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인앤아웃] 김서형이 터놓은 중성적 캐릭터의 변화, 진서연·정혜인이 이을 차례
- 입력 2020. 03.13. 17:26:22
- [더셀럽 김지영 기자] 예쁜 인물, 외적으론 평범하지만 반전매력이 있는 캐릭터 등에 한정돼 있던 국내 드라마 여성 캐릭터들에 변주가 생기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열풍이 미디어 깊숙이 침투하면서 보수적 여성성이 제거된 쇼트커트, 젠더리스룩 등으로 이미지메이킹 된 기존 극에서 볼 수 없던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이는 단순히 ‘남성 캐릭터’를 어설프게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틀에 갇혀 있었던 이미지를 완벽하게 깨부쉈다. 특히 배우 김서형, 진서연, 정혜인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를 꾀했다.
수년 전의 드라마, 영화에서 등장하는 중성적 캐릭터들은 어설픈 남자 캐릭터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덥수룩한 헤어스타일, 맞지 않은 남성 옷을 입은 듯한 부조화, 의도적으로 내는 저음 목소리 등 주로 남장여자 소재를 다룬 작품들은 이처럼 어설픈 미러링 캐릭터들를 수없이 양산해냈다. 이러한 극 중 인물들은 전개상에서 유쾌함을 주거나 남장여자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극의 말미엔 예쁘장한 여자 주인공으로 다시 탈바꿈하고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는 결말을 맺음으로써 보수적 여성성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갖춰야 할 애티튜드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로맨틱 코미디의 유행이 수그러들면서 남장여자 소재도 사라졌다. 이후 범죄 수사물 장르가 미디어를 장악하자 굳이 남장하지 않고 남자 형사의 틈바구니에 낀 여성 형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캐릭터들 역시 어설픔을 채 지우지 못했다. 이는 이전에 젠더리스, 페미니즘이 비주류에 머물러 거친 범죄 수사 장르물에서 여자 배우는 남자 배우들과 달리 '웃픈' 상황을 만들어내며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미디어는 소위 사회 주류들이 선호하는 남성과 여성 선 긋기가 아닌 새로운 캐릭터 창출에 집중하면서 여자 배우들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남자같은 여자 혹은 여자다운 여자가 아닌 극 중 캐릭터에 최적화 된 이미지메이킹을 시도하는 배우들이 보수성에서 벗어나려는 미디어와 함께 패러다임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김서형은 지난 2015년 드라마 KBS2 ‘어셈블리’를 통해 처음으로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 이전에 2010년 방영된 SBS ‘자이언트’에서도 짧은 스타일을 선보였던 그는 ‘어셈블리’에서 보다 깔끔한 헤어로 눈길을 끌었다. 극 중 지성을 겸비한 국회의원 홍성미로 분한 김서형은 냉철한 면모를 돋보이기 위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슈트로 정치인 역에 걸맞은 절제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김서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tvN ‘굿와이프’, MBC ‘위대한 유혹자’, SBS ‘이리와 안아줘’ 최근 방영 중인 SBS ‘아무도 모른다’까지 비슷한 듯 전혀 다르게 설정된 스타일 전략이 캐릭터에 현실감 넘치는 생기를 부여했다.
배우들은 여러 작품에서 다른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외적인 요소의 변화를 시도한다. 김서형은 캐릭터에 맞춰 비슷한 듯 디테일 달리한 스타일과 전혀 다른 연기로 김서형만의 연기 변주를 보여준다. 매 작품마다 냉철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캐릭터 성향에 따라 경중을 나타내고 깊이를 표현해낸다. 특히 ‘아무도 모른다’의 기자 박희영을 맡았을 당시에는 냉철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무감정의 상태를 나타냈고 ’아무도 모른다‘에서 차영진으로 분하고 있는 현재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스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김서형만이 나타낼 수 있는 극 중 인물의 특성은 이전 작품들에선 만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김서형의 특성이 부각되면서 남성을 따라 하지 않고도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제 옷을 입은 듯 캐릭터 성향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맡은 배역을 어설픔 없이 자신을 극 중 캐릭터에 맞춰 최적화로 해내는 김서형의 이미지메이킹 역량이 기반이 됐기에 가능했다. 김서형이 잘 닦아놓은 중성적 캐릭터 명맥을 진서연, 정혜인이 잇고 있다.
진서연은 2018년 영화 ‘독전’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표현하기에 난이도가 있는 약에 취한 연기, 광기가 넘쳐 흐르는 눈빛과 표정 등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2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진서연은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에서 강력계 형사 황하영으로 변신했다. 이번 드라마에선 거친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미와 상처를 만든다. 범죄 수사물에서 주로 등장하는 피곤함에 찌든 남자 형사, 그럼에도 항상 올곧은 외모를 유지하는 여자 형사라는 이미지 틀을 깨트린 것이다. 더군다나 독특한 그의 목소리 톤은 황하영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정혜인은 오는 28일 방영되는 OCN 드라마 ‘루갈’ 티저 영상에서 김서형, 진서연과는 또 다른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전 KBS 드라마 ’저글러스‘에서 보이시한 스타일과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그는 ’루갈‘에서 목 뒤에 인공 칩을 이식받은 전직 강력계 형사 송미나를 맡았다. 본 방송에 앞서 공개된 영상 속 정혜인은 거친 액션을 말끔하게 소화하며 그의 전작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로 영역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서형과 진서연, 정혜인이 작품들에서 맡는 배역이 대부분 형사에 그친다는 것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제 막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뒤를 또 이을 수 있는 배우들과 다채로운 작품 속 인물들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김혜진 기자, 티브이데일리, 마다픽쳐스, OC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