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이정은 “캐스팅 제안 후 연락 없던 봉준호, ‘장난하시나’ 싶었죠” [인터뷰]
입력 2019. 06.25. 16:07:18
[더셀럽 김지영 기자] 영화 ‘기생충’의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 배우가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을 넘어서 강렬한 이상을 남기는 문광 역의 배우 이정은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5일 기준 누적관객 수 916만 명을 돌파한 ‘기생충’에서 이정은은 박사장(이선균)의 입주가정부 문광으로 분했다. 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스타일링과 부유한 가정의 사모님 연교(조여정)대신 집안의 살림에 관여하며 평면적인 캐릭터일 것으로 예상되나 극이 전개될수록 충격을 선사하는 핵심 인물.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기생충’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다보니 영화 홍보에도 쉽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등재된 ‘기생충’ 소개 줄거리에도 문광의 설명은 없으며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 ‘기생충’의 배우들이 홍보차 방문했을 때도 이정은의 극 중 활약은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쉽사리 설명할 수 없고 그의 활약을 말하려면 영화의 ‘스포’가 되기에 봉준호 감독은 ‘스포방지’를 염려하며 취재진과 관객들에게도 매너 있는 관람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 때문에 배우와 취재진이 만나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조심해야할 부분이 상당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정은에게 출연을 제안할 때도 ‘재밌고 이상한 영화를 해보자’고 했었다.

“‘옥자’ 시사회 끝나고 유제원 감독이랑 함께 뒷풀이에 있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유제원 감독이 매니저인 줄 알고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하더라. 나는 농담하는 줄 알고 넘어갔다. 잊고 있었다가 콘티 한 장짜리를 보내주셨다. 그게 문광이 온 몸으로 수납장을 미는 장면이었다. ‘이상한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또 한참 연락이 없으셨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에서 동물 옥자의 목소리를 맡았던 이정은은 이의 미안함으로 자신에게 제안을 했던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돼지에서 업그레이드 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봉준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을 기대했다.

“콘티를 보고 대본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무사히 같이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장난하시나’ 했기 때문.(웃음) ‘옥자’ 때는 처음에 그게 돼지여도 감독님이 하자고 하니까 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서 했었는데 봉준호 감독이 말렸었다.(웃음) 이번엔 ‘옥자’때보다 훨씬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했었다.”



이정은의 첫 촬영 장면은 빗속에서 박사장 네의 인터폰을 누르는 장면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듯 부어있는 얼굴, 반쯤 나가있는 혼, 쫓기듯 다급한 문광의 모습으로 단번에 충격을 선사하며 극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시선이나 눈, 웃음은 계획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 지문에는 ‘술에 취한 문광이 눕는다’밖에 없었다. 그렇게 온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예의가 바르게 자신의 신분을 설명한다. 문광이 제정신이었으면 조리 있게 말하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 않나. CCTV도 끊어놨고. 과한 친절, 과한 소개를 통해서 공포감을 줄 것이라곤 생각은 못했다. 문광으로선 그게 최선이니까. 저도 최선을 다했는데 그 장르의 분기점이었다고 하더라.”
문광의 재등장이후 충숙(장혜진)과의 싸움도 재미를 선사한다.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알았던 충숙이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알게 된 문광은 충숙과 치열하게 싸우고 “아가리 닥쳐”라며 심한 말을 내뱉는다.

“아무래도 저랑 장혜진 두 사람이 이렇게 큰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 게 처음이지 않을까.(웃음) 서로의 동질감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맡고 있는 남편 때문에 불우함이 생기지 않나. 서로 기가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기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왔다. 극 중에서 저를 때리는데 촬영하고 나서 저에게 미안해했다. 저는 더 해보라고 하고.(웃음)”

이정은은 콘티와 시나리오에서 봤던 문광의 모습에서 특이함을 느꼈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연기하면서 어떤 효과를 줄지 예상도 못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귀염상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얼굴에서 공포감까지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

“처음엔 감독님에게 ‘제 얼굴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반전이 있는 핵심 인물들이 저보다 강한 인상을 가져야만 준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걱정이 됐었는데 다른 느낌으로 봐주셔서 감사하다. 특수분장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이정은은 모니터는 놓치지 않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라마의 경우엔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으며 영화는 이미 찍어놓은 것이지만 또 그것에 대한 부담감, 잘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러 번 관람한다고 말했다. 함께 작업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근간이 된 것이었다. 더 나아가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연기 혹은 누군가의 아내, 엄마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 또한 그의 굳건한 연기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람에게는 결이 있는 것 같다. 조연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때는 내가 주는 에너지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거나 도울 수 있는 분위기를 줄 때다. 역할에 대한 욕심 혹은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마음 씀씀이를 잘하고 싶다. 결혼은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거지만 결혼한 마음으로 살아보고 이혼을 한 마음으로 살아본다.(웃음) 죽어볼 수 없고 죽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게 주어졌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하는 것이 예전 꿈이었던 이정은은 이제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가 해외에서 각광받고 극찬을 받고 있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 일본에서 ‘야키니쿠 드래곤’에 출연했었던 이정은은 더 나아가 다른 언어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꿈도 꾸고 있었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님한테 문자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미국에 가서 뭘 한다는 얘기를 옛날엔 했었는데 이젠 우리의 콘텐츠가 너무나도 훌륭해서 이미 몸담고 있는 국내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꼭 할리우드가 아니어도 좋다. ‘야키니쿠 드래곤’을 촬영하면서 일본에서 영화를 찍어서 좋았다. 그런 익숙함을 흔들어 놓는 모험이 좋다. 다른 언어로 연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대본 외우는건 되더라. 능숙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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