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퍼즐] 여성 캐릭터, TV드라마 중심에 서다.
입력 2019. 12.18. 11:59:47
[더셀럽 윤상길 칼럼] 2019년 하반기 TV드라마 흐름의 특별함을 꼽으라면, 단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여성중심드라마의 돋보임이다. 지난달 종영된 KBS2 ‘동백꽃 필 무렵’(주연 공효진)을 비롯해 방송 중인 SBS ‘VIP’(장나라), KBS2 ‘99억의 여자’(조여정)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JTBC ‘검사내전’(정려원)이 가세했다. 전문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여자중심드라마는 시청률도 높고, 화제성도 풍부하다. 한동안 안방극장을 지배했던 남성중심드라마 인기를 충분히 압도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 종영된 tvN ‘유령을 잡아라’에서는 문근영이, 지난달 종영된 ‘청일전자 미쓰리’에서는 이혜리가 각각 원톱으로 나왔다. KBS2 일일극 ‘우아한 모녀’는 제목 그대로 최명길, 차예련, 오채이, 지수원 등 여성 배우들의 경연장이다. JTBC 새 드라마 ‘초콜릿’에서는 하지원이 윤계상, 장승조, 유태오 등 남성배우를 쥐락펴락한다. KBS2 ‘사랑은 뷰티플 인생은 원더플’에서는 조윤희, 설인아, 조유정 세 자매가 김미숙, 나영희, 박해미 등 윗세대와 드라마를 이끌고 있다.

분명 여성중심드라마의 안방극장 전성시대다. 무엇이 TV드라마 흐름을 여성중심으로 바꿔놓았을까. 이에 못지않게 시청자 반응 또한 궁금하다. ‘동백꽃 필 무렵’이 방송될 때 후기에는 일부 남성들의 조롱 섞인 비난 글이 많이 올라왔다. 다른 여성중심드라마에도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된다. 대부분 여성이 중심에 서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남성 시청자의 막연한 공포와 짜증, 신경질의 표출이다. 페미니즘과 연관시켜 여자들이 이상한(?) 신념을 믿고 설쳐대는 모습을 못 보겠다는 반응들도 더러 있다.

여성중심드라마에 이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다. 일부 남성은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이 과연 무엇이기에 그렇게 싫어할까. 그들에게 사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페미니즘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싫을 뿐이다.

여성 서사 중심의 드라마가 그동안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 제작비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안전한 장르 드라마 위주로 제작된 탓이다. 남성의 역할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역사극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 법조 첩보 드라마와 범죄 액션이나 누아르 같은 남성중심드라마들이 그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비장한 표정의 남성들이 뛰고 나르고 치고받고 머리싸움 하는 서사 구조로 드라마 환경은 충분히 남성 중심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해야 했다. 철저히 남성 시각에서 바라본 수동적이고 대상화된 역할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캐릭터는 소품화 되어, 남자주인공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존재, 도움을 기다리는 역할, 남자의 아내 또는 애인, 보호받아야할 존재로 그려졌다.

최근의 여성중심드라마는 상실된 인간성을 되찾아가고자 하는 여정이고, 오랜 가부장적사회에서 부딪치는 무수한 문제들, 그러니까 여성 자신의 경력과 육아, 가족, 피임, 배우자 혹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며 불평등과 부조리한 사회를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한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그동안 여성의 캐릭터가 소극적으로 그려진 이유를 연출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성 PD보다 남성 PD가 많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가 현실적이기 보다 남성 시각에서 해석된 경우가 많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치명적 오류가 숨어 있다. 이제까지 인기 높았던 대박드라마의 작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MBC 수목극 ‘하자있는 인간들’에 이 대답이 담겨 있다. 이 드라마는 꽃미남 혐오증 여자(오연서)와 외모집착증이 있는 남자(안재현)의 티격태격을 통해, 하자 있는 그들의 편견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메라의 초점은 남자 형제와 남자 동창생을 대하는 오연서에게 맞춰진다. 오연서는 이들 남성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극복시키려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여성의 주체적 행동이며, 그 행동이 비난받아야 이유는 없다.

이제 우리는 여성중심드라마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 본질은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랑, 자신을 바라본 드라마들이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현상이다. ‘젠더’(사회적 성)의 코드가 드라마 캐릭터 전면에 떠올라있음에 주목하자. 따라서 남성들에 의한 젠더 갈등, 기성세대에 의한 세대 갈등으로 번지는 건 드라마 소재의 확장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악플이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비열한 싸움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격한 논쟁이 훨씬 건전해 보인다.

중요한 건 진작부터 드라마 소비의 중심축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늘 소외됐던 여성들의 가치관이 서서히 TV드라마의 중심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대부분이 외주제작사 중심의 방송 환경에서 여성중심드라마로 투자받는 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용이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제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여성중심드라마’ 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여성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여성 서사가 도드라지는 드라마들이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드라마로 인정받는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기존에 있었던 방법 그대로, 무언가를 답습하여 만들어진 드라마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특별하고, 더 신선한 방법으로 우리 메시지를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할 시점이다.

[더셀럽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 사진=드라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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