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읽기] 성 소수자 ‘이반의 반격’, 우아한 가·시크릿 부티크 ‘갈등의 축’
- 입력 2019. 10.10. 16:54:01
- [더셀럽 한숙인 기자] ‘페미니즘’이 성 편향성을 이유로 일부 계층의 강한 반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가 지적하는 남성 중심 권력구조를 대변해 온 드라마는 여성을 중심인물로 설정하는 등 페미니즘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성 소수자를 주요 인물의 갈등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SBS ‘시크릿 부티크’ 위정혁(김태훈), JTBC ‘멜로가 체질’ 이효봉(윤지온), MBN ‘우아한 가’ 모완준(김진우)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미디어에 노출된 성 소수자 연예인 1세대인 하리수와 홍석천은 방송에서 대중이 인식하는 트렌스젠더와 동성애자의 전형에 충실해왔다. 극 중에서 이들은 여러 인물 가운데 구색 맞추기 식으로 배치되거나 대중이 인식하는 ‘성 소수자’의 고정된 이미지의 틀에 끼워 맞춰졌다.
페미니즘은 여성뿐 아니라 성 소수자를 포괄함으로써 미디어에 여성과 함께 성 소수자를 ‘이반’과 ‘일반’의 구분을 지우는 가시적 변화를 끌어냈다.
최근 높은 화제성을 이어가는 두 드라마, MBN ‘우아한 가’, SBS ‘시크릿 부티크’에서 갈등의 중심인물이 각각 트렌스젠더와 동성애자이다.
‘우아한 가’는 거대 그룹의 경영권을 이어받아야 할 회장 아들 모완준(김진우)이 트렌스젠더임이 밝혀지면서 견고하던 MC그룹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시크릿 부티크’는 동성애자인 위정혁(김태훈)이 데오그룹 회장이자 어머니인 김여옥(장미희)에게 맞서기 위해 제니장(김선아)과 오랜 우정과 신의에 기초한 동맹을 결성한다.
모완준과 위정혁은 과거 극 중에서 등장한 성소수자를 묘사한 고정된 틀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성 정체성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들에게서 성 소수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실제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에 성 소수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것과 같은 맥락이어서 작위적 설정이라는 비난이 아닌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일상에서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난 후에야 ‘아~’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드라마 역시 이와 같은 과정으로 전개된다.
‘우아한 가’는 모완준을 초반부터 병적일 정도로 극심한 결벽증을 가진 사람으로 그렸다. 도우미가 흘린 차 한 방울 때문에 식사 자리를 뜨고 부인인 백수진(공현주)과는 결혼 생활 6년 동안 단 한반도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MBN ‘우아한 가’
시청자들은 재벌가 캐릭터의 흔한 설정쯤으로 넘겨 버렸으나 권민수 작가는 한제국(배종옥)과 모철희(정원중)가 계획한 후계구도를 흔드는 변수로 ‘트렌스젠더 모완준’ 카드를 꺼내들었다.
권민수 작가 트렌스젠더를 선정적 주제로 소모하지 않고 한제국과 모철희를 통해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현실을 밀도감 있게 묘사했다.
한제국은 모완준이 트렌스젠더라는 사실을 안 후에 ‘핑크 머니’ 시장 진출을 제안했다. ‘우아한 가’는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소비력과 커밍아웃을 한 애플 팀쿡처럼 지배계층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 소수자의 위상을 거부감 없이 전달했다.
그러나 사회 구조 변화와 달리 개개인의 내제된 인식 변화의 한계를 묘사하는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한제국은 트렌스젠더라는 성 정체성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태도에 흠칫 놀라는 모완준에게 “공감할 수 없고 취향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인정할 뿐입니다. MC를 위한 일이니까”라며 ‘공감’과 ‘인정’의 간극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반면 모철희는 그를 식사 자리에서 내쫓고 평생 홀대하기만 했던 모완수(이규한)를 후계자로 선택했다.
모철희는 “우리 집안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넌 가문의 기대를 배반했어. 그것만으로도 이미 자격 상실이야”라며 스스로 성취해낸 유일한 성과로 여겼던 차남 모완준을 내쳤다. 이어 모완준의 후계자 구도 유지를 주장하는 한제국에게 “완준이 후계자 승계 작업 중지해. 대기업 회장이 여장이나 하고 다닌 것 알면 권위가 서겠어”라며 아들로서는 물론 후계자로서도 모완준을 포기했다.
모철희는 보수계층의 뿌리 깊은 권위의식의 대변자이자 ‘다름’을 ‘패배’로 인식하는 대중이 받아들이는 ‘평범’의 틀을 전달했다.
‘시크릿 부티크’는 동성애자 위정혁이 청소년 시절 동성연인과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장도영에게 친구가 될 것을 제안했다.SBS ‘시크릿 부티크’
“놀랐니”라고 묻는 위정혁에게 장도영은 “아니요, 못 본 걸로 할게요”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이에 “너 진짜 나랑 제일 친한 친구해야겠다. 내 비밀을 알았으니까. 근데 너라면 괜찮을 거 같아”라며 친구를 제안하는 위정혁에게 장도영은 “아무한테 말 안할게요. 꼭 지킬게요. 남들한테 못하는 얘기들도 내가 다 들어줄게요”라며 그의 친구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게 비밀을 공유한 위정혁과 장도영은 치열한 전쟁터인 데오家에서 강력한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 동맹과 결속은 당시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됐으나 결국 서로를 옭아 멨다. 둘은 아픔의 시작점이 된 ‘친구’라는 명분으로 서로에게 올가미를 씌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어떤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아픔의 깊이를 짐작케 했다.
이들은 사회 인식 변화에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당사자는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지를 보여줬다.
‘우아한 가’와 ‘시크릿 부티크’가 스릴러로 극의 무게에 걸맞게 갈등의 중심인물로 무겁게 성소수자를 배치한 반면 JTBC ‘멜로가 체질’에서는 지극히 일상적 시선으로 동성애자를 그렸다.JTBC ‘멜로가 체질’
‘시크릿 부티크’가 40세 위정혁을 ‘젠틀한 남자’로 그렸다면 ‘멜로가 체질’은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20대 이효봉(윤지온)을 ‘스윗남’으로 묘사해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다.
이효봉은 성격도 취향도 다른 30세 누나 셋의 고민 상담은 물론 육아까지 도맡아 하는, 말 그대로 스위트한 남동생이자 누나들의 수다에 없어서는 안 될 신스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이병헌 감독은 이효봉이 문수(전신환)와 연인 사이임이 회사 주변에 알려진 후 어느 곳에서도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려 보호막을 벗어난 세상 밖에서는 여전히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소외자’임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성 소수자는 드라마에서 희화돼 듯 묘사되거나 자극적인 선정적 소재로 소모돼 왔다.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캐릭터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성 소수자의 ‘다른’ 취향 묘사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를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문제를 뭉개버린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우아한 가’ ‘시크릿 부티크’ ‘멜로가 체질’은 트렌스젠더, 동성애자의 특징을 외양과 행동에서 보여주려는 일차원적 묘사법을 벗어나 ‘성 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소수자’일 수는 있어서 그들의 사회적 권리와 의무에서까지 소수자가 돼서는 안 됨을 시사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MBN ‘우아한 가’, SBS ‘시크릿 부티크’, JTBC ‘멜로가 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