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읽기] ‘남성성 판타지’에 갇힌 김은숙, 위트마저 공포가 된 ‘더 킹’
입력 2020. 04.24. 13:59:27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 김고은 이민호 정은채

[더셀럽 한숙인 기자] 최근 예능 프로그램은 대국민 짝짓기와 번식 독려 사명에 열중해있는 모습이다. 연예인이든 비연예인이든, 미혼이든 기혼이든, 기본 포맷은 큐피트 화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기혼 부부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결혼만이 삶의 궁극의 지점임을 설파하고 한발 더 나아가 출산 과정의 숭고함을 담아내는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사랑,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과 출산을 연대기처럼 펼쳐냄으로써 예능 프로그램은 현대 기득권 사회 권력체계 유지의 근간인 모성 신화를 웃음과 감동 코드로 재현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능을 통해 인연을 맺거나 유명세를 탄 연인이나 부부 중 무시할 수 없는 유의미한 수가 동화처럼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미디어의 허상을 고발하듯 ‘결별’ 혹은 ‘이혼’의 블랙코미디식 결말을 맺는다.

이로 인해 예능에 나와 주목받는 연인이나 부부는 결국 헤어지거나 이혼한다는 웃지 못할 말이 진리처럼 회자되기까지 한다.

다행히도 예능과 달리 드라마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면서 남녀 짝짓기 관행을 비껴가고 있다. 1회 시작부터 마지막 16회까지 한 번 도 실망감을 안기지 않은 SBS ‘아무도 모른다’는 ‘어른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 마지막 회에서조차 오글거리지 않은 묵직한 울림을 주며 ‘인문학적 뉘앙스’가 짙게 밴 스릴러로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결의 범죄 수사물의 서두를 열었다. 12부작 내내 한 순간도 긴박감을 놓치지 않았던 tvN ‘방법’은 토속신앙 무속을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강럴한 인상을 남겼다.

예능이 퇴행하고 있을 때 드라마는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 흐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 그간 결핍돼온 영화적 리얼리티와 인문학적 진지함으로 대중의 선도자이자 조력자로 거듭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지점에서 ‘흥행 귀재’ ‘불패 신화’ 김은숙 작가가 말초적 예능 프로그렘 수준의 짝짓기 패러다임으로 ‘유명 작가의 퇴행’이라는 실망감을 넘어선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빅브라더의 불멸의 생존’을 확인케 하는 공포감을 안겼다.

김은숙 신작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는 마치 원시시대 씨족 간 결혼에서 여자를 상품처럼 교환하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듯 여성은 남성의 선택을 받는 존재라는 설정은 제아무리 페미니즘이 성 평등을 부르짖어도 사회는 원래 남성 주도의 권력 체제를 벗어날 수 없음을 설파하는 듯하다.

히틀러를 위해 나치 프로파간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으로 악명 높은 레니 리펜슈탈처럼 남성 중심 권력 사회를 위해 헌신하듯 ‘더 킹’은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남성중심주의 신화를 이어온 이민호를 앞세우고 여기에 판타지물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을 더해 다시 한 번 ‘남성성의 회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물론 ‘더 킹’은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대한제국이라는 설정 아래 황제 이곤(이민호)을 등장시킴으로써 남성성이 이제 판타지물에서나 존재할 법한 현실성 없는 주제임을 자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극 중 주요인물의 역할 배치를 살펴보면 이는 단지 허울 좋은 미끼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최연소 여성 총리 구서령(정은채)은 자신의 완벽한 외모에 대한 국민의 호기심을 이용해 황제와의 추문을 권력 유지와 도구로 삼는 인물로 그림으로써 권력 구조의 성 평등 희망을 좌절시킨다. 이뿐 아니라 앞으로 이곤의 옆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보이는 그의 야망은 결국 최고 권력은 남자 없이 이뤄질 수 없음을 재각인시키는 듯하다.

김은숙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성성 판타지를 재현해왔다. 재벌후계자의 선택을 받는 재투성이 여자의 진부한 설정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태양의 후예’(KBS2, 2016년) 강모연, ‘미스터 션샤인’(tvN, 2018년) 고애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희극적 로맨틱 코미디에서 의미 있는 멜로로의 진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네페미니스트 주유진은 그의 저서 ‘시네페미니즘’ 서두에서 ”여성과 남성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서로 다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위치라는 문제들과 사랑, 섹스, 결혼과 같은 소재들은 영화를 통해서 그 안에 내포된 갈등이나 모순의 지점들을 풍부하게 드러낸다“라며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갖고 있는 불안감이나 환상 등을 포함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적인 무의식을 건드려준다“라고 설명했다.

이곤과 구서령은 남성중심사회의 전복에 대한 남성의 불안이 읽히는 최적의 장치라는 인상마저 준다. ‘더 킹’은 이곤이 두려워하는 존재인 구서령을 완벽한 몸매를 위해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다른 예쁜 여자’가 생길지 경계하는 인물로 평가절하하듯 설정해 결국 최고 권력은 남자 이곤만이 가질 자격이 있다는 남성 판타지를 충족해준다.

혹자들은 ‘미스터 션샤인’과 같은 작가가 작성한 것이 맞냐며 의문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러 가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의 ‘근사한 일탈’쯤으로 끝나버릴 듯하다.

그럼에도 ‘더 킹’의 시청률은 나쁘지 않다. 흥행 귀재임을 입증하듯 17일 첫 회에서 11.4%로 10%대를 훌쩍 넘겨 18일 2회에서는 11.6%로 올랐다. 그러나 이후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김은숙 작가의 지지층인 2535세대마저 김은숙에게 실망감을 드러내며 팬 이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1, 2회차에서 ‘미스터 션샤인’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무참히 뭉개버린 ‘더 킹’이 24, 25일 방영될 3, 4회차에서 속 시원한 반전을 선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듯하다.

[더셀럽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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