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한계를 맛보게 한 ‘우상’, 초심으로 돌아갔다” [인터뷰]
입력 2019. 03.18. 15:12:44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천우희에게 한계가 있을까. 본드를 한 여고생(‘써니’)부터 의문의 연쇄 사건 목격자 무명(‘곡성’)까지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며 충무로의 대체불가능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천우희가 ‘우상’에서 또 다시 정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부족함, 아쉬움을 알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다”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영화 ‘한공주’로 충무로에 첫 발을 들인 이수진 감독은 차기작 ‘우상’에서도 천우희와 함께했다. 천우희는 ‘한공주’로 제 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그해 여우주연상, 신인여우상을 품에 안으며 충무로 루키로 떠올랐다.

이번 ‘우상’에서도 천우희는 독보적이다. 그간의 작품에서 만나본 적 없었던 강렬한 캐릭터로 영화의 중, 후반부를 책임진다. 최근 더셀럽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천우희를 만나 ‘우상’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천우희는 자신의 대표작 ‘한공주’에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상’에 대해선 “한계를 맛봤다”며 이번 작품이 쉽지 않았음을 대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우희가 맡은 련화는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온 조선족 출신에 오로지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 살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시나리오에서도 드러나 있었다. 련화만 처절한 것이 아니라 ‘우상’의 구명회(한석규), 유중식(설경구)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파국으로 치 닿는다. 천우희는 강렬한 ‘우상’의 시나리오를 보고 자신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세 인물이 굉장히 처절하고 보면 볼수록 연민이 많이 느껴졌어요. 결국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갖고자 하는 건 단순한 개인의 소망일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거거든요.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하나 든 생각은 감독님이 원하시는 그림이 있겠지만 제가 그걸 구현해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감독님과 ‘한공주’로 작업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품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것 같아요.”



련화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일들, 련화의 감정변화, 생각 등은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대사와 상황들로 인해 련화의 고된 삶을 대신 느낄 수 있다.

“감독님은 사실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요. 배우들의 의견을 듣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하면서 배우에게 맡겨주시는 편이에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련화라는 캐릭터가 표현되니 저도 련화를 만들어갈 때 그 대사만을 가지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어요. 상상이 필요했어요. 참고할 작품도 없었고요. 외모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써서 테스트를 정말 많이 했어요.”

많지 않은 분량, 자세히 그려지지 않는 서사 하지만 순간순간 표출되는 련화의 독기는 련화가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음을 대신한다. 천우희는 련화로 분하면서 헤아리려고 노력했고 이해하기 위해 한 발짝 씩 다가갔다. 그렇게 천우희는 련화와 동화(同化)됐다.

“극 중 언니의 대사처럼 소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가축, 유령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정말 단순하게 남들 다 갖는 이름 하나 가지려고 하는 데 그것조차 안 되니까요. 저는 제 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우상’을 보면서는 너무 슬펐어요. 7개월 동안 련화를 헤아리면서 제 안에 있는 열등의식, 분노와 부딪힌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서 많이 동화가 됐었죠.”

그간의 작품들에서 독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던 천우희지만 이번 련화는 달랐다. 이전의 캐릭터들과 일체되지 않기 위해서 스위치를 켜고 끄는 느낌으로 극 중 인물에 몰입이 됐다면 련화는 그러지 못했다.

“현장에서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연기에 몰입을 해야 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그러기 쉽지 않더라고요. 물론 제가 영화에 욕심을 내고 련화를 잘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 스스로가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 마음을 못 놓아서 슬픈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마음으로 보면서 울컥울컥했어요.”

무엇이 그토록 천우희를 ‘울컥’하게 만들었을까. 악한 행동을 저지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이는 련화의 과거를 짐작케 한다. 특히 “입은 아니돼오”라며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 것을 강조하고 가벼운 구두약속일지라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을 통해 이와 관련된 상처들을 받았음을 연상케 한다.

“련화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거짓된 말들과 자신을 무시하고 하대한 일들이 많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에 대한 피해의식처럼 많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련화는 비겁하지 않고 솔직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지 않을까요. 남들한텐 별거 아닌 말과 행동일지라도 본인한테는 그게 백번, 천 번 쌓였을 것 같아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천우희는 촬영 중 이수진 감독에게 고충을 여러 번 털어놓았다. 하지만 촬영이 다 끝나고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직전엔 소중함이 먼저 느껴졌고 그 소중한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촬영할 때는 힘들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이켜서 보면 감독님과의 작업, 선배님들과의 호흡, 련화라는 캐릭터를 맡는 것도 기회가 또 다시 오지 않잖아요. 소중한 것들을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 더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죠. 그래서 감독님에게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편집으로 살려달라’고 했어요.(웃음)”

천우희의 필모그래피엔 좀처럼 쉬운 작품이 없다. 여느 작품을 가지고 쉽다, 어렵다를 논하기는 옳지 않겠지만, 천우희의 출연작들은 쉽지 않은 작품이 대다수며 한석규 조차 ‘당분간 이런 거 하지마’라며 그를 말렸다.

“저도 달달한 거 하고 싶고 편한 거 하고 싶어요.(웃음) 한석규, 전도연 선배님도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작품을 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편이에요. 그 말도 와 닿아서 앞으로는 조금 더 여러 가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안 해본 장르나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고요.”

야망 있는 정치인, 장애가 있는 아들만 바라보는 서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외국인 노동자. 이들의 맹목적인 우상을 이야기하는 ‘우상’ 중 한 축을 맡은 천우희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느꼈을까.

“‘우상’을 찍으면서 스스로 우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줬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됐던 것 같아요. 나름 저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 같고요. 이 영화하는 동안 누구보다 잘해내고 싶었고, 연기를 하면 할수록 인물을 잘 표현해내고 싶어 하는데 결국 저도 연기가 우상이 된 거죠.”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지만 천우희는 극 중 인물에 100% 몰입하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은 매 작품마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번 ‘우상’을 통해 정점을 찍었고 촬영이 끝나고 나서야 과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성장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도 받아들이게 됐고 선배님들을 보면서 ‘정말 저렇게 오랫동안 좋은 연기를 하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주변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독이면서 자기 길을 가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우상’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구명회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최련화(천우희)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 오는 20일 개봉한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CGV 아트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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