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박찬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韓감독이면 자격 있지 않나요?” [인터뷰]
입력 2019. 03.27. 16:04:36
[더셀럽 김지영 기자] 한국 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TV드라마로 돌아왔다.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된 ‘리틀 드러머 걸’을 감독판으로 재편집해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이하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을 배경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소재로 한다. 영미권에서는 익숙한 사회문제이나 동양권에는 다소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드라마로 쉽게 풀어내며 로맨스와 액션을 더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특히나 한국 국적인 박찬욱 감독이 현 상황에도 맞물려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소재로 했다는 것은 방영 당시 영미권 시청자들에게도 화제가 됐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취재진들에게 현지인들의 반응을 들려줌과 함께 드라마 제작에 관한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한국 감독이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다고 했던 것 같다.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들은 새롭게 알게 돼서 좋았다고 하더라. 마치 일제강점기 얘기를 일본인들한테 보여주면 ‘이런 일이 있었군요’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그리고 한국 감독이라면 제 3자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겠나. 이런 분쟁, 폭력의 악순환, 앙갚음, 더 큰 폭력으로 응답하고 그런 역사적인 비극에 대해서 권위자니까.”

다수의 배우들이 출연하는 ‘리틀 드러머 걸’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출신의 배우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촬영을 했고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진보적이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평화롭게 공존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들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본 리딩할 때 이스라엘 배우들이 많이 울기도 했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원작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었던 박찬욱 감독은 이번 ‘리틀 드러머 걸’도 원작에 매료돼 각색을 결정했다. 특히 ‘리틀 드러머 걸’ 속 마틴 크루츠(마이클 섀넌)의 대사가 박찬욱 감독을 사로잡아 드라마까지 탄생하게 됐다.

“마틴 크루츠가 저한테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드라마 속에서 ‘픽션’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픽션의 세계를 건설하고 구축하고 현실로 느끼게 만들고 그런 일을 하는 설계자로서의 마틴이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낀 게 가장 컸다. 그 다음엔 찰리(플로렌스 퓨)의 무모하고 저돌적이고 상황에 빠지면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의 에너지에 끌린 것 같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주인공들을 다수 그렸던 박찬욱 감독은 이전과 달랐던 ‘리틀 드러머 걸’의 찰리에 매료됐다. 원작 속 배경은 1980년이지만 진취적이고 혁명의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시대에 도전적인 성격인 찰리를 발견하고 드라마로 구현해내고 싶은 욕심이 샘솟았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를 다수 선보여 왔다. 이번 ‘리틀 드러머 걸’에서도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가 의도치 않게 스파이로 활동하게 되면서 점차 내면적으로도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찰리는 책만 읽어도 생동감이 느껴졌다. ‘리틀 드러머 걸’에서 찰리는 좋아하는 남자 하나 보고 덤벼들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중엔 자기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인물로 변한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이번 작품은 영국, 독일, 그리스, 이스라엘 등 국제를 무대로 한 첩보전을 담기 위해 영국, 그리스, 체코 3개국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특히나 그리스 정부 최초로 허가한 아크로폴리스 나이트 촬영은 당시 국가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케이션 시행착오는 없었고 계획대로 됐었다. 다만 계획대로 하는 게 힘들었을 뿐이지.(웃음) 아크로폴리스는 너무 어렵게 얻은 촬영 기회였다. 촬영 할 때는 스태프가 많았지만 답사를 갔을 때는 몇 명만 가서 분위기가 숙연해지고 경건해지기도 했었다. 아무도 없고 몇 천 년 된 유적 앞에 있으니까. 촬영할 때도 비슷한 감흥을 느끼면서 조용히 찍었다. 하루 밤에 다 찍는 게 도전이었고 이미 거기에 설치 돼 있는 조명들을 활용해서 찍었다. 드론을 날려서 부감촬영을 하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리스 정부에게 허가를 받고 최초로 촬영한 장면은 찰리와 가디 배커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로맨틱한 장소이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관전 포인트이다. 이와 함께 아크로폴리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의미하기도 했다.

“가디 배커가 하는 말들이 맨스플레인 같고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유적을 누가 지배하느냐, 누가 이 지역을 점령했느냐에 따라서 신전이었다가 이슬람 사원이었다가 기독교 성당이 됐다가 하면서 계속 용도가 변경된다. 그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고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바뀐다. 덧붙이는 것이 마지막엔 영국의 귀족이 와서 중요한 조각을 떼서 대영박물관에 팔아버렸다 마지막은 영국의 차지다. 영국의 원죄를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연출과 강렬한 미장센의 거장인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명성을 입증케 하나 어딘가 모르게 그의 필모그래피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오히려 박찬욱 감독은 반성하는 듯 한 태도를 취했다.

“작품에 어울리는 형식을 취한다는 입장으로 연출을 해왔는데도 스타일이 두드러지게 관객들이 느껴지고 일관된 스타일이 있다고 느껴지셨다면 그건 저의 한계인 것 같다.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지는 않지만 개별의 이야기, 그때그때의 이야기나 주제나 캐릭터에 어울리는 형식을 찾아서 적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선택한 이야기들 자체가 한 사람의 관심사라는 것이 폭이 있으니까 늘 비슷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형식적으로도 비슷한 게 되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1, 2년의 간격을 두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현재는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서부극이 투자 확정단계에 있는 상태며 한국 영화로는 로맨스가 가미된 미스터리 수사물을 집필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을 움직이게 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제한을 없애고 싶다”는 바람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영화를 꼭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소재, 얘깃거리를 개발해서 작품을 만들어 제한을 없애고 싶다. 언어, 촬영장소, 캐스팅의 제한 같은 것. 만약 번역본을 읽었는데 한국에만 갇혀 있는 감독이라면 한반도로 옮겨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그러다보면 ‘아가씨’처럼 재밌게 될 수도 있지만 작품대로 좋을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이 중요한 것 같다.”

'리틀 드러머 걸'은 오는 29일 왓챠 플레이에서 6편 전편 만날 수 있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주)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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