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 100년, ‘기생충’ ‘극한직업’ 韓천만 달성했지만… 승자는 디즈니 [2019 연말결산⑬]
- 입력 2019. 12.19. 17:50:19
- [더셀럽 김지영 기자] 한국영화 탄생 100년에 걸맞게 올해는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과 만났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코믹, 범죄, 역사 등 다양한 장르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새해 초부터 ‘극한직업’으로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고 전에 없던 다섯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기생충’은 현재까지도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만 아쉬운 지점은 천만 영화 중 절반 이상이 외화라는 점이다.
# 코믹 영화 흥행 성공
지난 2018년과는 극명하게 비교되는 결과다. 지난해엔 ‘완벽한 타인’ ‘그것만이 내 세상’ ‘탐정: 리턴즈’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흥행을 거뒀던 것에 비해 올해 코믹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 누적관객 1626만 5618명)은 설을 앞두고 개봉해 전 세대 관객동원을 성공했다. 위장취업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치킨과 접목시켜 재미를 자아냈다. 러닝타임 내내 ‘빵빵’ 터지는 웃음, 불편함 없는 전개, 영화의 결말까지 깔끔하게 구성해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영화의 대사인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사용될 만큼 유행어로 번졌고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갈비통닭은 요식업계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극 중 배경인 수원 통닭 거리는 갈비통닭을 맛보려는 손님들로 인해 한동안 북적거렸다.
조정석, 임윤아의 ‘엑시트’(감독 이상근 누적관객 942만 5689명)도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누렸다. 가스재난을 피하기 위해 암벽등반을 하면서 익힌 재능으로 재난에서 탈출한다는 소재는 천재지변을 주로 다뤄왔던 재난영화와는 다르게 신선한 매력으로 관객의 구미를 당겼다.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인 주인공을 통해 짠한 마음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했다.
특히 ‘엑시트’는 언젠가 한 번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리얼함, 현 사회를 대변하는 극 중 상황들로 영화의 몰입을 도왔고 인재의 발발과 처리미흡으로 인한 정부과실, 악역 등이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극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왜 범죄수사물에선 남자 경찰만 등장할까. 깨질 듯 깨지지 않는 공식을 ‘걸캅스’(감독 정다원)가 간단하게 뒤엎었다. 라미란, 이성경 주연의 여성 영화 ‘걸캅스’는 현실과 지극히도 맞닿아있는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는 두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다. 개봉 당시에 논란이 됐었던 버닝썬, 정준영 단톡방 몰카 등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는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 “이런 범죄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는 감독의 말처럼 대부분의 여성 관객들도 이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이전엔 많지 않아 개봉 무렵 젠더이슈가 불었다. 일부 남성과 여성으로 갈린 갈등은 ‘평점테러’와 ‘영혼보내기’로 맞붙었다. 결국 ‘걸캅스’는 손익분기점 150만 명을 넘은 162만 9528명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는 양장미 역의 수영도 실감나게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독립영화, 여성영화 주목
여태껏 흥행 이슈에는 거리가 멀었던 독립영화가 눈에 띄었던 한 해였다. 3년 전 ‘우리들’로 평단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던 윤가은 감독이 ‘우리집’으로 돌아오면서 독립영화의 부흥기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 ‘벌새’(감독 김보라) ‘아워바디’(감독 한가람) ‘메기’(감독 이옥섭) ‘윤희에게’(감독 임대형) 등의 작품들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특히 ‘벌새’는 지난 8월 개봉했으나 현재까지도 일부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을 만큼 장기간 흥행 중이다. 독립영화 중에서는 14만 3216명이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누린 것은 물론, 전 세계 35관왕이라는 타이틀을 기록했다.
더불어 이러한 독립영화들이 대부분 여성 감독, 배우,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독립영화계에 부는 여풍은 상업영화로도 이어져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 등의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그간 “여자 배우에겐 설 자리가 없다” “충무로는 여성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 등 여성의 역할이 점점 좁아지면서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볼멘소리가 이제는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여러 작품으로 아쉽지 않은 성적을 거둔 만큼, 오는 2020년에도 더 거센 여풍이 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CJ·롯데·NEW·쇼박스, 4대 배급사의 성적표
앞서 언급한 다수의 영화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CJ 엔터테인먼트 배급이라는 것이다. ‘극한직업’과 ‘걸캅스’ ‘엑시트’ 등은 CJ 엔터테인먼트사의 작품이며 올해 가장 큰 역사를 남긴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비롯해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감독 손용호) ‘사바하’(감독 장재현) 모두 손익분기점을 웃돌았다. ‘신의 한 수: 귀수 편’(감독 리건)만 손익분기점 돌파에 실패했으나 관객 수로만 보면 크게 낙담할 결과 또한 아니었다.
CJ 엔터테인먼트가 2019년에 ‘한 몫을 챙겼’다면,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의미 있는 작품들로 줄을 이었다. ‘말모이’(감독 엄유나)부터 ‘증인’(감독 이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 ‘82년생 김지영’까지 개봉해 관객들의 호평을 자아내고 흥행도 거뒀다.
이에 반해 쇼박스는 ‘돈’(감독 박누리)과 ‘봉오동전투’(감독 원신연)만이 배급사를 웃게 했고 나머지 ‘뺑반’(감독 한준희) ‘미성년’(감독 김윤석) ‘퍼펙트맨‘(감독 용수) 조용히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인 ’미성년‘은 ’진정한 어른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던지며 다음 연출작을 기대케 했다. 다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아쉬움을 남겼다.
NEW는 올해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내년에 더욱 부지런히 달려야할 듯하다. 올해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 ‘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만 성과를 거뒀고 ‘생일’(감독 이종언) ‘비스트’(감독 이정호) ‘힘을 내요, 미스터리’(감독 이계벽)는 흥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개봉한 ‘시동’(감독 최정열)이 연말 극장가에 선두로 나서며 ‘겨울왕국2’(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를 꺾고 박스오피스 순위를 뒤집었다. ‘시동’이 NEW의 흥행에 시동을 걸어줄지 이목이 쏠린다.
# 월트 디즈니의 독식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 외에 대부분의 배급사가 웃음을 짓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외화의 강세였다. 국내영화 못지않게 바통터치를 거듭하며 극장가를 찾은 월드 디즈니사는 올해 무려 열 세편의 영화를 내놨다. 그중 ‘캡틴 마블’(감독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 ‘겨울왕국2’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아 국내 영화들에겐 흥행 복병이 됐다. 5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캡틴 마블’을 제외하고 세 편의 영화가 모두 천 만 관객을 기록해 2019년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지난 10년의 마블 시리즈를 종지부를 찍는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개봉 후에는 ‘스포금지’ 바람이 불었으며 영화의 결말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외쳤다가 집단 폭행을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알라딘’은 입소문을 제대로 탄 케이스였다. ‘기생충’과 맞붙어 주춤하는 기세를 보이다 빠르게 1255만 2189명을 극장가로 이끌었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주체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자스민 공주의 활약이 관전 포인트였다. 더불어 신나는 음악과 춤은 ‘싱어롱’관까지 열도록 일조했고 N차 바람이 불어 흥행이 장기간 이어졌다.
5년 전 한반도를 엘사의 마법으로 사로잡았던 ‘겨울왕국’은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전보다 더 빠른 기세로 전역을 강타해 전에 없던 신기록을 거듭 세웠다. 개봉 한 달이 다돼서야 기세가 꺾였으나 애니메이션 최초 쌍천만, 개봉 17일 만에 천만 돌파, 4DX 애니메이션 사상 최단 흥행 등 여러 기록을 갈아치우며 저력을 입증했다.
# 스크린 쿼터제
엘사의 마법과 마블 히어로들이 대한민국 관객들을 강타했지만 한쪽에선 볼멘소리가 거셌다. 수년 전부터 스크린 쿼터제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온 영화인들은 이번 월트 디즈니사 작품의 장기 흥행에 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1일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소비자 선택제한)을 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를 할리우드 매체가 보도하면서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스크린 쿼터제는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객의 수요 충족에만 기대 손 놓고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지난달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영화다양성확보와 독과점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이하 반독과점영대위)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일부 특정 영화들이 대부분 영화들을 압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승자독식, 양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들의 삶과 우리네 세상만사는 과연 어떻게 되겠나. 시장이 건강한 기능을 상실해갈 때 국회와 정부는 마땅히 개입해야만 한다.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는 한시라도 빨리 영화법을 개정하고 실질적 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영화가 취해야할 자세
그야말로 격동의 한 해를 보낸 영화계에 영화평론가는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진행한 사업을 짚어주며 나름의 노력을 했으나 대중에게까진 닿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생충’이 한국 영화의 면을 많이 살려줬다”며 “‘극한직업’도 물꼬를 잘 터주었지만 한국 영화가 해외 블록버스터 작품에 밀려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영화계는 100주년을 맞아 더욱 더 반성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윤성은 평론가는 외화의 물량공세에 한국 영화가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여태까지 한국영화가 사랑을 받은 것엔 외화에 자본력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관심사와 우리 정서에 대한 것들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겨울왕국2’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당시 성토된 스크린 쿼터제에 “인기 있는 영화들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문제”라며 “정부 차원에서 규제가 있지 않고 시장경제로 내버려두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규제도 해야 하지만 영화 산업에 대한 지원도 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론 ‘기생충’과 ‘벌새’를 꼽았다. 윤성은 평론가는 “2019년을 대표하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라며 “앞으로 신인 감독과 좋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희망적인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영화 포스터, 김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