음과 악의 그림자를 대변하는 색으로 늘 선을 상징하는 화이트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런 블랙의 이중성을 동시에 함의하는 분야가 종교다. 따라서 종교에서 블랙은 경건한 이성과 차가운 악마 두 극단의 상징을 모두 품고 있다.

김주영의 블랙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주영은 상류층의 무릎까지 꿀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 위세가 한시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위세가 생명력을 다하는 순간 상대의 권위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지 못하게 상대의 발목을 끊어 주저앉히는 것이 그가 자신에게 세운 철칙이다.

블랙은 김주영을 채우고 있는 치밀한 광기를 가리는 완벽한 위장의 색이다.

김은주 실장은 “김주영이 약해지는 부분(예서의 입시 코디네이터를 맡은 후 다소 부드럽게 접근하는 장면)에서 컬러를 다르게 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왔었습니다”라며 블랙이 흔들렸던 순간에 대해 언급했다.

그래도 결국 블랙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은주 실장은 ‘블랙을 잃지 말자’는 원칙을 밀고 나갔다.

◆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핏감’

시놉시스와 첫 6회 대본을 받은 시점에서 블랙 이외의 컬러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김은주 실장이 가장 중요하게 설정한 또 하나의 원칙은 몸에 밀착된 ‘핏감’이었다.

악마적 본능의 권위의식으로서 블랙은 김서형의 깡마른 몸을 정확하게 부각하는 실루엣으로 인해 강박적 이미지를 더한다. 재킷이나 코트 역시 허리선이 명확하게 잡힌 디자인이 작은 동선에도 마치 사열하는 듯한 효과를 낸다.

오버사이즈가 패션계를 지배하는 현 상황에서 타이트 실루엣을 찾는 것은 모래에서 진주를 찾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맞춤에서나 하는 가봉과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김은주 실장은 “재킷은 그나마 쉬운데 팬츠는 와이드나 스트레이트 피트가 대부분이어서 원하는 디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렵게 구한 슬림 피트 팬츠도 수정 작업을 거쳐서 김서형에게 입히는 수고로운 노력을 기울였다.

◆ 치밀한 인생 파괴 설계자의 ‘시계’

김주영은 한 치의 착오도 용납하지 않는다. 늘 몇 치 앞을 생각하고 무수히 많은 돌발 변수까지 고려해 설계도를 그린다.

이처럼 거미줄 같은 설계도가 머릿속에 있는 김주영에게 시계는 소울메이트가 같은 존재이다. 유일하게 하는 액세서리조차 귀에 꼭 붙은 작은 디자인을 하는 것과 달리 김주영의 시계는 차갑지만 화려하다.

김주영은 시계를 차는 방식에도 원칙이 있다. 늘 셔츠나 니트 위에 시계를 차 1분 1초까지 설계도대로 움직이는 치밀함을 강박증적으로 부각한다.

김은주 실장은 여기에 하나 더 김주영을 위한 배려의 코드로 ‘김주영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액세서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처럼 시계는 김주영 강박증의 상징이자 인간 김주영을 보여주는 다의성으로 김주영의 날선 이미지에 완성도를 더했다.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진 김서형은 늘 상대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듯한 날이 선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이번 김주영은 심리적으로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장악하는 소름 돋는 캐릭터로 그간 역할들을 넘어선다.

무채색의 블랙과 이런 블랙에 힘을 실어준 치밀한 설정이 김서형에게서 김주영의 ‘다름’을 끌어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JTBC ‘SKY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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