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PUNCH] ‘서울패션위크 4년차’ 정구호 총감독의 의미심장한 제언
- 입력 2019. 03.05. 16:30:42
- [더셀럽 한숙인 기자] 헤라와 서울패션위크 간 협업이 종료됨에 따라 ‘2019 FW 서울패션위크’로 행사명에서 헤라가 제외된다. 관 주도 행사에 기업이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해 기대를 높였던 3년간의 ‘헤라서울패션위크’는 화려했지만 ‘왜’라는 의문을 남겼다.
정구호 총감독
2015년 서울패션위크의 총감독으로 부임한 정구호는 두 번의 연임을 거쳐 총 4년간 서울패션위크 수장의 자리를 지켰다.
헤라와 정구호 총감독은 2016 SS를 시작으로 2018 FW까지 3년에 걸쳐 총 6번의 패션쇼를 함께 했다. 서울패션위크는 헤라가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시 랜드마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기업의 참여 하에 이뤄질 행사의 부가가치 제고에 관심이 쏠렸다. 더욱이 헤라와 함께 가세한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이면서 사업가이기도 한 아트디렉터 정구호가 총감독 직위를 맡아 패션쇼의 산업적, 대중적 부가가치에 대한 기대는 더욱 증폭됐다.
정구호는 부임 후 첫 컬렉션이었던 ‘2016 SS 서울패션위크’부터 운영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프레스와 바이어의 초청 및 의전을 참가 디자이너들에게 이양하고 서울패션위크 측은 글로벌 바이어 및 프레스에만 집중했다. 이뿐 아니라 패션쇼 개최 장소를 이원화 하거나 분산하는 등의 시도로 컬렉션 기간 동안 서울시 곳곳을 패션 축제지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패션 선진국에서나 볼 법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행사의 집중도 저하, 축제와 비즈니스 행사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 등 긍정보다 부정적 평가가 쏟아졌다. 정구호 총감독의 시도는 ‘혁신적’이라 할 만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으로 혁신이 퇴색하기도 했다.
정구호 총감독은 서울패션위크를 ‘혁신을 통한 변화’라는 과정을 이끌어냈지만 아직 ‘성장’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기에는 이제 막 발걸음을 땐 정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컬렉션을 앞두고 패션 전문가로서 해외 시장에서 서울패션위크의 위상 및 성장 방안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전했다.
그는 “저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운영하다고 해도 런던, 뉴욕, 파리 패션위크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시스템 자체가 오래됐고 (디자이너들이) 해외 시장에, 글로벌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큰 관문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저희가 해야 할 일은 파리 런던 뉴욕 패션위크처럼 된다가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 데뷔시킬 정도의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필터 역할을 해야 합니다”라며 운을 땠다.
정구호 총감독은 사업가답게 실현 불가능한 비전이 아닌 서울패션위크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유통, 펀딩 시스템을 비롯해 다양한 패션위크 정보 등 실질적인 프로그램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때가 오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그간 쉽지 않았던 상황을 에둘러 표현했다.
또한 “글로벌 펀딩 시스템을 확장해나가서 디자이너들에게 (일시적) 지원금이 아닌 비즈니스 입장에서 지원하는 커다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면 훨씬 발전된 서울패션위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며 실질적인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함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정부는 해당 시기에 가장 부각되는 사회적 사건 혹은 화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만큼 관 주도 하의 패션산업은 늘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기업의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따라야하지만 정부는 태생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어 서울패션위크가 홀로설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그간 정부 지원을 고려할 때 지금쯤이면 홀로서야 할 때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혼자 노력해서 하기는 쉽지 않고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기업들은) 안정된 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발전적인 사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정부지원 없이 운영하는 날이 정말 서울패션위크가 제대로 운영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며 기업의 관심과 참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구호 총감독이 서울패션위크와 함께 한 4년은 무수히 많은 아쉬움과 의문을 남긴다. 이 아쉬움과 의문에 정구호 총감독이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지 아니면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지 차기 시즌 패션쇼가 궁금해진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