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랏말싸미’, 생소한 가설을 소재로 했을 때 [씨네리뷰]
- 입력 2019. 07.23. 20:41:20
- [더셀럽 김지영 기자] 훈민정음의 탄생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영화 ‘나랏말싸미’를 접한다면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다만 이를 100% 사실이라고 믿는 것보다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이며 영화적 재미를 느끼는 것이 좋겠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훈민정음의 창제설 중 세종이 신미대사와 함께 산스크리트어 등에 근거해 탄생하게 됐다는 가설에 근간을 둔다. 극 중 세종(송강호)은 모든 백성들이 쓰고 읽을 줄 아는 문자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나 신하들은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이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며 임금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한다.
그러던 와중 세종은 산스크리트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한 신미 스님(박해일)을 만나 해답을 찾는다. 표의문자인 한자와 달리 소리가 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표음문자는 보다 쉽고 정확하기에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도중에 위기를 맞는 것도 여러 번. 그때마다 세종은 소헌왕후(전미선)의 도움 또는 자극으로 신미 스님과 훈민정음을 완성시킨다.
훈민정음이 제 3의 인물의 도움으로 창제됐다는 가설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 데뷔를 한 조철현 감독은 해인사 인근에 위치한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대장경이 인도, 티베트를 거쳐 고려, 일본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보고 표음 문자의 여정을 떠올렸다. 이는 ‘나랏말싸미’의 시작이기도 했다.
영화가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라는 입장을 밝히고도 아쉬운 지점은 극 중에서 세종의 활약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미스님을 비롯한 해인사 스님들의 노고가 눈길을 끌고 세종은 다수의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은 인간적인 면모에 보다 더 집중한다.
더군다나 전쟁과 같은 과거의 사건이 아닌 과정을 소재로 한 역사영화의 단점이자 약점인 고요함은 ‘나랏말싸미’도 피하지 못했다. 창제 가설 중 하나에 집중하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간다. 해인사의 장경판전,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등 상징적인 공간을 담아내 한국의 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뿐 거기까지다.
그러나 세종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송강호, 스님으로 분하기 위해 삭발까지 한 박해일, 리더십으로 현명함과 당당함을 표현해낸 故전미선의 연기력은 극을 더욱 몰입케 한다. 특히 15세기 중반의 조선을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당당한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인 소헌왕후를 표현해낸 전미선에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나랏말싸미’를 끝으로 더 이상 작품에서 그를 만날 수 없음이 애통하다.
흥행이 확실한 상업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먼저 대중에게 공개되는 ‘나랏말싸미’는 선두를 지킬 수 있을까. 월트디즈니사가 독점한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나랏말싸미’가 훈민정음의 위엄을 떨치며 신선한 가설이라는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하길 바라본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