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의 세련된 연출 세계 [씨네리뷰]
입력 2020. 04.24. 12:00:56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밝은 미래 없이 불안한 사회, 흔들리는 청춘들,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로 떠났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정서적 불안. 영화 ‘사냥의 시간’은 작품 속 모든 이야깃거리들을 연출로 이야기한다.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화폐 가치가 폭등해 한화는 받아주는 곳이 없고 도둑질이 만연하다. “무장 강도가 은행 털었잖아”하는 얘기가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정도다. 뉴스에는 IMF 통화기금이 한국의 재정지원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거리엔 운영 중인 가게, 지나가는 행인조차 없다. 당장의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쬐고 있는 몇몇 이들 뿐이다.

폭락한 화폐 가치에 긍정적인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사람들은 도박장으로 향했다. 거리엔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던 상황과 달리 도박장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시끌벅적하다. 3년 만에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자신이 항상 꿈에 그리던 하와이와 비슷한 곳으로 떠나기 위해 한 탕을 계획한다. 나라가 무너진 상황이지만, 준석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꿈꾼다.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와 함께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도박장을 털기로 결심한 것이다. 네 명의 청춘들은 총포상에서 총기를 구입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다. 도박장을 털기로 한 날, 가까스로 성공하고 이젠 이들의 인생에 볕 뜰 날만 오는 듯했다. 한(박해수)이 이들 앞에 나타나기 전까진.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처음 대중 앞에 섰던 윤성현 감독은 불안했던 청소년들을 이야기했다.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이가 친구에게 가해를 하고 또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지금, 윤성현 감독은 불안한 주인공에 암울한 미래만 있는 국가를 배경으로 해 보다 발전된 이야기를 완성했다.

무너진 국가 상황은 화폐 가치가 폭락한 경제 위기와 조폭과 총, 마약 등이 판을 치는 남미의 일부 나라를 연상케 한다. 폭격을 맞은 듯 한 서울 시내의 한 복판,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폐건물, 온통 회색빛인 도시는 근 시대에 올 법한 분위기로 공포를 조성한다.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빛 없이 온통 어두운 도시처럼 네 명의 인물들에게도 화사한 느낌은 없다. 무채색과 대조되는 강렬한 붉은 빛이 이들을 대신해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채색과 대비되는 붉은 빛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사운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이 도박장을 털 기획을 할 때 기대감에 부푸는 감정, 도박장의 돈을 손에 넣고 쫓아오는 조폭들을 따돌릴 때, 한과 만나게 되면서 느껴지는 긴박감 등 다채로운 주인공들의 감정을 사운드로 표현했다.

풍부한 사운드에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지니 볼거리는 더욱 풍부하다. 한과 만나게 된 준석은 순식간에 변하는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는데, 준석으로 분한 이제훈은 걱정과 불안함, 초조함 등을 흔들리는 눈빛과 숨소리, 대사의 톤 조절로 표현한다. 극의 긴장감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한의 박해수는 중압감으로 분위기를 발산한다. 공포심으로 몸과 마음이 흔들리는 준석과 달리 상당한 여유를 보이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존재 자체로서 더 없이 공포를 조성하고 한으로 인해 준석의 심정이 급박해지는 것처럼 관객의 마음도 이와 동일해진다.

빛으로 표현한 극의 분위기, 이를 살리는 사운드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실제 장소에서 찍은 듯 사실감 넘치는 세트 디자인도 눈길을 끌만하다. 윤성현 감독은 앞선 네 가지의 매력을 관객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134분에 담아냈다.

다만 아쉬운 지점은 이야기의 미완성이다. 국내와 해외에서 봤을 법한 익숙한 범죄액션 전개 구조로 긴장감을 늦추는 듯 하면서도 다시 연출로 쫀쫀하게 만들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있을 때는 조여드는 긴장감에 눈을 뗄 수 없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의아함이 남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개봉과 맞물려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차 위기를 맞고 해외 판권 문제로 속을 앓았던 ‘사냥의 시간’은 결국 넷플릭스로 관객과 만났다. 전 세계인들이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호황을 맞은 넷플릭스처럼, ‘사냥의 시간’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 오를 수 있을지 지켜봄직하다.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스틸컷]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