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송강호 “기택=연체동물, ‘기택답게’ 연기하는 게 중요” [인터뷰]
입력 2019. 06.05. 16:08:59
[더셀럽 김지영 기자] 매 작품마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배우 송강호가 이번 ‘기생충’에서도 그의 진가를 입증했다. 2초 내지의 짧은 순간에 빠르게 변하는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별 다른 대사와 모션 없이 관객에게 전달한다. 봉준호 감독이 송강호를 믿고 의지하는 이유가 단 번에 납득이 간다.

송강호는 이번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았다. 아내 충숙(장혜진)에게 욕설이 섞인 잔소리를 들어도 별 다른 대꾸 없이 의욕이 없다. 이미 발렛파킹, 유행 외식업, 대리운전 등 수많은 직업을 거쳐 왔음에도 반지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

아들 기우(최우식)가 동생 기정(박소담)의 도움으로 대학 입학 서류를 위조하고 면접 길에 오르자 “너는 계획이 있구나”라고 남일 말하듯이 하거나, 수석을 선물 받고 난 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라는 대사 등을 통해 기택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극 중 몇몇 장면들에선 가난한 삶을 버티고 있는 기택을 무너지게 만든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모멸감이 아닌 은근한 무시와 뒷담화, 더욱 망가져버린 집안의 환경은 기택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려 해도 발끝으로 밀려나버리고 눈앞에서 직면하게 된 모욕의 가시화는 ‘기생충’의 핵심 장면 중 하나다.

“기택을 연체동물이라고 자주 표현을 했었다. 다 성장한 아들과 딸이 있는 기택은 정말 처절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으로서 목숨, 환경이 녹록치 않은데 세상을 살아가야하고. 그러다보니 기택은 정말 연체동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떤 환경이 오더라도 살아야 하고, 영화적인 장르나 혼합된 장르의 형식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 환경들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이런걸 아주 유연하게 기택답게 연기하는 게 중요했다.”

송강호가 의도한 ‘기택다운 연기’는 ‘기생충’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의 무게감, 진중함보다는 가벼움이 더 느껴지고 유쾌함에 가깝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극 초반에 두드러지고 극의 말미엔 찾아볼 수 없었던 감정들까지 함께 드러난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라는 대사톤으로 관객들이 기택의 가족들에게 너무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 것 같다. 아들의 일을 관망하고 약간 유쾌하고 만화적인 요소로 하여금 너무 심각하게 이 작품을 처음부터 들어오지 않게 한 것이 아닐까. 물론 제 나름의 추측이다. 봉준호 감독과 대사 톤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았다.(웃음)”

더군다나 극 중 거실 테이블 밑에 숨어 있다가 팔로 얼굴을 가릴 때, 체육관에서 두 눈을 감는 장면은 기택의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지 않음에도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장면들에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에 존경심을 표하며 “연출의 미학”이라고 극찬했다.

“기택이라는 인물이 자존감의 붕괴를 느낄 때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가린다. 일종의 새로운 환경을 직면했을 때 기택만 갖고 있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자세거나 마음의 준비라고 봤다.”

기택으로 분한 송강호의 명연기를 꼽으라면 극 말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장면이 아닐까. 박사장(이선균)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인 감정을 느낀 기택은 눈빛이 돌변해 우발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송강호 역시 이 부분을 꼽으며 “가장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기택의 2초간의 표정이 이 영화의 본질을 이야기해야하는 지점이었다. 정말 밀도감이 있는 연기가 필요했다. 그런 후반부의 몇 장면들이 있다. 역시 뛰언안 감독 밑에서 연기하다보니까 제가 봐도 그 장면과 영화가 좋더라.(웃음)”

“무계획이 계획이다”고 말하던 기택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극 이후의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있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송강호는 “무계획을 하고 싶어서 무계획이라고 말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기택의 속뜻을 전했다.

“이 사회 시스템이나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자괴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기택은 정말 무계획으론 살지 않을 것이다. 기택의 ‘무계획’은 무계획을 생각하고 얘기한 게 아니라 계획은 있어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자조적으로 한 말이라고 본다. 그러니 기택은 열심히 계속 살 것 같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 총 네 편의 영화에 참여했고 주연으로 활약했다. 이와 같은 작품들에서 송강호는 계획대로 하려다가 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인물의 결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봉준호 감독은 주인공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느낌, 현실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봉준호 감독만 가지고 있는 송강호의 모습이 있다고 본다. 감독마다 배우를 다르게 활용하는 것이니까. 봉준호 감독이 저를 ‘송강호는 이런 모습이야’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게 작품을 보면 다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생충’의 가장 큰 이슈라면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과 칸 국제영화제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고 봉준호 감독의 퍼포먼스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제 입장에선 감동적이었다.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이 지나가는 게 그때였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더 잘할 걸’하는 생각도 들고 별에 별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더라. 밥도, 술도 한 번 더 사고 더 잘해줄 걸이라는 후회도 들고(웃음). 빈말이 아니라 저에게 ‘페르소나’라고 하는데 ‘내가 과연 봉준호라는 이 거대한 예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얼굴인가, 그것을 표현해왔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과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공포, 호러 장르로 염두해두고 현재 작업 중이다. 이 역시 송강호에게 이미 언질을 했으나 심도 깊은 이야기는 아직 나누지 못했다고. 다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기는 8월이었다.

“제가 8월에 큰 상을 받는데 그때 얘기한다고 하더라. 그 작품에 출연할지 안할지는 모른다. 봉준호 감독님께서 캐스팅을 해주셔야 출연할 수 있지 않나. 봉준호 감독은 막 찍어내는 감독도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를 해야 하는 분이기 때문에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 저 역시 봉준호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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