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라미란 “코미디,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인터뷰]
입력 2020. 02.19. 18:07:32
[더셀럽 김지영 기자] 장유정 감독이 브라질 영화 리메이크를 결정하고 주인공을 여자로 변경하면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라미란 캐스팅’이었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배우 라미란은 적절한 웃음과 감동을 주며 영화 ‘정직한 후보’를 책임감 있게 이끌고 나간다.

최근 개봉한 ‘정직한 후보’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는 증상을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공약을 내세우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약속하는 말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고 상황 모면을 위한 말들로 입에서 쏟아져 나와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다.

시민을 위해 해주겠다는 가벼운 약속조차 입바른 소리로 나오지 않는다. 주상숙의 모든 발언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결국 주상숙 후보 사무실은 다른 전략을 세운다. ‘정직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 솔직하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국회의원을 찾던 시민들은 주상숙에게로 시선이 쏠리고 지지율은 끝도 없이 오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며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라미란은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 ‘응답하라 1988’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영화 ‘내 안의 그놈’ ‘걸캅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생활밀착형 연기를 선보여 작품의 재미를 드높였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예기치 못한 웃음을 자주 선보였던 그는 코미디를 표방하는 ‘정직한 후보’에서 본격적으로 칼을 갈은 듯 하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진실들로 난처한 모습, 거침없이 내뱉는 진심을 말할 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속 시원하게 말한다. 이를 수습할 때조차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처하게 변하는 표정들로 더욱 웃음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정직한 후보’는 ‘라미란의, 라미란을 위한, 라미란에 의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서 관객의 웃음을 전적으로 담당했기 때문. 관객을 의도적으로 웃기려는 슬랩스틱,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폭소를 터트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라미란의 가장 큰 강점이다. 라미란 또한 시나리오에 매료돼 빠른 시간 내에 출연을 결정했다.

“원작을 리메이크하면서 성별을 바꿨는데, 배우들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제가 물망에 올랐다. 저도 대본을 받고 며칠 만에 바로 답을 드려서 촬영에 바로 들어갔다. 감독님은 제가 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셨다. ‘네가 아니면 안 돼’하면서 세뇌 당하다시피 했다.(웃음) 제가 생각해도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웃음)”



그러나 라미란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코미디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단독 주연으로 나서 관객의 웃음을 책임지겠다는 도전정신으로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었으나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 영화를 보는 눈이 높아지고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 자연스러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특히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가볍고 유쾌한 역으로 자주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의 의도에 따르면 전작들은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해진 상황에서 라미란이 맡은 캐릭터가 내뱉는 대사들이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직한 후보’ 속 주상숙은 대놓고 웃겨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판타지, 시대극, 드라마 등 다수의 장르에서 활약해온 그였지만 코미디는 그에게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남았다.

“관객들이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매 신, 장면마다 재미있기를 바라지 않나. 그러다보니 서사를 가지고 웃음을 안배하면서 끌어가는 게 아니라 매 신마다 몰아붙여야했다. 할 수 있는 장면 마다 살리는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게 끈을 부여잡고 있는 게 힘들었다. 경계에서 계속 줄을 타야 하니까 과하거나 말이 되도록 했다. 모든 장르가 쉽지 않지만 코미디가 제일 어렵다. 그중에 제일 어려운 게 사람 웃기는 것이지 않을까. 저는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웃기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영화가 시종일관 밝은 톤과 유쾌함으로 이뤄져있지만 현장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라미란은 장유정 감독, 김무열, 윤경호 등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의 전개를 빼곡하게 채워나갔다.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했던 지점은 없었다. 영화가 어느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작품은 아니지 않나. 쌓고 터트리는 작품이 아니고 계속 잽을 날리더라. 촬영을 하면 할수록 혼란이 왔다. 진짜 웃긴 게 맞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 그럴수록 현장은 더욱 더 치열해졌다.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치열하게 회의를 했다. 오히려 이렇게 얘기를 할 때가 더 재미있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카메라 앞에서 시도하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라미란은 촬영하는 신을 위해 무언가를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리 준비했다가 예상대로 풀리지 않은 적이 있었고 이 이후로 현장을 갈 때는 마음을 비우고 간다고 설명했다. 더욱 이번 ‘정직한 후보’ 촬영 전에는 “준비하지 않고 임했다”고 천상배우다운 모습을 보였다.

“현장에서 나오는 대로 했다. 짜서 한다고 웃기는 게 아니니까. 현장의 분위기가 중요하고 만약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신이 슬프게 나오다. 재밌는 신인데 혼자 울고 있다.(웃음) 그런데 가끔 그런 게 재밌을 때가 있다. 거꾸로 가고 그런 것을 좋아한다. 지문에는 ‘웃는다’고 돼있지만 울면서 얘기하고 그런 것들.(웃음)”



실제로 만난 라미란은 답변 중간에 너스레를 섞고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실제 성격 또한 그렇게 밝은 성격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유쾌한 이미지로 인해 대중이 자신을 재밌게 봐주는 것 같다고 했다.

“연극무대에 서다가 매체로 넘어오면서 처음엔 재미있는 캐릭터가 없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농담하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서 코미디 작품을 할 때 불러주시더라. 저도 모르게 코믹한 캐릭터들을 했었다. 그걸 했을 때 사랑을 많이 받아서 저를 많이 떠올려주시는 것 같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에게 의외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식당에서 밥 먹는데 조용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밥 먹는데 어떻게 시끄럽게 먹어야 하냐.(웃음)”

앞서 ‘미리 준비하지 않고 현장에서 한다’는 말은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나고 센스가 있는 연기를 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라미란은 자신을 ‘게으른 배우’라고 지칭하며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노력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고 그냥 간다. 분위기를 많이 탄다. 벼락치기라고 하지 않나. 시험을 볼 때 베이스 없이 그냥 가서 막 하는 것이다.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이제 또 다른 출구를 찾아야 한다. 우려먹을 때까지 우려먹고 안 먹힌다 싶으면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다. 그때도 공부는 하지 않을 것 같지만.(웃음)”

지난해 개봉한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이제 어엿한 단독 주연 배우가 된 라미란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가지려는 것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려했다. 늘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이 제일 힘든 법일 것이고 라미란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던 대로 맡은 롤 안에서 열심히 연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흐름에 따라서 굴곡이 생길 것 같다. 흥하던 망하던 다음 작품에서 주연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평정심을 찾는 것이다. 내가 좋았다가 싫었다가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될 텐데 책임감이나 부담감, 어떠한 다짐을 가지면 힘들 것 같다. 스스로가 늘 하던 대로 해야 한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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