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거’ 고아성 “시대극 출연, 소원이었지만” [인터뷰]
- 입력 2019. 02.25. 17:27:53
-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고아성이 100년 전 유관순 열사로 변신했다. 그토록 바라던 시대극 출연에 누구보다 잘해냈지만 그에겐 조심스러움이 앞섰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 이하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서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고아성)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을 담았다.
케이블TV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도 80년대 여성 경찰관의 말투, 행동을 완벽하게 표현했던 고아성은 시대극 혹은 실존인물이 있는 캐릭터를 맡고 싶다고 여러 번 욕심을 드러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항거’는 두 가지 욕심을 한 번에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출연 계기를 밝혔다.
“소원이었지만 마냥 소원을 성취했다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니 쉽지 않았거든요. 예전에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으셨던 최민식 선배님께서 ‘이순신 장군과 10분만이라도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말이 저에겐 막연했는데 ‘항거’를 촬영하고 나니 그 말이 와 닿았어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치고 난 후까지 고아성에게 ‘항거’의 유관순 역은 부담이었고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도 어떤 지점을 부담스러워하는지 파악하지 못했으나 영화 ‘러빙빈센트’의 메이킹 영상을 보고 난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러빙빈센트’를 연출하고 제작하신 분이 10년 동안 프로젝트를 준비했었는데 가장 어려웠다고 느낀 부분이 그림에서 담기지 않은 부분을 새로 그리는 부분이 부담스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힌트가 있지만 새로 만드는 게 부담스러웠대요. 그걸 보니 알겠더라고요. 유관순 열사를 모두가 알지만 그게 피상적임에 불과했고 어느 정도는 제가 스스로 오롯이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어서 쉽지 않았던 거예요.”
영화는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소에서 보내는 1년을 그린다. 이는 유관순 열사의 사망까지의 과정과도 같은 맥락인데, 역사책에서 주로 다뤄지는 3.1 만세운동,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은 영화의 주요 에피소드가 되지 않고 과거 회상에 불과하다.
“저도 당연히 일대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3.1만세운동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이 주가 될 줄 알았는데 그건 과거 회상으로만 다뤄지더라고요. 감옥소가 가장 행동이 제약된 곳인데 이것을 영화 전체에 담는다는 것이 새로웠어요. 예상 밖의 전개여서 새로웠고요. 일대기가 아니어서 아쉽지는 않았어요. 특정한 콘셉트의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영화 ‘변호인’도 어떻게 보면 가장 대표적인 시절이 아니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항거’에 대한 고아성의 예상 밖 전개는 극 중 배경뿐만이 아니었다. 고아성이 생각하는 리더와 유관순 열사는 뚝심이 있고 신념도 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우직함을 생각했지만 ‘항거’ 속 유관순은 달랐다. 유관순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 집중한다. 유관순의 만세시위 주도 때문에 아들이 사망했다고 말하는 만석모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만세운동을 했던 것에 후회하거나 흔들려 고민을 털어놓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8호실 수감자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 등을 보인다.
“시나리오 내용이 시작되기 전에 감독님이 서문처럼 스텝, 배우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쓰셨어요. 거기에 리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체 게바라 같은 리더로서 손꼽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이 ‘나 잘하고 있는 거 맞냐’고 물어봤다고 해요. 그런 부분에서 방향을 잡았어요.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인물이 누구보다 신념은 강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눈물도 많이 보이고 후회도 하고 고민을 공유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항거’의 큰 방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께서도 유관순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러닝타임 105분인 ‘항거’는 대부분 흑백으로 극이 이어지고 유관순의 과거 회상장면만 컬러를 사용했다. 보다 자유롭게 의지를 표출할 수 있었던 만세운동 당시의 유관순과 8호실 내에서 일제에 억압받고 있으며 모든 것이 통제된 현재의 상황이 흑백으로 대조된다.
흑백연출은 시나리오 상에서도 정해져 있었다. 과거 고전영화에서 주로 다뤄지던 기법으로 현재엔 잘 사용하지 않아 연기를 해야 하는 고아성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스태프들 또한 이와 같았다. 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댄 후 지금의 결과를 도출했다.
“우리 영화는 결과적으로 흑백으로 약속이 됐지만 컬러영화와의 완성도로 촬영을 하고 이후에 흑백으로 돌리는 것이라 현장에서의 색감은 그대로였어요. 피를 표현할 때는 빨간 피를 쓰고 멍 분장을 할 때도 푸르스름하게 그렸고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장에서의 색감들이 좋았어요. 수용복에서 주는 느낌과 디테일한 상처, 서대문 형무소의 심상들이 있잖아요. 연기를 할 때는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흑백으로 표현이 잘 안 돼 아쉽기는 해요. 대신에 흑백은 질감을 더 생생하게 표현해줬던 것 같아요.”
‘항거’는 우리가 몰랐던 유관순의 모습과 더불어 8호실 수감자 25명과의 연대도 뜨거운 울림을 전한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8호실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거나 건강을 보살피고 1920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다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진행한다.
“8호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면에서 저를 제외한 24명의 배우들이 저를 보고 있고 카메라는 제 얼굴만 찍고 있었어요. 나머지 분들은 카메라를 등지고 있는데 모두가 저에게 표정으로 뭔가를 주고 있더라고요. 다들 연기를 진심으로 하고 있었던 거죠. 극 중에서 유대감을 형성하지만 영화 촬영하면서도 연대감을 느끼고 ‘내가 왜 혼자서 하려고 했지. 모두가 이렇게 다 도와주고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극의 말미, 먼저 출소한 유관순의 오빠 유관옥, 김향화(김새벽)가 유관순의 면회를 찾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해당 장면은 시나리오, 대본에 쓰인 대사가 아닌 배우들이 직접 만들어낸 장면이다. 당초 시나리오에는 극의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가 쓰여 있었고 이보다 더 의미 있는 대사를 만들기 위해 조민호 감독과 배우들이 머리를 맞댔다.
“영화 ‘내 사랑’을 재밌게 봤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나는 사랑을 받아 봤다’고 하는데 그게 죽음이 임박한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말이거든요. 그게 영화 전체를 축약할 수 있을 정도로 깊게 다가오는 대사에요. ‘항거’에서도 의미 있는 대사를 하고 싶어서 함께 고민을 했죠. 감독님께서 ‘면회를 가면 오히려 안에 있는 사람이 말을 더 많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더 뭔가 가슴이 아팠어요.”
유관옥, 김향화와 간신히 면회를 마친 후 유관순은 8호실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25명이 앉을 자리도 없어 돌아가면서 앉아있고, 가만히 서있으면 다리가 부어 서로 원을 그리며 돌던 북적북적한 8호실에 남은 건 유관순 뿐이다.
“실제로 8호실에서 혼자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가는 사람이지만 혼자 남아 있잖아요. 감옥에선 혼자 남아있지만 삶은 먼저 마감하고 가는. 그 부분을 잘 표현이 되게끔 하고 싶었어요.”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개봉을 하는 ‘항거’를 통해 고아성은 예비 관객들에게 유관순의 첫 등장인 서대문감옥소 앞에서의 머그샷을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며 첫 장면인 만큼 준비를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관객에게 당부하는 말을 전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저는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방대한 역사나 사실이라기보다는 8호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뜨거운 시간들을 보냈는지 대표적으로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