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억의 여자’ 이지훈, 새로움이 두렵지 않은 그 [인터뷰]
- 입력 2020. 02.04. 17:31:49
- [더셀럽 전예슬 기자]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호기로운 야망남에서 애처가로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이지훈. 치명적인 매력으로 ‘섹시한 쓰레기’라는 타이틀도 얻으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다.
기자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KBS2 드라마 ‘99억의 여자’(극본 한지훈, 연출 김영조 유관모)에서 이재훈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이지훈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첫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이지훈이 맡은 이재훈은 운암 재단 운영 본부장이자 윤희주(오나라)의 남편으로 쇼윈도 부부 남편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다. 몰래 여자들을 섭렵하는 플레이보이인 그는 정서연(조여정)과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불륜남’ 이재훈 역할을 이지훈은 어떻게 준비했을까.
“재훈이 같은 역할을 한 적 없었어요. 불륜소재의 드라마를 감독님이 얘기해주셔서 한 번 봤죠. 현장에서는 딱히 엄청난 준비를 한 건 아니에요. 나라 누나와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상상하면서 ‘이렇게 하면 될까요’ 물어봤죠. 누나가 잘 이끌어줬어요. 그래서 부담이나 그런 건 없었어요.”
‘99억의 여자’는 우연히 현찰 99억을 움켜쥔 여자 정서연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2012년 KBS 드라마 ‘학교 2013’으로 데뷔, ‘청춘스타’라는 수식어를 얻은 이지훈은 이미지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뒤따르는 부담감은 없었을까.
“청춘스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하. 나이가 있기 때문에.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안 해봤던 역할이라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원래 시놉상에서는 연상, 연하 커플이 아니었어요. 미팅 후 제작사 측에서 감사하게도 초점을 바꿔주셨죠. 소재 자체가 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이런 역할을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다면 더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지훈의 아내로 등장한 오나라. 두 사람의 실제 나이차는 14살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완벽한 연기 호흡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이차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지훈은 이 모든 것이 오나라 덕분이라고 밝혔다.
“주변에서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14살차라고. 누나는 친구 같아요. 반말해도 서슴없이 받아주시니까. 연기할 때는 연기 얘기만 하고 촬영이 끝나면 요즘 가지고 있는 고민, 살면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나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누나가 웃으면서 조언해주셨죠. 누나의 좋은 이야기 덕에 호흡은 말할 것 없이 좋았어요. 인간적으로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호흡도 잘 맞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지훈은 극중에서 ‘스위트가이’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99억 원이라는 큰돈이 눈앞에 오자 기존의 부드러운 모습을 걷어내고 비릿한 웃음과 냉랭해진 얼굴로 다른 색깔의 연기를 보여줬다. 악역임에도 불구, 이지훈은 이재훈의 ‘순수함’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대본을 봤을 때 순수하게 보였으면 했어요. 꾸며진 게 아니라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면 했죠. 저는 희주와 재훈이가 사랑해서 결혼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유학시절에 만나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스토리를 만들어 놓았죠.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아내가 남편을 안 봐주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재훈이는 처음부터 바람둥이가 아닌, 사랑을 못 받아 발버둥 친 것 같았죠. 연기할 때도 계산해서 한 게 아닌 감정을 드러내고 나타냈어요. 절제를 하지말자고 생각하고 연기한 거죠. 제가 맡은 캐릭터니까 애착이 가잖아요.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다 드러내고 연기해야 사람들도 ‘저 모지리, 멍청이’라고 하면서 애정으로 봐주시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죠.”
이지훈은 사실 처음부터 배우가 꿈은 아니었다고 한다. 체대생이었던 그는 신하균과 이병헌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원하는 꿈에 다가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그다.
“원래는 체육선생님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던 것과 다르더라고요.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해서 군대를 갔어요. 거기서 뮤지컬을 보고 연기를 하는 걸 보니까 행복해보이더라고요. 단순히 행복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컸어요. 전역 후 연기자를 준비했는데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떡볶이 사먹는 것조차 부담이 됐으니까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자신감은 있었어요. 23살 때부터 준비하면서 ‘언젠가 뭐가 될 것 같긴 해’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웃음) 연기에 대한 자신감은 아직 없어요.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죠. 그래서 작품을 계속 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해요. 새로운 것을 계속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았던 이지훈은 ‘99억의 여자’의 이지훈 역을 통해 악역의 매력을 맛봤다고. 그래서 그는 ‘진짜 악역’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영화에서 진짜 나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영화는 그 역할의 한계까지 가 볼 수 있잖아요. 진짜 악한 것의 한계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에서는 잔인하니까 못 보여주는 게 있지만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있으니까. 가장 겁이 나는 것을 해야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도전하고 싶어요.”
이지훈은 오늘도 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말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다는 그는 앞으로의 작품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대중 앞에 설까. 벌써부터 궁금증이 모아진다.
“자기 전에 거울로 저를 봐요. 20대 중반에 데뷔를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제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스타가 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어딘가에 쓰이고 있는,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를 꿈꾸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저에게 그런 욕심이 들어와 있었어요. 저의 욕심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죠. ‘왜 이렇게까지 나를 힘들게 할까,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쉴 때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안 읽던 책들을 읽게 되면서 생각들이 간단하게 정리 됐어요. 초심을 잃었으면 다시 처음처럼 생각하면 되고, 실수를 하면 똑같은 실수를 안 하면 되고,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죠.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부족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됐고 더 잘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면서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더 파이팅 있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면 멋있는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지트크리에이티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