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퓸’ 하재숙, 잔향까지 아름다운 배우인 이유 [인터뷰]
- 입력 2019. 08.05. 15:58:21
- [더셀럽 전예슬 기자] 배우 하재숙은 한마디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이었음에도 불구, 열정적으로 임하는 그를 보면서 덩달아 힘을 얻어갈 정도였다. ‘인간 비타민’이라는 말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배우였다.
기자는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KBS2 드라마 ‘퍼퓸’(극본 최현옥, 연출 김상휘 유관모)에서 민재희 역으로 열연한 하재숙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재숙에게 ‘퍼퓸’은 의미가 남다를 터. 첫 주연작이란 점과 민재희가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고 한다. 지상파 첫 주연을 맡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하재숙은 부끄러운 듯 말문을 이어갔다.
“첫 주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드라마를 했으면 재희에게 집중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 부담감을 이겨낼 정도로 저는 멘탈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는 보통 사람이에요. 주어진 일을 잘 하자 정도이지, 환경이나 포지션까지 생각할 수 없었어요. 몇 신 안 되는 신이라도 ‘나는 주인공이야’라고 생각하고 해서 그 단어(주연)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요. (웃음)”
‘퍼퓸’은 전업주부로 일생을 바쳐 가정을 일궜지만 중년이 다 된 나이에 가정을 빼앗긴 여자, 오직 한 여자를 사랑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병들어 버린 남자의 인생 2회차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다.
극중 하재숙은 자타공인 국가대표급 만능 주부 민재희 역을 맡았다. 전 세계 요리를 마스터한 요리 실력과 청소와 정리정도의 달인이지만 출산 후 후유증으로 불어버린 체격에 힘겨워하는 인물이다. 하재숙에게 민재희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제 이야기 같았어요. 재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공감됐어요. 내 친구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 같았죠. 재희 역할을 하면서 ‘재희와 같은 상황이에요’라는 메시지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육아와 결혼으로 인해 꿈을 놓고 살다가 재희를 보면서 과거의 나도 생각나고, 현재의 나를 돌아봤다’라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죠.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더 위로해줘야겠다,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재숙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촬영 전부터 특수분장사를 직접 찾아가 여러 번의 분장과 수정을 거듭하며 민재희로의 변신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마친 것. 4시간이 넘는 특수분장에 이어 고원희와 2인 1역을 했기에 캐릭터 표현을 위한 노력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고원희 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서로의 목소리를 자주 들어야 익숙해지니까 처음 만나는 날에 바로 전화번호를 교환해서 연락을 했죠. ‘이런 제스처는 어떨까’라고 이야기하면서 모니터를 했어요. 예린이는 저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원희 씨도 제가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해도 따라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미세한 디테일을 신경 썼죠. 발톱은 보이지 않았음에도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발톱까지 신경 썼어요. 그런 소통을 많이 했어요.”
‘퍼퓸’ 속 민재희가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는 하재숙. 특히 감독님이 준 확신에 의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이 역할 제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운을 떼셨어요. 저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죠. 왜냐면 제 이야기 같았거든요. 다만 한 가지, ‘1회 대본과 시놉시스만 주신 것으로는 결정을 못 하겠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제가 재희고, 누군가의 재희에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상처가 될 수 있고, 저도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죠. 감독님께서 재희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제가 우려하고 걱정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주시고 확신을 주셨어요. 또 대화하다보면 사람의 결이나 코드 같은 게 ‘정말 잘 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감독님을 보고 선택하게 됐어요.”
연극무대를 통해 데뷔한 하재숙은 2009년 방송된 KBS2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는 그는 어느덧 19년차 ‘베테랑 배우’다.
“저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뮤지컬, 연극 등 배울 수 있는 곳은 다 했죠. 여러 작품에서 운 좋게 다양한 직업군을 해봤어요. 요리사, 매니저, 프로레슬러까지. 그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도 많았어요. 저희는 선택받는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쉬었던 경우에는 자괴감도 들도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했죠. 하지만 현재는 저 나름의 괜찮은 방법으로 풀고 있어요.”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하재숙은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다양한 향기를 지닌 매력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하재숙. 잔향까지 아름다운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전성기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냥 현장에서 연기할 때는 배우지만, 그 외 모든 시간은 인간 하재숙으로 살아가고 있거든요. 지금의 제가 좋은 건, 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퍼퓸’은 저에게 추억될 향기로 남을 것 같아요. 시청자 여러분에게는 ‘나도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가 전해졌으면 해요.”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