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들' 박형식 "준비하지 말아야했던 권남우役, 영화 보니 알겠더라" [인터뷰]
입력 2019. 05.17. 09:00:00
[더셀럽 안예랑 기자] 박형식이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섰다. 순수하고 긍정적이며 밝은 에너지를 뿜어대는 영화 ‘배심원들’ 속 캐릭터를 웃도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순수한 매력이 박형식을 감싸고 있었다. 군대를 가야한다는 압박감과 첫 상업 영화의 공개를 앞둔 부담감 대신 제대 후의 기대감과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했다는 행복감만이 남아 있었다. 보는 이들도 웃음 짓게 하는 밝은 미소와 함께 말이다.

최근 서울시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에 출연한 배우 박형식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배심원들’은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해 첫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보통의 사람들이 존속살해 사건을 두고 그들의 상식에 기반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배심원들’은 박형식이 주연을 맡은 첫 번째 상업 영화였다. 첫 작품을 문소리, 윤경호, 김홍파, 김미경, 조한철 등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박형식은 부담감을 덜고 작품에 임할 수 있었다.

“저는 단 한 번도 극을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묻어간다면 묻어간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첫 작품을 배심원들 8명이 주인공인 영화로 할 수 있다는 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연기 잘하는 선배님들과 이 작품을 하면서 부담감도 덜었고 심지어 배우기까지했다. 저는 굉장히 행복했다”


권남우는 성급하게 죄를 판단하기를 종용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싫어요’라고 외칠 수 있는 고집과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엄숙한 재판장에서도 기어이 손을 들어 물어보고야 마는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었다. 홍승완 감독은 과거 MBC 병영 체험 예능 ‘진짜 사나이’에서 순수한 매력을 뽐내며 ‘아기 병사’로 활약했던 박형식의 모습을 보고 권남우를 제안했다. 감독이 원한 권남우가 어떤 캐릭터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때(진짜 사나이)는 아무것도 몰랐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고 눈치껏 사람들이 하는 걸 따라했다. 감독님이 그걸 원하신 거다. 그런데 5년이나 지났고 저는 많은 경험을 했고 이제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다. 권남우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는데 제가 감독님을 만나자마자 ‘왜 남우가 이런 대사를 하냐’며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당황하신 거다. 그래서 미팅을 되게 많이 했다”

감독이 박형식에게 했던 당부는 단 한 가지였다. ‘아무런 공부도 하지 말고 와라’. 그렇게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간 현장에서 박형식은 ‘우리 나라에도 배심원이 있나요?’라는 대사 하나를 무려 27번이나 반복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감독님이 뭘 원하셨는지 모르겠다. 저는 편한데 계속 편하게 하라고 하더라. 도대체 편하게 하는 연기가 뭐지. 그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게 없이 어떤 느낌만 가지고 촬영을 하는데 계속 다시 하는 거다.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선배님, 스태프분들에게 너무 죄송했다”

이어지는 실수에 안절부절 못하는 박형식에게 문소리는 ‘나는 데뷔 때 이창동 감독님 작품에서 40~50테이크를 갔다’는 위로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려 27번 만에 감독을 흡족하게 하는 결과물이 나왔다. 박형식은 “어느 순간 정말로 아무 생각 안 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내가 대사를 쳤는지 안 쳤는지도 모르겠는데 감독님이 ‘완전 좋다’고 하더라. 이게 뭐지.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못 느껴야 감독님이 오케이를 하시는 건가 싶었다”며 “그게 우리들만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됐다.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출연자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현장에 출근했고 배심원실이라는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시간을 보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호흡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박형식은 사라지고 권남우만이 남아 있었다. 문소리는 어느순간 달라진 박형식의 연기에 ‘쟤 이제 완전 남우 같아’라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촬영을 시작하는 거다. 준비한 거 하나 없이. 그런데 서서히 선배님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대사를 쳤을 때 ‘이 말을 듣고 이 대사를 치겠지’ 이렇게 해서 대사가 나온다.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즉각적으로 반응이 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내가 촬영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스스로도 의심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감독님은 촬영이 끝나면 좋다고 하시고.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믿고 가는 거다. 정말 많이 불안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연기에 접근할 수도 있다는 걸 새롭게 안 시간이기도 했다. 연극하는 것 같았다. 공연에 올리기 전 리허설을 해보는 것처럼, 촬영이 아닌 것처럼 하니까 나도 어느 순간 빠져들어 있더라. ‘남우 같다’는 말을 들으니까 그래도 내가 이 안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구나 싶어서 되게 행복했다”

권남우로서의 모든 연기를 끝낸 박형식은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권남우를 보고서야 비로소 감독이 원한 권남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알겠더라. 권남우가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으면 어리바리해보고 민폐처럼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얘는 어떤 악의나 의도가 없고 단지 순수한 정의만을 위해서 나아갔다. 때문에 이 얘의 말과 행동이 설득력을 갖추고 이 얘의 말과 행동을 관객들이 응원하고 싶어진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아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큰일 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형식은 권남우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것 못 참는 것은 저랑 비슷하다. 자랑인지 아닌지 몰라도 저는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하고 모르면 물어본다. 모르는 게 창피하지 않다”면서 “권우도 자기 상식 안에서 모르는 것에 대해 손을 드는 게 창피하지 않은 거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형식은 ‘모르는 것을 궁금해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알고 싶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저런 연기를 하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목소리를 바꾸지? 무언가 알고 싶어야 발전이 있지 않냐. 그래서 남우라는 캐릭터에 애착이 갔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박형식의 성격은 작품관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슈츠’(2018) 천재 변호사, ‘힘쎈여자 도봉순’(2017) CEO, ‘화랑’(2016) 왕까지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했던 박형식은 ‘트랜스포머’ ‘어벤져스’ ‘트와일라잇’부터 피아니스트까지 더욱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 해봤던 거 다 해보고 싶다. 너무 궁금하다. 저런 역할을 안 해봐서 너무 해보고 싶고, 이 역할을 안 해봤으니 ‘어떻게 해야할까’ 혼자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걸 좋아해서 (상상 속에서) 별의별 영화를 다 찍어봤다. 뱀파이어도 됐다가, ‘어벤져스’에도 출연을 했다가 피아노를 잘 치는 배우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그런 작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6월 군입대를 앞둔 박형식은 ‘배심원들’을 끝으로 1년 8개월간의 휴식기를 가진다. 그는 군대에 들어가기 전의 아쉬움 보다는 ‘배심원들’과 같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가서 다행이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는 기억만 가지고 군대에 가겠다는 박형식은 배우 생활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의 기대감을 전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배우는 그냥 재미있고 하면서 행복하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면 쭉 파고, 뭐 하나를 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다. 무언가를 하나 하면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많아서 어쩌다보니 (배우라는 직업에) 너무나도 애착을 가지게 됐다. 더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또 매력인 것 같다. 계속 해보고 싶게 만든다. 이번 작품에서는 남우라는 캐릭터를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를 하게 될까. 그런 기대감 속에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예랑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U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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