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 읽기] '60일, 지정생존자‘ 지진희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정치인 생존 혹은 수성기
- 입력 2019. 07.16. 14:52:27
- [더셀럽 한숙인 기자] ‘60일, 지정생존자’는 가상의 테러 상황에서 전개되지만 실제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 현 정권을 암시하는 듯한 키워드들이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지극히 비정치적인 인물 박무진이 ‘정치적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 어떤 스릴러보다 긴박감 넘치게 그려진다.
tvN ‘60일, 지정생존자’
지진희는 선택의 상황마다 과학자의 뇌가 먼저 작동하는 정치인 박무진의 혼란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표현한다. 특히 구두가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익숙해지고 강해져야만 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직과 오버랩되면서 정치인으로서 그의 변화를 그대로 투영한다.
박무진, 이 보다 더 넓게 드라마에 있어서 구두는 그가 더는 과학자로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암시한다.
국회의사당 폭파 6개월 전 박무진은 환경부장관으로 임명되는 자리에서 양진만(김갑수) 대통령에게 구두를 건네받았다. 당시 양진만은 “가만가만 이 사람, 그림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라며 박무진에게 정치인으로서 불완전한 외양을 지적했다.
이어 자신의 검은 구두를 건네면서 “마음에 안 들어도 신어요. 내일 아침 신문에 복장 불량, 기강해이, 품위 잃은 양진만 내각, 이렇게 대서특필 되고 싶지 않으면. 처음에는 불편해도 금세 익숙해집니다. 나도 그랬어요”라며 과학자 박무진이 아닌 장관 박무진에게 걸맞은 애티튜드를 언급했다.
또 “굳은 살 몇 번 박히고 그 구두 길이 잘 들 때쯤이면 우리 박장관도 정치인 다 돼있을 겁니다”라며 장관 박무진에서 정치인 박무진으로 물러설 수 없는 운명에 들어섰음을 암시했다.
박무진이 양진만에게서 건네받은 구두는 영화 ‘킹스맨’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다. 장식이 없는 디자인을 뜻하는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는 가장 보수적인 클래식 신사복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필요충분조건 아이템이다.
특히 양진만은 그 중에서 블랙을 건네줌으로써 정치라는 틀 안에서 ‘보수’적 애티튜드 없이 그 어떤 ‘진보’도 이뤄낼 수 없음을 넌지시 알려줬다.
늘 운동화만 신고 캠퍼스와 현장을 누비던 그에게 구두는 그가 실행자가 아닌 지휘자로 지위가 달라졌음을 각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휘자로서 압박을 상징한다.
박무진은 6개월이 지나고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공석이 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굳은살로 인해 불편해 한다. 특히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마다 굳은살을 거부하는 발에 신겨진 구두는 그를 더 괴롭힌다.
그는 한주승(허준호)을 찾아가 “대통령님 임기 내내 외롭고 힘드셨던 것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요.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까? 대통령님을 외롭게 만들었던, 그런 사람”이라며 늘 선택의 상황에 놓이지만 오롯이 자신이 신념에 충실한 선택을 할 수 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자신의 혼란과 두려움을 에둘러 털어놨다.
카메라 시선은 그의 쓸쓸한 눈빛에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구두로 옮겨지면서 정치인으로서 박무진의 통증을 다시 한 번 화면에 담아냈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통증은 신발로 인해 시각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통증은 굳은살을 거부하는데서 기인한다. 차영진(손석구)은 이를 그가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한다.
차영진은 “대행님이 왜 스스로 해임 사실을 고백했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권력욕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보통 정치인들과는 다른 좋은 사람이니까. 대행님은 지금 전쟁터에서 나가서 자기 칼이 더렵혀질 까봐 맨손으로 싸우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고 계시는 겁니다. 길은 두 가지겠죠. 피 흘리면서 죽거나, 두 손 들고 죽거나. 저는 더 이상 그런 장수 밑에서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겨야겠으니까”라며 그를 각성하게 했다.
지난 15일 3회에서 박무진은 차영진을 비서실장으로 선택함으로써 정치인다움으로 들어섰음을 암시했다. 그의 선택이 60일 한시 최고 권력자로서 선택인지, 아니면 그가 60일이 지난 후에도 양진만 대통령이 건넨 구두를 계속 신을지 궁금증을 높였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tvN ‘60일, 지정생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