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조우진 “‘사냥개’ 한지철, 거친 모습 아닌 평범함에 집중” [인터뷰]
입력 2019. 03.18. 11:36:11
[더셀럽 안예랑 기자] 영화 ‘돈’에는 돈을 향한 다채로운 욕망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불법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조우진이 연기하는 한지철만은 다르다. 돈은 그에게 ‘일의 대가’일 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 조일현이 아닌 한지철의 가치관에 공감할지도 몰랐다. 강렬함이 아닌 평범함에 집중했던 조우진의 선택은 그래서 옳았다.

최근 서울시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돈’(감독 박누리)에 출연한 배우 조우진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돈’은 하루에도 수백억이 오가는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금융 범죄를 그린 작품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열정만으로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은 전설의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돈에 대한 욕망에 눈을 뜬다. 조우진은 조일현, 번호표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고 이들을 집요하게 쫓는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로 분했다.

한지철 캐릭터를 완성할 때 조우진은 ‘워커홀릭’과 ‘집요함’이라는 키워드에 중점을 뒀다. 범죄가 지능화되고 점차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한지철의 워커홀릭 성향과 집요함도 극에 달했다. 바로 그 순간이 영화에 담겼다. 한지철의 집요함은 조일현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조우진은 “사냥개의 집요함과 워커홀릭, 그런 부분을 주 무기로 삼아서 전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누리 감독은 조우진이 가진 ‘뱀의 눈’이 한지철과 어울렸다고 말한 바 있다. 박누리 감독은 캐스팅 뒤 첫 만남에서 ‘왜 저를 캐스팅하셨냐’고 묻는 조우진의 눈을 보고 ‘뱀의 눈’을 연상했다고. 이에 조우진은 “내가 못돼보였나 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왜 그런 질문을 드렸냐면 저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저의 어떤 모습을 보고 캐릭터를 맡겼는지 선택한 사람만의 지점을 알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게 방향타가 될 것이고 나침반의 침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범 답안을 원하는 학생의 눈빛으로 봤는데 뱀의 눈빛으로 보였다니(웃음). 한지철이랑 어느 정도 맞닿으니까 다행인 거다”


그러나 ‘뱀의 눈’ ‘사냥개’라는 별명을 듣고 한지철의 거친 모습을 상상했다면 ‘돈’ 속 한지철은 전혀 다른 질감을 가진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지철은 평범한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나날이 심해지는 범죄를 보며 분노를 쌓아갔다. 극적인 사건으로 ‘사냥개’가 된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조우진은 거친 캐릭터 보다는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사냥개’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어디 물 게 없을까’ 침을 질질 흘리는 질감의 사냥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눈에 힘을 주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물어야하나 그런 고민을 했었는데 그렇게 접근했다가는 이 인물의 본질에서 어긋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상남자 보다는 범죄에 반(反)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리는 게 생동감이 있을 것 같았다. 또 평범한 한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바랐다. 그게 어쩌면 삼각편대에 있는 나머지 두 인물(조일현, 번호표)과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냥개’ 한지철의 평범함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났다.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조일현을 쫓다가도 이혼한 전처가 데리고 있는 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랬다. 금융 범죄를 쫓기 위해 일에 매달리다보니 가정에 소홀해진 가장의 모습. 한지철이 이혼남이라는 설정은 한지철의 워커홀릭 성향을 대변해줌과 동시에 한지철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요소였다. 이는 조우진의 아이디어였다.

“최대한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이기를 바랐다. 여기에 집요함과 워커홀릭이 극에 달한 걸 표현할 키워드가 없을까 생각했다. 이혼남 설정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고 한 마디 정도 넣으면 될 것 같아서 딸과 통화하면서 ‘네 잘난 새아빠한테 사달라고 그래’라는 장면을 넣었다. 그런 것들이 별 게 아닌데 톤이 주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축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일상적인 결이 대사 속에 묻어 나오면 감정 이입을 하는데 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극 중 한지철은 돈에 대한 욕망을 경계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일한 만큼 벌어라”라고 충고하는 그의 대사가 돈에 대한 한지철의 가치관을 보여줬다. 조우진은 “야심가 번호표, 성장하는 조일현. 이 속에서 돈과 사건에 대해 두 인물과 차별점이 있는 인물이 한지철이다”며 “돈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굳이 비교해서 말씀드리면 가장 정의로울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고 말했다.

돈에 대해서만큼은 조우진도 한지철과 같은 지점에 서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런 건 비슷하다. 돈은 정의로워야 되고, 사람 밑에 있어야 된다. 그런 부분을 강조하는 편이다”고 캐릭터에 공감을 표했다.

“몇 억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것 보다는 월세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극 하는 사람들끼리 뭘 먹으러 가면 각출을 해야하는데 언제 밥값걱정을 안 해볼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보다는 원하는 사람, 같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을 때가 더 힘들더라. 돈이 없어도 어둡지만 사람이 없으면 더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우진은 2015년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극 중 안상구(이병헌)의 신체를 자르라고 명령하는 강렬한 모습이 시작이었다. 그 후 tvN 드라마 ‘도깨비’를 통해 친근함을 무기로 대중에게 다가섰다. 현재까지도 그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 영화 ‘마약왕’ ‘국가부도의 날’ 등 강렬함과 친근함을 오가며 다작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우진이 만드는 캐릭터는 당위성에서 시작했다.

“극적인 인물과 인간적인 인물을 표현할 때 차별점을 두면 밑에 것들이 다 흐트러진다. 그럼 작품하고 안 맞는 인물이 나온다. 이 작품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이 복잡해지기 전에 단순하게 생각혀라고 늘 다짐하고 접근한다. 시작은 거의 똑같다. 이 사람도 인간인데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나 이런 것을 연구한다. 그런 전사들이 체화가 돼서 캐릭터로 나온다. ‘마약왕’이 강렬했던 건 문신빨인 것 같다(웃음)”

데뷔한지도 벌써 20년이 됐다. 조우진은 특유의 톤으로 모든 캐릭터를 자신화 시켰고, 그의 연기를 기다리는 팬들도 생겼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에서 그의 존재감은 어떤 배우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작품을 끌고 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생길만도 했다. 그러나 조우진은 “그런 걸 기대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런 포부를 가지고 상상하고 기대해본 적이 없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해보고, 매 장면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몫이다. 그 기회를 주시고, 장을 마련해주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따로 있지 않냐. 뭐든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해보겠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서 연기할 수 있는, 초심 같은 것이 흔들리지 않게 굳건히 밀고 나가는 게 제 몫이다”

조우진은 “오늘이 어제와 같아서 좋다”며 큰 것을 바라기 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일한 만큼만 벌자’고 말하는 욕심 없는 한지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이 어제하고 같아서 좋다. 이게 너무 행복하더라. 찍었던 영화가 있고, 개봉 앞둔 영화가 있고. 작업 준비 중인 게 있고 하루 종일 영화 얘기를 계속 할 수 있다. 이게 그냥 저한테는 너무 값지고 행복한 순간들이더라. 전혀 아무 것도 없었을 때도 있었으니까. 그런 걸 맛보고 나니까 이 행복감도 진하게 다가오더라”

‘돈’도 그런 의미에서 조우진에게는 의미 있고 행복한 작업이었다. 조우진은 영화 ‘보안관’의 제작진들과 다시 만나서 행복했다고 말하며 영화의 결과를 떠나 영화를 찍는 과정, 홍보 과정 모든 것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고, 본인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게 유도하는 좋은 제작진과 배우들을 만났다. 결과물은 보시는 분들이 평가를 하겠지만 인생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긴다는 건 저희 직업에 복된 일인데 그런 측면에서 ‘돈’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돈’은 쫓고 쫓기는 세 남자가 주는 긴장감으로 채워진 영화다. 서로의 욕망을 가지고 달려가던 세 남자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조우진은 조일현, 번호표, 한지철이 한 화면에 잡히는 순간을 영화의 포인트라고 설명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외꺼풀의 세 남자’라는 표현과 함께 말이다.

“외꺼풀의 세 남자가 한 장면에서 부딪힌다. 그들의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세 사람이 부딪히지 않냐. 그 부분에서 장르, 영화적 쾌감이 있지 않을까. 그 감정선으로 치닿기 전 외꺼풀의 세 남자의 눈과 호흡과 안면 근육의 변화와, 톤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돈’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안예랑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주)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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