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감정 얻어 가셨으면" '엑시트' 이상근 감독의 기분 좋은 첫 시작 [인터뷰]
- 입력 2019. 08.05. 17:09:50
- [더셀럽 김지영 기자] 신선한 재난 액션 영화가 탄생했다.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로 시작된 유독가스 재난은 관객에게 경각심을 느끼게 하고 주체적인 캐릭터들의 호흡으로 여름 텐트폴 영화 중 적격으로 떠올랐다. 영화 ‘엑시트’를 통해 장편영화 데뷔한 이상근 감독은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없애고 2030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지난달 31일에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선점하고 있는 ‘엑시트’는 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는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대학 산악부 동아리 후배 의주(암윤아)의 좌충우돌을 그린 재난 탈출 액션을 그렸다. 취업준비생으로 설움을 느꼈던 용남과 사회초년생인 의주의 활약으로 차근차근 재난을 대피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과 응원을 이끌어 낸다.
‘엑시트’에는 재난영화에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 개인주의적 성향을 짙게 드러내는 악역, 등장인물들의 사망으로 이끌어내는 자극적인 눈물이 없다. 대신 주인공들의 활약에만 집중해 신선함을 추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최근 더셀럽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엑시트’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상근 감독을 만나 영화의 기획부터 숨겨진 의미,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 장편데뷔작이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게 됐다.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 시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 보니 ‘좋은 기회를 주셨구나’하면서 놀라고 있다. 이 영화를 찍게 해주신 분들, 투자해주신 분들, 제작사, 배우들한테 ‘잘 돼야 즐거워질 수 있을 텐데’하는 걱정이 있다.
▶ ‘엑시트’를 만들기까지 7년이 걸렸다. 첫 데뷔작을 재난영화로 해야 겠다는 마음이 있었나.
우선적인 것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목표였고 재난영화는 아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저의 장기를 발휘했을 때 니즈와 맞는 게 우선이었다. 이 기획을 재밌게 봐줄 수 있는 제작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했고. 2012년에 시작했던 아이템을 몇 년 묵혔지만 다른 작업도 하면서 제작사 외유내강으로 들고 갔던 게 2015년이었다. 그때 제작사와 기획개발을 해보자는 의기투합이 벌어지면서 재난영화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재난영화지만 인재로 발생하게 되는 유독가스라는 점이 신선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암벽등반을 한다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재난영화라고 하면 어떤 형식인가가 중요한데, 유독가스 재난이 벌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능력과 재주가 필요한지의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생경한 재주들, 평소에는 부귀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취미가 뜻밖의 상황에서 발휘되고 액션적인 측면과 맞아떨어지는 것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파쿠르(안전장치 없이 주위 지형이나 건물, 사물을 이용해 이동하는 운동)를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벽을 오르는 상황이 클라이밍과 적합하다고 판단해 암벽등반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암벽등반은 한국영화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아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유독가스를 살포한다는 것도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이것을 비롯해 대부분이 언젠간 일어날 수도 있을 재난으로 느껴져 경각심이 들었는데. 실제 사건을 참고하거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나.
테러사건이라는 게 정형화된 것은 아니지 않나. 보통 ‘외로운 늑대형 테러’가 있고 한 명이 잘 못된 행동이 있다. 그런 것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대규모의 어떤 집단이나 세력들이 그런 일을 벌이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잘못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테러를 벌이는 악역 한 명이 잘못된 생각으로 퍼질 수 있을 것 같아 한 명으로 설정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사건을 빗댄 것보다도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에 모티브를 가져오진 않았다.
▶ 안개보다 짙은 유독가스가 천천히 도시 전역을 퍼진다. 가스 속에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더욱 공포로 다가오더라. 리얼함을 추구하는 연출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유독가스 재난상황을 저도 본적이 없고 관객도 경험하지 못 했을 것이다. 공장에서 유출된 가스는 보셨을 텐데, 그런 것들은 일시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지 대규모로 생경한 이미지로 구현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는 상상력으로 허구의 재난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영화적 판타지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초반에 설정하고 끌어나간다면 설정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용남과 의주가 뛰고 오르는 것들은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열심히 보여줬으면 했다. 클라이밍 자세를 가짜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실제 클라이밍 자세를 통해서 관객들도 힘든 게 와 닿도록 하고 싶었다.
▶ 예고편에도 등장한 용남의 친구 대사인 “다른 게 재난이 아니야. 지금 우리 상황이 재난이야”가 뇌리에 박히더라. 또 친척들의 영혼 없는 응원인 “잘 될 거야”도 안 들어본 사회초년생이 없을 것이다. 경험에서 바탕이 된 것인가.
제 경험일 수도 있고 들은 말일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익숙한 말이라고 본다. 공통된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이지 않나. 일종의 재난이라는 게 사실 특별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보다도 현실자체를 놓고 봤을 때 한 개인이 느껴지는 위기가 재난이다. ‘지금 상황이 재난’이라는 것이 진짜로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재난일 수도 있지 않나. 지나가는 말일수도 있지만 의미를 담고 싶었다. 친척들이 하는 ‘잘 될 거야’는 오지랖의 정서라고 본다. ‘어디가서 뭐하니’ ‘몇 살이니’ 등 끊어지지 않는 것들의 향연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지마세요’가 아니라 그런 정서들로 공감대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봤다. 모두가 공감을 일으켜야 캐릭터에 다가갈 수도 있고 ‘우리도 그랬어’하는 공감이 있지 않나.
▶ 상가에 있는 학원에서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서 세월호가 떠올랐다.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예상하지 못 했던 부분이었는데 전 국민의 트라우마지 않나. 세월호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활용한다는 것도 논란이 될 것이다. 그 장면의 목적성은 용남과 의주의 이타심, 상황적으로 약한 사람을 구해야한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만일 비슷한 또래의 어른이 있다면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이타심은 적을 것 같았다. 맞은 편 건물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학생들을 먼저 구조하게끔 하는 용남과 의주를 통해 숭고함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 그럼에도 영화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하고 용남과 의주가 절대적인 히어로로 그려지지 않는다.
코믹영화는 어떤 방식이든, 유머든 장르적인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 인류가 유머에 굴복하기 마련이고 영화적인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영화상에서 유머를 주는 것도 좋아한다. 재난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신선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재난상황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유머를 하면 억지스러울 수 있어서 주의했다.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 것은 캐릭터들이 너무 완벽해지면 관객과 멀어진다. 그들한테 누가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캐릭터에서 인간적인 모습, 허술함이 나오면 정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고 재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영웅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반응으로 비틀어주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 용남과 의주의 관계가 열린 채 끝이 난다. 관객에 따라서 아쉬울 수도 있다고 보는데.
둘의 관계가 더 진행됐으면 위험했을 거라고 본다. 키스라도 했다면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여주는 결말까지 보여주는 것이지 않나. 그 전에 끝나기 때문에 ‘잘 끝났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익숙한 장르 안에서 어느 정도 신선한 면을 전해야하기 때문에 두 분이 역경을 거치면서 감정이 쌓였을 거고 열린 결말로서 다양한 결말을 보여줘야 했다. 영화의 90%이상이 하루 동안 발생한 일이다. 둘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깔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열린 결말로 했다.
▶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현 시대의 사회초년생, 취준생이 '엑시트’를 보고 느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좋은 방향으로 위로와 치유는 바라지 않는다. 만약에 힘든 일이 있고 영화를 보고 즐기면 좋겠지만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최대한 좋은 감정만 받고 가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적극적으로 된다는 것을 던져주기에는 저희 영화가 대단한 것을 드리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니까. 그런 것들을 대단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거창한 것보다 다양한 것, 감정들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 CJ E&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