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LOOK] 사망 16주기 장국영, 영화로 기억되는 청춘의 아이콘
- 입력 2019. 04.01. 18:19:39
- [더셀럽 한숙인 기자] 90년대 홍콩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국영이 사망한지 올해로 16주기를 맞았다.
장국영은 2003년 48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25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딘보다 더 강렬하게 시대를 관통하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이는 그의 수많은 대표작과 섬유학 전공자로서 남다른 패션 감각까지 ‘꽃미남’이라는 가벼운 수식어에 가둘 수 없는 스타성으로 입증된다.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은 당시 홍콩 스타들의 정석이었던 가수이자 배우였지만 여타 스타들과 달리 두 분야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배우로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다. 90년대 홍콩 영화의 90% 이상을 차지했다고 과언이 아닌 느와르는 물론 중국 근대사를 다룬 사극과 동성애를 다룬 퀴어 무비까지 다양한 장르에 출연해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당시 홍콩 배우들은 다작이 당연시 됐지만 1978년 영화 ‘구교구골’로 시작해 2002년 ‘이도공간’까지 24년의 활동기간에 비해 대표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배우 장국영을 거론할 때 홍콩 느와르 마니아들은 제일 먼저 ‘영웅본색’(1987년)을, 홍콩 판타지 사극 마니아들은 ‘천녀유혼’(1987년)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나 장국영은 흥행성은 물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성까지 갖춘 수많은 상업영화를 남겼다.
특히 중국 문화혁명 시대를 다룬 ‘폐왕별희’(1993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 젊은이들의 불안한 삶을 다룬 ‘아비정전’(1990년),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동성애를 다룬 ‘해피 투게더’(1997년), 멜로의 스테디셀러 ‘성월동화’(1999년)는 지금까지도 역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장국영은 1989년 갑작스럽게 은퇴 선언을 하고 1990년 캐나다 이민을 선택하며 홍콩을 떠났다. 그러나 2년 후인 1992년 영화 ‘가유희사’로 홍콩 영화계에 복귀해 다음해인 1993년 문제작 ‘해피 투게더’로 보수주의가 팽배한 아시아권에 동성애를 화두로 던졌다.
줄곧 동성애설을 몰고 다녔던 장국영은 2000년 타임紙 인터뷰에서 “나는 ‘양상적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48년의 그의 삶은 ‘스타’와 ‘아이콘’ 두 단어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사망한지 16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그의 대표작들은 세련된 색채와 메시지로 젊은 층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