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VIEW] ‘슬기로운 의사생활’ 여아선호사상, 가부장제의 씁쓸함
입력 2020. 05.01. 14:26:27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더셀럽 한숙인 기자] 남아선호사상의 중심이었던 7, 80대 실버세대들은 아들을 두고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아들이 필수, 딸은 덤’은 유교 사회 전통인 제사 문화의 형태가 변하면서 어느덧 구시대 사고방식이 됐다. 남성 권력을 떠받쳐 오던 실버세대들이 남녀차별의 과오를 절감하는 사이에도 미디어는 여전히 남성 우위 시각에서 여성 혐오성 범죄는 물론 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 같은 구태의연한 소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tvN 목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8회에서는 아들과 딸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담은 최근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다뤘다. 7080세대들의 자조 섞인 농담으로 인해 더욱 체감도가 높아진 여아선호사상이 ‘슬의생’에서 재현돼 보는 이들의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

병원 율제재단 이사장 주종수(김갑수)는 의사인 첫째 아들과 법조인인 둘째 아들의 아빠로 본인 역시 소위 상위 10%의 성공한 사회인이지만 그 옆에는 아무도 없다. 넘어져서 얼굴이 찢어지고 다리에 피멍이 들었지만, 그는 자식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오로지 사촌 동생인 병원장 주전(조승연)과 친구 로사(김해숙)의 애정 섞인 핀잔으로만 위로받을 뿐이다.

미국 LA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큰아들은 연락도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이사했다는 소식 역시 둘째 아들을 통해서만 듣고 바뀐 연락처조차 모른다.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 역시 얼굴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반면 아버지의 간암 판정 이야기를 듣고 고개조차 들지 못할 정도로 식음을 전폐한 한 중년 남성은 곁에 아내와 딸 둘이 지키고 있다. 아내는 물론 딸들도 아버지의 간암이 전이됐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하던 일과 공부를 모두 접고 아버지 옆을 지켰다.

8회 에피소드뿐 아니라 ‘슬의생’의 주인공들인 율제병원 이익준(조정석), 김준완(정경호), 안정원(유연석),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 의사 5인방의 정신적 지주 역시 채송화다. 채송화는 의사로서 능력은 물론 친구들의 고민 상담가과 후배 의사들의 멘토 역할까지 해내면서 가장이 아닌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가모장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극적 설정 장치였지만 사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실버세대들이 말이다. 이들은 아들은 결혼하면 남이라고 생각해야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들이 못돼서라기보다 아들이나 며느리는 제아무리 잘해도 딸처럼 편하게 푸념을 늘어놓을 수 없고 결국 무슨 일이 생기면 핀잔을 들어도 딸을 먼저 찾게 된다고 토로한다. 결국 아들만 있는 실버세대들은 팔자려니 하다가도 때로는 설움이 폭발한다고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도 아들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느덧 아들들은 가족 내에서 ‘관상용’ ‘구색용’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남아선호사상이 전제된 가부장제도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쇠퇴해 KBS의 일일, 주말 드라마 전용 소재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세습과는 결별한 지 오래여서 이제는 딸이 아들의 입지를 차지했다.

KBS2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송영달(천호진)의 장남 송준선(오대환)은 사람은 좋지만 제 밥벌이조차 못하는 무능력한 아들로 부모의 정신적 지주는 딸 송나희(이민정)이다. 전작 ‘인생은 원더풀, 사랑은 뷰티풀’(이하 ‘사풀인풀’) 김영웅(박영규)은 김설아(조윤희), 김청아(설인아) 두 딸의 아버지로, 사람 됨됨이는 물론 똑 부러지는 성격의 딸들로 인해 사위로 잘난 아들 둘을 더 얻게 된 행복한 아빠로 나왔다.

‘사풀인풀’의 전작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로 아예 딸을 타이틀롤로 내세웠다. ‘세젤예’는 강미선(유선), 강미리(김소연), 강미혜(김하경) 세 딸과 엄마 박선자(김해숙)을 주인공으로 가부장제가 아닌 ‘가모장제’ 가족을 다뤘다.

가부장제 가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구축한 김수현 작가의 작품조차 그저 드라마 역사로만 남아있을 뿐 과거와 같은 영광은 되찾기는 힘들어보인다.

3대, 4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가치를 일깨워온 그는 1995년 KBS2 ‘목욕탕집 남자들’로 대박을 터트린 이후 ‘은사시나무’(2000년, SBS), ‘내 사랑 누굴까’(2002년, KBS2), ‘엄마가 뿔났다’(2008년, KBS2), ‘인생은 아름다워’(2010년, SBS), ‘아버지가 미안하다’(2012년, TV조선), ‘무자식 상팔자’(2012~2013년, JTBC), ‘그래, 그런거야’(2016년, SBS)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불패 흥행 신화를 입증했다.

그러나 실은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부터 김수현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김수현의 오류 없는 대사와 배우들의 대사 전달력은 여전히 극찬받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운 고집스럽게 한 가정을 일궈온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아들, 그리고 그의 주변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딸과 손자들, 극 중에서는 소시민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성공한 중산층’을 다룬 이야기는 생명력을 잃었다.

이 시대 아들과 딸은 1인 3역, 4역을 해내고 있다. 특히 여자에게 부과되는 현모양처가 과거 전업주부였던 것과 달리 직장이 미덕이 된 최근 세태에서 딸은 일을 하면서 가정 일을 책임지고 시댁과 친정까지 챙긴다. 물론 모두가 이런 삶을 사는 건 아니지만 결혼을 한 후 일은 물론 세 가정이 하나의 가족으로 묶이면서 책임감 역시 세 배가 된다.

혹자는 아들을 가정에서 소외시킨 것이 딸이라고 한다. ‘딸이 최고다’라는 말은 시댁을 보살피지 않고 친정을 우선시하는 며느리들로 인해 생긴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결론 없는 논쟁이나, 굳이 따지자면 현재의 여아선호사상 역시 가부장제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는 아들로 이어진다. 아들이 결혼을 해 자신의 가정을 꾸리면서 아버지가 중심이 된 가족 체제에서 독립하게 된다. 아들은 자신의 중심이 된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면서 자연히 아버지가 중심이 된 가정에 대한 책임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아들이 떠난 자리는 딸로 채워지고 노년의 부모들은 딸에게 의지할 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최근 제사 문화의 고답적인 방식이 바뀌면서 가부장제로 시작된 여아선호사상이 자연스럽게 가모장제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남자와 여자의 편 가르기가 돼서는 어떤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 세태를 반영하는 드라마 속 아들과 딸을 주제로 한 갈등과 에피소드들은 보는 이들을 씁쓸하게 한다.

[더셀럽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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