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티고’ 유태오 “감독님은 지휘자 배우는 악기, 몸을 맡겨야 하죠” [인터뷰]
- 입력 2019. 10.23. 16:48:23
- [더셀럽 전예슬 기자] “시나리오에 한 대사가 있으면 그 대사가 왜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그 캐릭터가 왜 이 대사를 하고 있나’란 1차 질문을 하면 2차 질문에 들어가는 거죠. 거기에 대한 대답이 나오면 3번째 질문을 던지고, 4~5번째까지 하게 돼요. ‘Why’, ‘왜’를 5번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거쳐요. 역할의 분량을 떠나 궁금하니까 기본적으로 하는 거죠.”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 뜨겁다. 작품마다 캐릭터 해석에 힘쓰는 유태오는 ‘버티고’의 진수 역할 역시 꼼꼼한 분석을 거쳐 완성해냈다. 이 같은 노력을 했기에 ‘칸이 먼저 알아본 글로벌 신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아닐까.
기자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버티고’(감독 전계수)에서 진수 역으로 열연한 유태오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버티고’는 현기증 나는 일상,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천우희)이 창밖의 로프공과 마주하게 되는 아찔한 고공 감성 무비다. 유태오는 극중 서영의 연인이자 사내 최고 인기남 진수로 분했다. 하지만 서영에게 차마 고백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던 그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작스레 회사를 떠나며 의도치 않게 서영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버티고’에 끌린 점은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시나리오가 잘 넘겨졌고 끝부분에 ‘힘내요’라는 말을 보니 감정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살짝 울컥했어요. 마지막 장면은 상상만 해도 ‘통쾌한 그림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두 번째는 제가 멜로 영화를 좋아해요. 15살에서 20살 사이에 봤던 영화 ‘접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좋아하는데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게 꿈이고 로망이었죠. 세 번째는 배우라는 직업은 감독님의 악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지휘자죠. 제 몸을 악기라고 생각하고 감독님께 맡겨야 해요. 전계수 감독님이 ‘러브 픽션’ 이후 7년 만에 20년 전에 썼던 기획을 만들어 나오셨어요. ‘칼 갈고 나오셨네, 뭔가 할 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세 가지 이유에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버티고’ 속 유태오의 등장은 처음부터 강렬하다. 특히 함께 호흡을 맞춘 천우희와는 첫 촬영부터 진한 키스신을 찍기도. 유태오는 감정 몰입이 어려울 수 있던 상황을 능숙하게 이끌어간 천우희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고기 굽고, 천우희 씨의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장면이 첫 회였어요. 키스신은 첫 회의 마지막이었죠. 키스신이 다가오니까 긴장이 많이 가라앉더라고요. 감독님은 테크니컬하게 보였으면 한다고 지시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더 격하게 느껴질까, 시각적으로 보일까’를 고민하면서 촬영했죠. 기대한 만큼 천우희 씨가 편했어요. 똑똑한 배우라는 생각도 들었죠. 천우희 씨가 끌고 가는 힘이 있잖아요. 배울 점도 느껴졌어요. 화면에서 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유태오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한 아버지와 간호사로 일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 교포 2세다. 독일에서 출생한 그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연기를 배웠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쌓은 경험은 그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지만 ‘소통의 갈증’이라는 고충도 뒤따랐다고 한다.
“2004년 공부를 끝냈어요. 이후 캐스팅이 잘 안돼서 2010년쯤엔 창작활동을 많이 했죠. 마음이나 감정을 나누고,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은데 언어라는 장벽이 있으니까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없더라고요.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압력밥솥 같았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창작으로 피어나게 된 거죠. 연기를 통해서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어 좋지만 아직도 소통하고 싶은 남은 것들이 많아요.”
2009년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유태오는 그해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했다. 이후 2018년 제71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러시아 영화 ‘레토’의 주연으로 초청돼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스달 연대기’ ‘배가본드’ 등에 출연하며 드라마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조연, 단역을 제안 받았어요. 여러 작품에 출연하지 않아서 한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죠. 지금은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프로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죠. ‘레토’ 이후 타임매니지먼트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태오는 또 하나의 도전을 마쳤다. ‘버티고’를 통해 눈빛, 표정, 호흡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것. ‘충무로 기대주’로 성장 중인 그가 어떤 새로운 얼굴로 활약을 펼칠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쏠린다.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