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신애 대표 “‘기생충’, 이 놀라운 영화를 만든 봉준호” [인터뷰]
입력 2020. 02.26. 17:16:11
[더셀럽 전예슬 기자] “‘작품’과 ‘봉준호’라는 예술가를 사랑한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한국영화사뿐만 아니라 오스카에도 새 역사를 쓴 ‘기생충’. 영화 제작을 맡은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 그리고 오스카 관련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0일,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총 4개 부문을 휩쓸었기 때문.

칸 국제영화제부터 오스카 캠페인까지 약 1년에 걸쳐 긴 여정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기생충’ 팀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이후 잠깐의 휴식도 없이 잡힌 인터뷰 일정에 지칠 법도 하지만 곽신애 대표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 장편 영화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쟁쟁한 후보작들을 제치고 ‘기생충’이 4개 부문 수상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곽 대표는 “현지에서 수상작을 예측하는 기사가 계속 바뀌었다. 막판까지 작품상과 감독상은 ‘1917’(감독 샘 멘데스)이 예측되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각본상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경합 중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들이 다 ‘기생충’에게 와서 깜짝 놀랐죠. 예상 못했거든요. 상 하나는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은 왔지만요. ‘기생충’은 어딜 가나 무슨 시상식을 가도 가장 핫한 테이블이고 인물들이었어요. 우리 배우들만 보면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저희끼리 ‘분위기가 이상해’ ‘우리 작품에 대한 반응이 열띠다’라고 해서 ‘국제 장편상 외에 뭐라도 받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저희끼리 내기도 했는데 각본상에 건 사람도 있고 작품상에 건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 받아버렸죠. 하하. 저는 작품상에 걸었어요. 송강호 선배님과 저와 둘이서요. 아무래도 제작자인데 작품상에 걸어야 하지 않겠어요? (웃음)”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할리우드 중심의 아카데미 영화제가 로컬에서 국제영화제로 변화를 예고했기 때문. 결과적으로 ‘미국적 가치관을 움직였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곽신애 대표도 이를 예상했을까.

“실제로 봉준호란 이름이 명기돼 있는 부문의 상은 다 받았어요.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 등 봉준호란 이름이 보이면 (아카데미 회원들이) 다 체크했다고 생각해요. 수상이 가장 유력한 작품과 경합한다면 ‘이 상은 봉준호 주자’ 이런 식으로 전개됐다는 거죠. 제가 한 달 동안 느낀 건 그 사람들이 ‘기생충’을 너무 좋아하고 애정표현을 하고 싶어 안달났다는 것이에요. ‘봉준호 당신은 천재, 영화 훌륭해’라는 그냥 좋다가 아닌 ‘흥분한 애정’이란 말이죠. 비평가분들을 만났는데 ‘기생충’을 안 본 사람이 없었어요. 볼 때마다 ‘나 기생충 몇 번 봤어’라고 이야기 할 정도였죠. 다른 배우들도 ‘너희 감독 소개시켜줘’라고 하는 분도 있었어요. 감독님이 엄청 핫하셨거든요. 이 놀라운 영화를 만든 사람이니까 좋아한 거죠.”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영화 출품과 심사위원 평가로 이뤄지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8000여 명의 회원에게 표심을 얻는 과정인 오스카 캠페인이 있다. 미국 영화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선거전을 방불케 한다.

“처음엔 ‘뭐하는 과정일까’라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나름 주관적으로 정리한 건 미국 영화산업이 몇 십 년 동안 자기 산업을 선진화시키고 최대한을 도모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죠.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올해 나온 영화 중 힘을 실어줄 만한, 미래를 위한 영화를 골라내고 검증하면서 상을 주고 힘을 실어주는 거죠. 우리는 극장 스코어 영화 외에 다른 식으로 힘을 주는 영화가 없는 것 같아요. 상을 하나 받는 거지, 분업돼서 산업을 이끄는 느낌은 아니잖아요. 영화산업의 종주국 같은 미국이 스스로 산업을 키워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작품상은 영화를 제작한 제작자와 제작사에게 주는 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아카데미서 작품상이 호명 된 후 무대 위에는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 외 곽신애 대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등 ‘숨은 주역’들이 함께 올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기생충’의 메인 투자‧배급사로 조력에 나선 CJ그룹은 아카데미상 최전방 지원군으로 활약했다.

“오스카 캠페인 목표를 높게 잡은 건 있어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죠. ‘칸에서 상을 받았으니 아카데미에서도 국제 장편상은 노려볼 만 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CJ 해외 실무진은 국제 장편상을 받는 것과 주요 부문 노미네이트까지 잡았더라고요. 그 계획을 세웠다는 건 그만큼 기대와 비전을 받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오스카 캠페인 ‘100억 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국내외 언론은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에 들어간 비용이 약 100억원이라고 예상, 보도했다. 후보에 오른 여타 작품과 비교했을 때 1/3 수준이지만 국내 관객들은 과도한 금액이라고 바라봤다.

“대부분 알려진 캠페인 비용은 ‘설’이에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캠페인 비용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네온(‘기생충’ 북미 배급사)과 CJ가 똑같은 입장으로 북미 시장에서 몇 만까지 기대하냐, 최종 오스카에 실었을 때 얼마까지 가냐, 이만큼 돈을 써보자는 식으로 하는 거죠. 미국시장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박스오피스 사이즈를 재서 비용을 책정한 거예요. 마케팅 비용, 사업자금을 투자하는 거잖아요. 스폰이나 지원이 아니에요. 미국 LA에는 빌보드 광고가 있는데 아카데미 시즌에는 ‘1917’과 넷플릭스 영화가 차지하고 있어요. 광고비용이 막대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다 한 번밖에 못했죠. CJ와 이미경 부회장님의 기여가 없다라고는 할 수 없어요. 할리우드에서 영화계 지인들이 있으실 거고. 반응을 바꿀 순 없지만 협상을 유연하게 도와주신 부분은 있죠. 한쪽을 너무 강조하면 왜곡돼요. 기사들을 보면 한 쪽에 쏠린 기사들이 많이 나와 계속 답답했었죠.”

곽신애 대표에게 ‘기생충’을 만나기 전과 후는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곽 대표는 “일을 조금 더 해도 되겠다”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같이 하고 싶었던 감독님과 ‘디벨롭’하는 거예요. 영화라는 게 작품마다 너무 달라요. 각각의 인생이 다른 것과 똑같은 거죠. 각 작품들도 제가 아무리 해도 안 돼요. 다 0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올드보이’가 나왔을 때도 한국영화에 변화를 줬고 다양한 작품이 그 시기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기생충’은)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창작자는 미리 나를 틀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봐요. 제작자는 불필요한 사전 검열을 풀어주는 역할이 중요하고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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