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 정문성 “제 몫은 하고 싶었어요” [인터뷰]
입력 2019. 05.17. 17:20:01
[더셀럽 김지영 기자] 드라마 ‘해치’를 보고 있으면 “저 배우 누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광기와 집착, 예민함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 순간의 허탈감까지 눈빛으로 표현해내는 연기에 감탄을 연발한다. 뮤지컬과 연극, 드라마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는 배우 정문성의 얘기다.

지난달 30일 종영한 SBS 드라마 ‘해치’(극본 김이영 연출 이용석)에서 정문성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소현세자의 후손이자 희대의 문제아 밀풍군 이탄 역을 맡았다. 이탄은 정당한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타인의 생각과 고통 따위는 알 바 없는 안하무인한 인물로 이금(정일우)과 대립각을 세웠다.

첫 회부터 정문성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조선시대 사이코패스의 면모를 표출하며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그 이후에 드는 허탈감, 후회, 허무함 등을 순간적인 표정과 눈빛으로 나타냈다. 다수의 배우들이 말하는 ‘동공연기’가 ‘해치’ 속 정문성의 연기였다.

이용석 PD와 김이영 작가는 밀풍군 이탄이 악역이지만 마냥 반감을 일으키진 않고 때론 연민이 느껴지거나 동정심을 느낄 수 있는 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용석 PD는 ‘훈남정음’에서 함께 작업했던 정문성을 떠올렸고 그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반대로 정문성을 잘 몰랐던 김이영 작가는 때마침 출연 중이던 JTBC 드라마 ‘라이프’ 속 그의 모습을 보곤 매료됐다.

정문성이 밀풍군 이탄에게 끌린 이유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캐릭터’는 인간의 부족한 면인 상실, 결여된 부분이 적게 드러나고 훌륭한 면이 두드러지는 반면 밀풍군 이탄은 이와 반대됐고 그래서 정문성은 밀풍군 이탄에 더 끌렸다.

“처음엔 악행의 행동들에 명분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펼쳐도 매력이 있는 악당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제일 매력으로 느껴졌다. 연기를 하면서 저도 인간인지라, 악역을 맡아 억지를 쓰지 않고 명분을 찾았던 것 같다. 결국 마지막에 밀풍군 이탄이 보여주는 모습까지의 과정들이 명분보다는 인간의 아픔, 부족한 면, 상실, 결여돼 있는 면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싶다.“

‘해치’의 출연을 확정짓고 밀풍군 이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이영 작가는 정문성에게 “이탄이 3단계의 변신을 한다”고 예고했고 그는 이에 맞춰서 차곡차곡 캐릭터를 쌓아갔다. 그러면서 이탄을 탄생시킨 것에는 “대사를 외우는 것 밖에 준비할 게 없었다”며 주변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1단계였다. 아픈 아이에서 멈춰있어서 사회생활도 배워보지 못하고 민진헌(이경영)이 정권을 위해서 데려오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미완의 인간이 권력이라는 것을 잡았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김이영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해탈의 느낌으로 나오는데 사실은 해탈이 아니라 사람과 대화가 되는 것이다. 작가님이 마지막 변신은 ‘끝’이라고 했다. ‘미친 단계에서의 끝’.”

어린 아이의 순수함에서 나타나는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처음의 상태를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었다. 밀풍군 이탄의 말로를 그릴 땐 순간적인 연기로 명장면이 탄생했다.

“밀풍군 이탄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갈구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의 슬픔과 아픔이 중요했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라고 표현하면서 행동하는 것들이 말이 안 되지만 백지에 있었고 단 몇 줄밖에 없어서 표현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오버연기가 될까 걱정을 했는데 그걸 좋아하시더라. 죽는 신을 찍을 때는 감독님이 ‘아이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즉흥연기가 돼버렸다. 결국 이 캐릭터를 하면서 잃지 말아야했던 게 아이의 마음이었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건 작가님이고 연출자였다.”



정문성은 ‘해치’의 밀풍군 이탄으로 수개월간 촬영하면서 어려운 연기를 하는 것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밀풍군 이탄의 감정은 단 하나도 단적이지 않았고 복합적이었기 때문. 화를 내고 칼을 들이밀면서도 두려워했고 웃으면서도 상대를 미워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표현은 다르게 해야 하는 다채로운 캐릭터였다.

“마음속에 갖고 있는 것과 정 반대로 표현하는 게 꽤 있었다. 여러 가지의 감정을 표정과 동작으로 표현해내야 하는 게 숙제였는데 마지막엔 표현을 굳이 하지 않아도 감정들이 표현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탄의 정보가 내 머리에 쌓여서 일수도 있다. 정말 훌륭한 배우라면 내가 마지막 회에 느꼈던 것을 초반에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공부라고 생각한다. 체득해야만 공부가 아니지 않나.”

SBS 드라마 ‘유령’을 비롯해 ‘수상한 가정부’ ‘육룡이 나르샤’ 그리고 ‘해치’까지.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도맡고 있는 정문성은 ‘악역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복 받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저는 뮤지컬 무대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역을 해봤다. 저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한 배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제가 악역한 드라마를 비교적 많이 봐주셨을 뿐 선한 역도 많이 했다. 드라마에서는 인지도라든지 특출 난 외형이 없는 사람에게 많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고 중요한 롤을 줄 수 있는 게 악역인 것 같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게 악역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역을 맡아 봤다”고 말한 정문성은 만나고 싶은 캐릭터에 다중인격 캐릭터를 꼽았다. ‘해치’에서 맡았던 밀풍군 이탄에서 발전된 인물이 다중인격이기 때문. 정문성은 노력해서 혼자만의 것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보다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충분히 책임지려고 했다.

“공연에서는 많이 해봤지만 드라마에서도 1인 다역을 보여드리고 싶다. 어떤 캐릭터가 들어올지는 모르겠고 제가 찾아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너무 연기해보고 싶다. ‘정말 어렵다. 해내고 싶다’라는 역할을 또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력은 기본적으로 하고 내 몫을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연기하는 감정을 남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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