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엽 작가, 디오라마로 역사를 기록하다 [인터뷰]
입력 2019. 05.10. 20:18:33
[더셀럽 김지영 기자] 한번쯤 박물관 혹은 모델하우스 전시장에서 실제 크기를 축소한 모형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언엽 작가는 이 축소한 모형, 디오라마에 조명과 음향 등의 여러 가지 기술을 더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제 그가 만든 스토리는 단순한 재미 혹은 흥미를 넘어서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물이 됐다.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신언엽 작가는 다양한 영화와 방송에서 미술감독, 세트디자인을 담당하다 디오라마로 방향을 틀었다. 오로지 혼자서 기획하고 연출한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간 미술 작업 당시 함께 진행하는 축소 모형을 제작했던 경험이 1/6스케일의 디오라마로 이어졌다. 여기에 무대미술을 했던 노하우를 집어넣고 방송과 영화, 광고 등을 했던 경험들의 집약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초반엔 신언엽 작가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영화 ‘대부’ ‘배트맨’ ‘백 투 더 퓨처’ ‘매드맥스’ ‘스타워즈’ 등이 그의 손으로 구현됐다.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상영되는 것처럼 캐릭터의 역동적인 포즈, 이와 관련된 음향과 조명 등으로 리얼함을 강조했다. 외국 히어로물을 주로 하던 신언엽 작가는 국내 히어로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 첫 주인공으로 영화 속 인물이 아닌 대한민국 역사의 한 순간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판문점 선언이 감동으로 느껴졌어요. 통일을 우선적으로 바란다는 것보다는 이 상황을 재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큰 틀로 디자인을 한 뒤 수소문 끝에 통일부 관계자를 만나게 됐죠. 제 자료들과 피규어까지 가져가서 통일부 관계자에게 보여드렸어요. 디오라마가 생소하다보니까 설명을 자세하게 드렸죠.”

신언엽 작가는 단순히 국내 전시에 제한을 두고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북한에서 전시하고 북한에 있는 미술팀들과 함께 협업하는 문화교류도 내다봤다. 그는 “문화가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의 간절하고 사명감 넘치는 열의는 통일부 김연철 장관, 천해성 차관에게도 전해졌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가장 현실적으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선 실제 장소에 찾아가는 것이 좋을 터다. 최근에서야 판문점 견학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됐으나 신언엽 작가가 작품을 준비할 당시엔 UN사에 허락을 구해야했다. 하는 수 없이 신언엽 작가는 수 만장의 사진, 구글 위성사진 등을 참고해 실감나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판문점 회의장, 파란색 초소장의 표현을 제일 디테일하게 하려고 했어요. 창고이기 때문에 창고의 질감, 부피, 깊이랑 시간이 오래 흐른 느낌, 비바람이 몰아쳤을 때의 느낌을 살려야 했어요. 모래의 흔적과 빗물의 흔적에 신경을 써서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죠. 동적으로 표현하려고 가장 애썼어요.”



디오라마 작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하고 있는 신언엽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중에도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진행되는 ‘봄이 오면’ 전시 중 관객들의 반응을 옆에서 바라보며 느꼈던 것들을 전하며 감격을 표했다.

“어른들이 감동을 많이 받더라고요. 가지 못한 공간이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좋으니까 감동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았어요. 외국인들은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 돼 있기 때문에 작품 앞에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요. 특히 외국인들 중 남북의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기 때문에 좋은 얘기들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어요.”

특히나 그는 대학교 때 들었던 한 얘기의 주인공이 자신이 된 것 같다며 특별한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언엽 작가가 들은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꿈을 물어보고 그 꿈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주는 사진가의 일화였다.

“그 사진가처럼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 작품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게 뿌듯해요. 또 제가 어렸을 때는 이런 것들이 없었는데 제 작품을 관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좋은 문화에서 좋은 축은 담당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신언엽 작가는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한국의 역사를 중점으로 다루는 전시를 할 예정이다. 그의 계획 중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위안부, 3차 남북정상회담 등이 있다. 아픈 역사와 기억해야할 역사들을 문서로만 남기는 게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자신만의 해석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고증을 생각한다면 박물관에 들어가는 게 맞겠죠. 일반적으로 봤던 작품들이 그런 디오라마일 것이고요. 하지만 제가 하고자하는 디오라마는 달라요. 제가 생각한 스타일을 디오라마로 표현하는 것이라 고증에 대한 것도 다르게, 접근 방법도 다르게, 자유롭게 하려고 해요. 아픈 역사는 아픈 역사대로, 그렇지 않은 역사는 관심 있고 재밌게 하려고 하고요. 미술 쪽으로도 인정을 받아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를 하고 싶어요.”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도 디오라마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많이 않다. 신언엽 작가는 국내 디오라마의 1세대 작가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중들이 디오라마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알리는 게 우선이에요. 그래서 상설전시를 스무 차례정도 진행했고 앞으로도 예정돼 있어요. 저는 취미로 시작한 일이지만 공익성을 찾게 됐고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함께 걷기 위해 직업군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대학원 강의도 나가고 있어요. 여러 가지 판을 벌리고 있죠.(웃음)”

신언엽 작가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작업하면서 아쉬운 점도 없었고 아침에 해뜨기를 바란다며 인터뷰 도중에도 “빨리 가서 작업하고 싶다”고 열의를 드러냈다. 그가 푹 빠진 디오라마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디오라마 박물관을 만들고자 했는데 조만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해외투어를 돌면서 제 작품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고요.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 벌어지지 않는 일에 대한 기록을 먼저 하고 싶어요. 우선 내년엔 북한에서 전시를 하는 게 목표에요.(웃음)”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권광일 기자, 신언엽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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