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VIEW] ‘나랏말싸미’, 이다지 사과+역사왜곡 논란 왜 일었나
- 입력 2019. 07.24. 19:24:00
- [더셀럽 김지영 기자]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감독의 상상력으로 탄생된 영화 ‘나랏말싸미’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불매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관객의 재미를 위한 허구가 가미된 것을 넘어선 역사왜곡이라는 평이다. ‘나랏말싸미’는 개봉 당일부터 흥행의 먹구름이 끼인 셈이다.
24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세종대왕이 혼자 훈민정음을 창제했거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했다는 설득력 있는 가설이 아닌 신미대사와의 협업을 통해 훈민정음이 탄생하게 됐다는 가설에 무게를 두고 전개를 이어나간다.
극 중 세종(송강호)은 백성들이 쓸 수 있는 글자가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문자를 만들려한다. 그러던 와중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 등에 능통한 신미 스님(박해일)을 만나고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신미 스님은 훈민정음 창제 제 3의 조력자라기보다는 주역으로 볼 만큼 큰 활약을 하고 조력자는 세종에 가깝다. 세종은 조선의 임금임에도 중후함이 덜하고 현대어를 쓰며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더욱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나랏말싸미’는 신미 대사를 영웅적으로 그리는 데에 성공했으나 세종의 업적은 부각되지 않고 곁가지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역사 강사 이다지는 ‘나랏말싸미’의 홍보 영상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설 중 ‘세종대왕 단독 창제설’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 창제설’ ‘제 3의 인물 협력 창제설’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미대사가 5개 언어에 능통했다는 것과 세종이 아꼈다는 것 등을 근거로 들며 신미대사 협력설을 뒷받침하며 영화를 홍보했다.
이러한 영상과 ‘나랏말싸미’가 대중에게 공개되자 반발이 거세졌다. 세종대왕 단독 창제했다는 정설을 완전히 뒤엎고 영화는 신미대사가 주도적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전개를 이어나간다. 더군다나 세종대왕의 노력, 업적보다는 신미대사를 비롯한 해인사 스님들의 노고에 초점을 둬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세종대왕의 헌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설 중 하나를 흥밋거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역사왜곡 논란까지 일어나는 이유는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가설은 역사의 재해석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설득력마저 충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훈민정음 신미창제설의 근거로 1435년 한글과 한자로 된 불교 고서 ‘원각선종석보’가 신미에 의해 출간 된 것으로 언급한다. 1443년 창제된 훈민정음보다 8년 앞선 시기에 한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각선종석보가 위작이라는 지적은 수차례 제기돼왔다. 복사본의 서체가 당시 시대와 맞지 않고, 위작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오기와 탈자 등 실수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특히 세종대왕 당시 책이라면 ‘권제1’ ‘권1’ 등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원각선종석보 복사본에는 ‘제 1권’이라는 현대식 어법이 사용됐다.
영화에선 당시 신분계급이 낮았던 스님이 세종에게 절을 올리지 않는다. 이의 이유로 “개가 절하는 것을 봤나. 나라에서 중을 개 취급하니 국법을 따를 뿐”이라고 주장하는 장면, 임금에게 시선을 맞추며 “그 자리에 앉았으면 왕 노릇을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라고 소리치는 장면 등은 ‘팩션’을 넘어선 불편한 허구로 느껴지기에 몰입이 깨진다.
더군다나 ‘나랏말싸미’의 언론배급시사회 당시 조철현 감독은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본 대장경 전파 과정을 아시아 전역에 걸친 지도를 보고 떠올렸고 더 나아가 표음문자, 소리문자의 로드일 수도 있겠다는 영감에 영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영화가 시작하기 전 등장하는 ‘한글창제와 관련된 여러 설 중 하나를 소재로 한 것’이라는 자막에 “저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이라고 언급했던 사실이 재조명되며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정황과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고증과 ‘창제설 중 하나’라는 자막만으로 영화를 상영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네티즌들의 평이 대부분이다. 또한 ‘나랏말싸미’는 국내와 동시에 LA를 기점으로 미국, 캐나다 지역을 포함한 12개 북미 지역 개봉을 확정했다.
‘나랏말싸미’ 측은 “개봉 주에 최소 미주 전역 10개관을 시작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지역까지 총 20개 도시, 30개관을 여는 것을 최종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역사왜곡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작품이 해외에서 상영돼 외국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영화의 홍보 영상을 찍고 게재했던 이다지는 ‘역사왜곡의 여지가 있는 해석’ ‘학생들이 오해할 수 있다’ 등의 평을 받아들이며 영상을 삭제했다.
개봉 전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당했다가 기각돼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나랏말싸미’는 이번 역사왜곡 논란을 피할 수 있을까. 개봉 당일 ‘나랏말싸미’는 오후 5시 50분 기준 실시간 예매율 16.5%, 예매 관객 수 5만 9307명만의 선택을 받으며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