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담이 전하는 ‘기생충’ 기정의 속마음 [인터뷰]
- 입력 2019. 06.17. 17:42:14
- [더셀럽 김지영 기자] “기정이는 언젠간 잘 될 친구였어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속 기정(박소담)은 매 순간이 당찼다. 오빠 기우(최우식)의 도움으로 처음 박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가기 전, 잠깐 주춤하며 거짓말하는 것들을 노래로 외우기도 했으나 언제 긴장했었냐는 듯 연교(조여정) 앞에선 당당하게 자신의 것들을 요구한다.
심지어 첫 수업을 참관하고 싶어 하는 연교의 간섭을 묵살하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놀던 다송(정현준)을 한 순간에 예의바른 아이로 탈바꿈시킨다. 비법을 묻는 연교에게 다송이 어렸을 적 트라우마를 겪었던 일을 간파한다. 실제로 다송에게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인터넷에서 대충 본 게 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채 백수로 살고 있었던 기정에게 ‘인터넷에서 대충 본’ 내용이 연교의 마음을 관통했고 거짓말도 언변술사처럼 ‘술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재능이 바탕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소담은 기정을 “돈도 없었지만 운이 따라주지 못한 친구”라고 설명했다.
“기정은 누구보다 공부는 많이 했을 것이라고 본다. 스스로 최선의 방법으로 공부를 했을 것이다. 책을 살 돈이 없으면 빌려서 보거나 서점에 가서 보고 오던. 사전 지식은 있지만 돈도 없고 운도 안 따라줬던 것 같다. 운이 비켜나가다가 다송이를 만나면서 그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들이 한 번에 빛을 말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연교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물은 건 확신을 하고 물어본 게 아니다. 다송이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무언가를 캐치해서 빠르게 머리는 굴려 그냥 한 번 던져본 것이다.”
기정이의 빠른 상황판단 능력, 계획을 진두지휘하고 당찬 모습으로 하여금 여느 가정의 막내 딸 같은 사랑스러운 면모보다는 맏이의 느낌이 강하다. 이는 봉준호 감독도 의도했던 것이었다. 그는 박소담에게 “기정과 기우 중 누가 첫째인지 몰랐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기정이는 학창시절부터 미술의 길에 가려고 준비를 했지만 수많은 떨어짐과 실패를 반복했고 거기에서 오는 힘든 부분들을 가족한테 티를 내지 않은 막내였던 것 같다. 누구보다 외로운 아이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짠했다. 기정이가 씩씩하기도 하고 상황판단도 빠르지만 본인에게 집중을 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 장면에선 ‘어리광을 피우는 막내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송과 기정의 모습은 마치 제 짝을 만난 듯 한 스승과 제자 관계가 연상된다. 다송의 모친인 연교와 가정부 문광(이정은)조차 다스리지 못했던 다송을 한 순간에 다스리는 것을 보면 연교가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박소담은 기정이 다송의 부족한 면을 파악하고 건드린 것으로 해석했다.
“다송이를 기정의 무릎 위에 앉히곤 하지 않나. 다송이의 나이 정도는 부모와의 관계나 접촉이 중요한 시기인데 다송이는 아마 연교와 그런 접촉은 없었을 것이다. 가정부가 씻기고 재우지만 실제 엄마인 연교와는 그런 접촉이 많이 없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수업을 하면서 아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기정이 느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부분에서 만일 기정이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정은 그저 언젠가는 잘 될 친구였던 것 같다.”
행복한 가정에서 가족들과 친밀감을 쌓으며 자란 기정에게 부족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었다. 기정은 박사장과 비슷한 삶 혹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극 중에서도 곳곳에서 비참함을 느끼는 기정의 감정이 드러난다.
“변기 위에서 앉아서 역류되는 물을 막을 때 가장 비참했다. 그 상황에서 기정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그때 감정이 더욱 복잡했던 이유는 충숙(장혜진)이 생각나서이지 않을까. 엄마는 그 상황을 모른다.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나서 그 장면에서 가장 마음이 짠했다. 그 집에서 목욕하고 씻고 집으로 돌아와서 결국 하는 게 변기 위에서 이렇게….”
최우식은 ‘기생충’의 매력으로 “예상하는 것들을 벗어나는 영화”를 꼽았다. 이와 같은 맥락해서 박소담은 기정의 마지막 장면 역시 관객의 예상치를 벗어나기 위해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님이 ‘관객들이 기정이는 죽지 않고 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정이답게 할 말 다 하고 정말 죽을 것 같지 않은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죽음에 있어서 크게 생각을 안 해봤던 것 같다. 햇볕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칼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지만 살 것 같은 느낌을 어떻게 내야할지, 말과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검은 사제들’로 단숨에 이목을 사로잡았던 박소담은 한 차례 고비를 겪은 후 어엿한 성인이 됐다. 신체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완전한 배우가 된 그는 힘들었던 시기 또한 소중했던 순간으로 기억하며 “그 때가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얘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검은 사제들’속 모습과 다른 연기를 많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컸다. 내 연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걱정이었는데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더 부담도 됐었고. 그러한 고나심들이 감사하면서도 내 일이라면 당연히 받아야하는 관심이기도 한데 어떻게 받아야할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게 돼서 숨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한 감사함을 충분히 깨달았다. 만약 그 시기에 봉준호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다면 ‘나를 왜?’하면서 혼자 의심하고 즐기지 못했을 것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