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퍼즐] 판타지영화의 흥행 성공 이유, ‘인간의 원형’을 담기 때문
- 입력 2019. 10.09. 11:59:17
- [더셀럽 윤상길 칼럼] 환경재앙, 가족해체, 진영논리 등등 세상인심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판타지 속으로 빠져든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평범한 내가 아닌 초능력을 지닌 특별한 인물을 꿈꾼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꿈속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꿈을 현실에서 만난다.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데 영화만한 통로는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이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국내외 영화계가 이처럼 판타지 장르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관객의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또 판타지 영화 대부분이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상업적 판단도 작용한다.
최근 ‘영화 배급과 흥행’이란 전문서적을 펴낸 이하영 영화연구가는 판타지 영화의 관객 선호 순서를 한국영화의 경우 드라마, 액션, 어드벤처에 이은 4위로, 외국영화는 어드벤처, 액션 다음의 3위로 분석했다. 하지만 액션 어드벤처도 거의 판타지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요즘 영화는 판타지 장르이다.
판타지영화는 ‘가상 세계에서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를 말한다. 세트 촬영이나 컴퓨터 그래픽(CG)을 통하여 현란한 시각 이미지를 제시하는 데 초점이 주어지며 특수 효과가 많이 사용된다. (다음국어사전)
신병철 마케팅전문가는 그의 연구서 ‘인터랙티브 마케팅’에서 “판타지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모험은 안전하지 않다.’는 기본 관념에 ‘안전한 모험’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결합되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내용은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이지만 흥행에서는 안전한 장르”라고 판타지 영화를 규정한다. 흥행업계에서는 “특히 원작이 있으면 흥행에 유리하다”라고 말한다. ‘마블’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어벤져스 영화는 만화가, ‘신과 함께’ 시리즈는 웹툰이 원작이다. ‘와호장룡’ 같은 무협 판타지는 무협소설에서 출발한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소설이 먼저다. 원작이 대중의 지지를 이미 확보한 것이라면 흥행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는 논리다.
판타지 영화의 원형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화(神話)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천둥 번개 비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제우스, 바다 밑 황금 궁전에서 살았던 포세이돈, 괴력으로 산줄기를 갈라 대서양과 지중해를 만들었다는 헤라클레스, 현재까지도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로 선망의 대상이 된 비너스, 그가 쏜 화살을 맞으면 누구든 사랑하게 만든다는 큐피트 등등의 신화는 판타지 영화의 변형 가능한 훌륭한 소재가 된다.
김상준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김상준 원장은 우리나라 최초로 영화를 정신과적인 시각으로 해석해 영화읽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최고의 영화 심리분석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최근 저서 ‘영화와 신화로 읽는 심리학’ (보아스 펴냄)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처음 만든 이후 신화 속 인물들은 이제 스크린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영화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영화 속 이야기가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간 마음속의 원형을 자극해야 하므로 자연히 ‘인간의 원형’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신화를 은연중에 영화에 변형해 등장시키거나 차용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원형’에서의 ‘원형’은 ‘더 이상 나뉘지 않는 마음의 단위들’이다. 비극적인 사랑, 탐욕과 질투, 선과 악의 대결, 창조자와 파괴자, 탄생과 죽음 등 영화는 비록 그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이런 주제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데, 이것이 ‘인간의 원형’이란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원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신화다”라고 말한다. ‘신화’를 차용한 영화 장르가 판타지 영화라고 한다면, 판타지 영화의 흥행 성공은 ‘인간의 원형’을 얼마나 잘 나타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판타지 영화의 흥행 성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천만 흥행 영화 가운데 판타지를 내용으로 했거나 판타지 제작 기법이 응용된 영화는 10편이 넘는다. ‘명량’, ‘신과 함께-죄와 벌’, ‘아바타’, ‘신과 함께-인과 연’, ‘부산행’, ‘해운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괴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인터스텔라’, ‘겨울왕국’ 등이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있는 ‘조커’도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이야기가 고담시에서 펼쳐진다는 틀에서 판타지 장르의 작품이다. 또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 중인 ‘신과 함께’의 3부작도 내년 개봉이 잡혀 있는 등 국내외 영화계의 판타지 영화 열기는 계속 뜨거울 전망이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