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간절함에서 시작한 ‘시동’ “마지막일 것 같아서” [인터뷰]
입력 2019. 12.31. 16:50:30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반듯한 이미지, 호감형의 외모를 지닌 배우 정해인에게서 보지 못한 얼굴을 발견했다. 영화 ‘시동’에서 그간 분출하지 못했던 에너지를 마구 발산한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시동’은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의욕충만 반항아 상필(정해인)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다. 상필은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뛰어든다. 다만 뛰어든 곳이 글로벌 파이낸셜, 사채업이다.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고 친한 형의 소개를 받고 들어간 곳이 사채업이었다. 상필은 “빌린 돈을 갚게 하는 것 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형과 함께 돈을 걷으러 다니고 자신들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채무자들을 보며 자신이 어른이 된 양 행동한다.

엄마의 잔소리와 폭력이 싫어 군산으로 떠난 택일이 잠깐 서울에 들렀을 때도 상필은 택일을 아이처럼 대한다. 이전과 다른 헤어와 옷 스타일로 직장인이 된 듯 으스대고 아는 형이 업무차 전화를 걸었을 때도 능숙하게 받는다. 이전엔 철모르는 치기 어린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후의 상필은 점점 아는 형과 사채업종 동료들에게 물들어간다.

극이 후반부를 향할수록 달라지는 상필의 변화는 택일과 함께 저질렀던 일탈에서도 눈에 띈다. 이전엔 멋을 부리기 위해 흡연을 하거나 욕과 주먹을 올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면 이후엔 눈에 광기가 돌 정도다. 올해 32살임에도 10대 후반의 반항아를 소화한 정해인은 절실함으로 상필을 표현했다.

“마지막일 것 같아서 절실하게 연기했다. 외모를 떠나서 앞으로 맡는 작품 속 캐릭터가 학생과는 멀어질 테니까. 지금 32살이라 시간이 그렇게 오래되진 않아서 연기하기의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30대의 모습이 나오면 안 되니까 최대한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30대 초반임에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소화할 수 있는 훈훈한 동안 외모는 그에게 강점이었다. 특히 이번 ‘시동’에선 10대 청소년의 일탈을 그려 이전에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정해인은 엇나감의 중도를 지키면서 어설픔으로 상필을 표현하고자 했다.

“욕을 하되 밉지 않게 보이고 싶었다. 험악하거나 욕을 능수능란하게 잘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담배를 태우고 욕을 하더라도 어설펐으면 했다. 그저 친구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10대들의 마음처럼. 기술적인 부분에선 목소리 톤을 높이거나 총총거리면서 뛰는 것 등을 설정했다. 허세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남들이랑 같이 있을 때는 그러지 않고 혼자 있을 때, 형이나 택일의 앞에선 거들먹거리면서 허세처럼 보이고 강하게 보이려고. 무시 안 당하려는 행동의 언어다.”

정해인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짝사랑 상대역을 비롯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등의 작품에서 선하고 바른 모습을 보여줬던 터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어둡고 살기를 띤 눈빛을 보여주긴 했으나 실상은 다른 유대위 역을 맡아 그 또한 비슷한 이미지로 시청자와 만났다. 그런 그에게 이번 ‘시동’ 속 상필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전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면 좋으니까 저도 재밌고 보시는 분들도 ‘정해인이 저런 모습, 저런 연기를 할 줄 아는구나’하고 느끼지 않을까. 저도 여러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정해인은 스스로를 “어중간한 학생이었다.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친구”라고 설명하며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상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중간했다. 어느 지점에 걸쳐져 있는 애매한 학생, 공부도 어중간하게 하고 모든 게 어중간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잘 됐던 것 같다. 사실 상필도 나쁜 학생이 아니다. 택일도 마찬가지고. 표현은 그렇게 할지언정 엄마에 대한 효심이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정해인에게 ‘시동’은 만나보지 못한 캐릭터를 맡는 기회였고 대선배인 고두심과 함께할 영광을 누리게 해줬다. 그는 고두심이 자신의 할머니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최정열 감독에게 여러 차례 되묻기도 했다. 너무 기뻐서였다.

“너무 기쁘면서도 긴장됐다. 워낙 대선배님이시고 연기를 수십 년 하신 선생님이랑 독대해야 하니까 긴장이 됐다.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부족해서 선생님의 장면이 망가지는 피해를 줄 것 같아 걱정했다. 엄격하고 근엄하실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셨다. 재밌는 농담도 같이 해주시고, 먼저 웃겨주시고, 음식 같은 것도 싸와서 나눠주시고. 정말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좋았다.”

마치 친할머니처럼 다정다감하게 정해인에게 다가간 고두심의 배려로 현장이 화기애애해지는 것은 물론, 극 중 장면에도 영향을 끼쳤다. 밥을 먹지 않고 나가는 손자에게 “가지마. 밥 먹고 가”하는 장면은 상필과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정해인은 촬영 당시에도 큰 울림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 말 한마디가 커져서 저한테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 신을 찍을 때 촬영장 전체 스태프가 숙연해지고 고요해졌다. 감독님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어렸을 때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연로하셔서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치매에 걸리셨을 때 저를 못 알아봤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촬영하면서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참느라 힘들었다.”



데뷔한 지 6년, 정해인은 몸과 마음으로 초심을 다잡으려 사소한 것에서부터 노력한다. 편한 캐주얼 스타일로 입어도 되는 인터뷰 장소에서 슈트를 입으면서까지 신경을 쓰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란 쉽지 않을 터다. 더욱이 지난 ‘유열의 음악앨범’ 인터뷰 후 만난 그는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몸과 마음의 안정과 건강을 찾았다는 정해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의식하기 때문에. 저는 사실 그대로다. 바뀌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흔들리는 순간 중심이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는 연기를 오래, 건강하게 하는 게 목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오래 연기해도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면 스스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건강하게 살겠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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