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읽기] ‘60일, 지정생존자’의 희망 메시지 ‘소통의 정치’ 속 ‘아웃사이더 진보’
입력 2019. 08.22. 17:57:02

tvN ‘60일, 지정생존자’

[더셀럽 한숙인 기자] 8, 90년대 드라마는 정치극과 사극이 주류를 이뤘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정치극과 사극의 키워드는 권력 쟁취한 자들의 영웅담이었다. 당시 영웅물들은 살인마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논리가 기저를 이뤘다.

지난 20일 종영한 tvN ‘60일, 지정생존자’는 진부하디시피 한 살인과 범죄마저 정당화 했던 과거 정치극 혹은 사극과 달리 ‘상생과 소통의 정치’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으로 2019년, 현 시대가 바라는 정치적 이상론을 폈다.

정치적 이상론을 이끄는 인물은 무소속 환경부 장관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과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으로 희생자 명단에서 빠진 보수 정당의 수장 윤찬경(배종옥)이다. 소통의 정치에서 진보는 철저하게 배제돼 ‘절반의 소통’이라는 미완의 이상론이 오히려 더 의미심장한 뒷끝을 남겼다.

윤찬경은 위기의 순간마다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고 박무진은 명석한 두뇌의 공학도답게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해 현 정국에 가장 적확한 해답을 찾아냈다.

또 다른 두 명의 인물, 테러로 진보 정당의 실질적 수장이 된 강상구 서울시장과 한주승 정책실장(허준호)은 극단적 방식으로 자신들이 소속된 진보 정당을 와해하는 주범이 됐다. 강상구 시장은 끝까지 박무진을 견제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한 인물로 등장해 매번 실망감을 안기고 한주승은 현 대통령과 여당 인사를 사망하게 한 테러 공조 세력이었다.

차영진 비서실장(손석구)이 한주승 정책실장의 대선 캠프 합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박무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제시했다.

차영진은 “저는 정치가 승부의 세계라고 생각했거든요.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뉘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독식의 세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대행님 정치는 달라요. 매번 대행님이 승자라고 하지만 이상하죠. 아무도 패배한 사람이 없잖아요. 지난번에 안 수석님도 그렇고, 윤찬경 대표도 그렇고. 실장님 아직도 대행님이 차기 대통령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며 패자 없는 상생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한 유일한 인물로 박무진의 정치적 가치를 설파했다.

이뿐 아니다. 윤찬경 대표는 현실 정치에서 소위 ‘꼴통 보수’라 불리며 대중의 호감도가 추락한 보수정당 수장으로 등장했지만 박무진 못지않은 중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윤찬경 대표는 차기 대권을 위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박무진의 정치적 조언자이자 조력자로서 그를 인정받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 정치 구단주 윤찬경은 자신이 이기기 위해 상대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먼저 내보이는 대범함으로 보수 정당을 지켜냈다.

이 드라마는 정치색이 모호하다. 보수와 진보의 소통이 아닌 보수와 무소속 정치인 간의 상생이다.

극 중 보수 정당의 수장 윤찬경은 최근 추락한 현실 보수 정당의 이미지 쇄신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반면 진보 정당의 실질적 수장인 강상구 시장(안내상)은 국가도 정당도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한 인물로 그려져 ‘꼴통 보수’보다도 못한 ‘꼰대 진보’로 마치 현 정권을 일갈하는 듯 뉘앙스를 내비쳤다.

윤찬경은 박무진이 추진하는 일에 늘 반대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열쇠를 던져 줌으로써 테러로 무너진 정국 회복이라는 대의명분에 뜻을 같이했다. 반면 강상구 시장은 테러를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상황으로 이용하는데만 골몰했다.

‘60일, 지정생존자’는 무소속 환경부 장관 박무진을 통해 소통 정치의 가능성은 열었지만 보수와 진보가 상생을 하는 데는 정치적 이권을 생각하지 않는 제3의 인물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박무진이 양진만의 ‘좋은 사람, 좋은 정치’ DNA를 이어받은 듯하지만 역으로 양진만 정권의 무능을 고발하는 듯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가정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보다면 대통령으로 여당과 야당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양진만과 여당 수뇌부가 전멸한 상태에서 설득할 대상이 야당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박무진은 동등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박무진이 오랜 기간 정치를 한 ‘좋은 사람’이었던 양진만 대통령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현 정권의 여당인 진보가 배제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진만은 진보 정당의 수장이면서도 동시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이었지만 박무진은 테러로 수뇌부가 희생된 진보 정당의 속내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없었던 간소화된 의견 결정 구조 아래 움직였다.

그러나 진보 정당인 강상구라는 인물이 내보이는 속물적 행동은 현 정권에 커지는 실망감을 대변하는 제작진의 은밀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한 이 드라마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성 혹은 감정 하나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닌 가슴을 움직이고 머리를 끄덕이게 해야 한다는 설득의 기술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이견 없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tvN ‘60일, 지정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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