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프랜차이즈 예능 프로그램,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입력 2019. 08.26. 10:49:43
[더셀럽 윤상길 칼럼] 2005년에 작고한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21세기에는 각 나라의 미래가 문화산업에 의해 결정되며, 이 분야가 곧 최후의 승부처가 된다.”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오늘날 수많은 나라들이 문화산업을 국가경제의 중심축으로 삼고, 그 영향력을 자국을 넘어 외국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산업의 성패는 전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대치가 높아진 국내외 소비자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콘텐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계의 BTS, 영화계의 ‘기생충’ 등은 양질의 콘텐츠가 이뤄낸 결과물이다. 이를 성공 모델로 삼은 콘텐츠들이 문화산업계 전반에서 폭넓게 차용되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위해 가장 분주한 분야는 방송계이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양질의 콘텐츠 확보를 위해 가장 손쉽게 선택되는 방법은 이미 성공한 콘텐츠의 ‘따라하기’ 이다. 이를 두고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다. SBS ‘동상이몽’,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Mnet ‘쇼 미 더 머니’, tvN ‘삼시세끼’ 등은 익숙한 제목들이다. 방송 편성표에서 낯선 제목의 프로그램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방송 할 것 없이 방송사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기보다 이름값 있는 콘텐츠의 시즌제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TV는 사랑을 싣고’(KBS1), ‘선을 넘는 녀석들’(MBC), ‘비긴 어게인’(JTBC), ‘연애의 맛’(TV조선), ‘서울메이트’(tvN), ‘더 콜’(Mnet) 등도 낯설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시즌1의 인기에 편승해 별다른 포맷 변화 없이 방송되고 있다. 시즌, 시리즈, 리턴즈, V 등의 꼬리표를 달고 방송 중이다.

여기에 SBS ‘정글의 법칙’은 촬영 장소에 따라 ‘in’을, tvN의 ‘삼시세끼’는 ‘어촌편’, ‘산촌편’으로 꼬리표를 달아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촬영장소와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시청자는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반응이다. tvN은 윤여정의 ‘윤식당’으로 재미를 보자 그 콘셉트를 빌려 ‘신서유기’의 강호동을 내세운 ‘신서유기외전-강식당’을 시리즈 3까지 만들었다.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이 요즘 방송 편성의 대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양질의 콘텐츠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방송 프로그램의 성공은 대체로 시청률의 높고 낮음으로 평가한다. 이 전제가 옳다면, 대부분의 속편들은 실패작이고 양질의 콘텐츠는 아니다. 1%대 시청률에 그치는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프랜차이즈 아이템 도입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먼저 시작됐고, 대체로 속편도 성공했다. 영화 ‘신과 함께’, ‘타짜’ 시리즈가 그렇고, 윤석호 PD의 드라마 ‘겨울연가’ 등 계절 연작이나.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같은 성공 사례는 찾기 어렵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프로듀스 101’의 낙마가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 프로그램의 시즌제 도입이 탄력을 받고 있는 현실은, 소재 고갈과 열악한 제작환경에 시달리는 예능 프로그램 시장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정된 자원과 소재로 짧은 시간에 매번 새로운 재미를 담아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이미 성공한 콘텐츠의 시즌제 제작은 큰 위험 부담 없이 검증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프랜차이즈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캐스팅과 변별력을 지닌 구성, 새로운 콘텐츠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스타급 진행자가 매번 그 얼굴이어서 콘텐츠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시청률의 절반을 책임진다는 스타급 진행자는 부족하고, 이들을 둘러싼 수요 공급 상황이 원활한 상태도 아니다.

요즘은 여러 명이 공동 진행자로 나서는 ‘집단MC’가 유행이다. 하지만 진행자의 자질(?) 문제가 늘 도마에 오르는 점은 고려되어야 한다, 방송이 공기(公器)인 이상, 진행자의 품격은 유지되어야 한다. 제작비는 제 자리이거나, 삭감되는 현실에서 폭등하는 스타급 연예인들의 몸값으로 인하여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흔하다.

스타 진행자들에게도 고민은 뒤따른다. 이미지 변신이 요구되는 스타들의 입장에서는 몸값도 몸값이지만 같은 작품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동일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고수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할 때 ‘비긴 어게인’의 진행은 새로운 포맷으로 주목받을만하다. 출연자 모두가 진행자이고, 그 진행도 매끄럽다. 연출의 ‘힘’이다.

프랜차이즈 예능 프로그램은 시즌1 콘텐츠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계승하면서도 지속적인 활력을 잃지 않는 아이템 개발과 연출의 변화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프로듀스 101’의 경우처럼, 초반의 인기에 기대어 변화 없는 시리즈를 계속했다가 결국은 집계 방식의 오류 같은 실수로 낭패를 보기도 한다.

TV조선이 ‘미스 트롯’의 성공에 도취해 성급하게 ‘미스터 트롯’을 진행하는 결정에 우려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자 가수가 남자 가수로 바뀌었을 뿐, ‘미스 트롯’과 흡사한 진행이나 설정으로 아류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시즌1의 인기나 흥행공식에만 의존하는 안일한 시즌2에 대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마련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즌제 운영은 양질의 콘텐츠를 담보하지 않는다. 이미 시즌1의 인기 아이템을 다 소비하고, 완전히 새로운 설정과 구조로 승부해야할 시즌2가 더 흥미를 끌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성공한 시즌1의 후광은 동시에 그늘이 될 수도 있다.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신서유기’ 등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이 곧 전파를 탈 예정이다. 후속 프랜차이즈 프로그램들이 일정한 완성도로 시청자에게 보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각 예능 프로그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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